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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Dec 02. 2023

마사지티켓 공구 하실래요?

혼자 오는 여행이 더 좋은 이유

낯선 곳에 도착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바보가 되고 만다. 택시는 어떻게 타야 하는지, 환전은 어디서 해야 하는지, 생필품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을 0에서 시작해볼 수 있다는 점은 여행,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의 장점이자 두려움의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세부 어학원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토요일 밤 12시였고, 어찌어찌 짐을 풀고 하룻밤 자고 나니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어학원에서는 월요일 오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해주기 때문에 일요일 하루를 알아서 잘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뭐라도 하려면 일단 필리핀 돈, 즉 페소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리엔테이션에서 환전소를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기는 너무 답답할 것 같았다. 게다가 단 며칠이라도 쓸 유심을 챙겨올 것을...그저 현지 유심 사서 끼울 생각만 하고 왔더니 네이버 검색 몇 번에 로밍 데이터 요금이 2만원을 넘겼다는 문자가 와서 화들짝 놀라 꺼야 했다.

그래서 일단 와이파이가 가능하고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는 로비에 내려왔다. 남자아이 두 명과 함께 앉아 계시던 어머님께서 가볍게 인사해주셨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제가 어제 와서 잘 모른다"며 이것저것 여쭤보니 환전할 곳도 알려주시고 여러 가지 필요한 정보들을 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한국에서 챙겨온 과자들을 좀 나눠드리고 아이와 함께 환전하러 가는 길에 동네도 둘러 보았다. 낯설지만 그래도 언제든 손 내밀면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가려면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으니, 친구나 지인 가족들과 조인해서 가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혼자 가는 편이 훨씬 낫다. 누군가와 함께 오면 서로에게 신경 쓰느라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지고, 결국 한국에 머무는 것과 장소만 다를 뿐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새로운 사람들도 사귀고 낯선 환경을 스스로 헤쳐 나가기도 하는 것이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묘미 중 하나인데, 그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인데 괜찮을까?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낯선 곳에 온 사람들이고, 오자마자 내가 겪은 어려움들을 다 이미 겪어 본 분들이기 때문에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면 다들 흔쾌히 도와주신다. 오히려 그룹으로 온 분들은 이미 지인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필요를 못 느껴서인지 딱히 뭘 물어보지도 않고, 인사도 잘 하지 않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각자의 성향에 달린 일일테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주칠 때마다 인사와 스몰톡을 나누던 어머님께서 마사지 티켓 공구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봐주셨다. 안 그래도 세부까지 와서 마사지는 꼭 받고가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차에 너무나 반가웠다. 마사지 티켓 30장을 한꺼번에 사면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이 돈을 모아 사서 나누는 것이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마사지 티켓 8장을 구매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수영장에서 또는 로비에서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해져 함께 여행도 떠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말에 어디를 가야 할지, 어떤 여행이 좋을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왔는데 이미 이 곳에 몇 달째 체류하던 분들께서 알아서 척척 데려가 주시고 저렴한 패키지도 소개해 주시니 그야말로 황송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도움을 받는 것도 좋아하지만, 도움을 줄 때도 기쁨을 느낀다. 나 역시 새로 오신 분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시면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고 나름 뿌듯함도 느낀다. 필요한 물건을 서로 빌려주기도 하고, 먼저 돌아가는 분들이 남겨두신 물건을 받아서 쓰기도 한다. 부족함이 많은 상황 속에서 서로 돕고 돕는 환경이 마치 옛날 우리 시골 마을의 정감어린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한국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하루 세 번씩 식당에서 마주치고, 클래스에서 마주치다 보니 공감대도 빠르게 형성되어 급속도로 친해지기도 한다. 먼저 가는 분들을 아쉬워하며 보내기도 하고, 벌써 내가 돌아갈 때가 다가오는 것이 초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줄 오기 전엔 미처 몰랐다.


물론 어학연수를 온 목적에 따라 한국인들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외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분들도 있다. 나처럼 아이를 데리고 온 분들은 아이 또래 위주로 모여 친하게 지내고, 미혼인 젊은이들은 세부시티에서 유흥을 즐기는데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저마다 목적은 다를지라도, 같은 목적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어 있다.


한 달은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나는 처음부터 영어보다는 아이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보고 신나게 뛰어놀며 수영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세부를 선택했기 때문에 매우 만족하는 중이다. 모든 여행이 끝났을때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역시 사람이 아닐까. 세부에서 나는 많은 좋은 분들과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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