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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즈베리 Nov 11. 2024

40살 대학생의 첫 개강주

아우 하기 싫다 하기 싫어!!! 내가 이 짓을 또 하다니!


근데 이번학기는 다르다. 이유가 있다. 아이의 어린이집 때문이다. 동네에 어린이집 자리가 없어 대학교의 대학부설 어린이집에 등록했는데 아이가 계속 이 어린이집에 다니려면 내가 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한다.


학교에 등록은 해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한 학기만 다니고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의지가 없었다. 지금도 그럴 의지는 없다. 해야 되니까 해야 할 뿐...


학교를 쉰 2년 동안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포탈의 비밀번호를 업데이트하고, 새로 바뀐 행정 시스템에 모든 정보가 맞게 기입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부랴부랴 학교의 왓츠앱 그룹을 찾아서 들어갔다. 불행 중 다행인지 방학기간에 학교 서버가 해킹을 당해서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로그인 방법, 어디서 어떤 정보를 봐야 하는지 함께 헤매었고 그 덕분에 나도 쉽게 모든 것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휴 묻어 가자 묻어가!!


그리고 다가오지 않길 그토록 바라던 개강 날이 되었다. 개미 한 마리 조차 다니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던 캠퍼스가 학생들로 북적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부담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학교에서 만들어준 가이드 시간표에서 오후 4시 이후 수업은 모두 재꼈다. 아이 어린이집이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밖에 안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한 과목만 듣고 싶었지만 그 과목이 너무 어렵거나 시험에 실패한다던가 등의 이유로 학점 따기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여유 있게 3과목을 듣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학점이 나오겠지....


* 독일은 수업을 듣는 것과 시험을 보는 것은 별개다.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무조건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 신청 기간에 시험을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 시험을 치고 학점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교수의 수업을 듣고 B교수의 시험을 신청할 수도 있고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시험만 신청할 수도 있다. 어떤 학생들은 수업이 너무 어려워서 같은 학기에 시험을 치지 않고 한번 더 그 수업을 들은 후에 시험을 치기도 한다.


월요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이번 수업은 데이터베이스 수업이다. 이미 한국에서 대학생 때 들은 적이 있는 과목이고 현업에서 일할 때도 SQL과 떨어질 수 없는 일을 해서 제법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는 과목이라 비교적 수월 할 것 같아서 듣기로 결정했다. 수업 시작 전에 복도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이상하다. 같이 기다리는 학생 전부다 베트남 학생들이 아닌가.. 뭐지... 베트남에서 단체로 이 과로 입학을 했나? 한참 강의를 듣는데 등뒤가 서늘하다... 알고 보니 이 과목은 일반과목처럼 개설되었지만 교수님께서 교환학생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꾸려가고 싶다고 교환학생이 아닌 사람은 다른 교수의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셨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읽지 않았다. 아니 찾아보지 않았다. 베트남 학교 이름을 줄여서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그게 우리 과의 이름이 변경된 걸로 추측하고 그냥 갔던 것이다. 하하.... 길고 긴 세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 갔다.

"교수님... 제가 뭔가 잘못 알아 들었나 봐요. 저는 교환학생이 아니고 이 학교 학생이에요. 혹시 저 다른 수업으로 가야 하나요?"

"이 과목의 실습 그룹에 들어가 있나요?"

"네 2번 그룹에 들어가 있어요."

"그렇다면 남아 있어도 돼요."

"감사합니다. 혹시 시험 보는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죠?"

"전혀 안니예요! 실습 그룹에 속해있으니 괜찮아요. 하지만 다른 교수의 수업이 듣고 싶다면 가도 돼요" 하며 웃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여기 남아있고 싶어요!"


다행이었다.. 결국 교환학생 60명과 이 학교 학생인 나 한 명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이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소속이 다른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것이 민망하지만 베트남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우리가 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반쯤 놓인다.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이만한 아이가 있을법한데 하하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얘들아 아줌마에게 너희들의 총명함을 좀 나눠주렴!!  


개강 주에는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도 계시고 아닌 교수님도 계신다. 우리 과가 필수로 들어야 하는 영어 수업은 레벨테스트만 진행하고 첫 주는 분반 결과만 나눠주기로 되어있었다. 개강 주 수요일 저녁 영어 분반에 대한 공지가 나왔는데 몇 번을 찾아봐도 거기에 내 이름이 없었다. 아이고 이번주 하나도 제대로 넘어가는 일이 없네!! 머리 아프다... 같이 놀자고 칭얼대는 아이를 떼어놓고 얼른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을 썼다. 그리고 왓츠앱 그룹에 용기 내어 메시지를 썼다. "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어." 몇 분 지나자 몇몇 학생들이 자기들 이름도 없다며 이메일을 써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밤 7시... 교수님께 전체 공지가 왔다. 리스트에 이름이 없는 학생들이 있으니 금요일까지 분반을 조정해서 다시 알려주시겠다고 쓰여있었다. 휴 다행이다 진짜...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이런 일들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도 아기의 가정보육은 자신이 없으니... 다시 현실을 보며 마음을 되잡는다. 아자! 파이팅!!


이번주 한주를 지나 보니 아무래도 시간표를 잘못 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간표대로라면 월목금을 학교를 가는데 월목으로 모든 과목을 몰았다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후회가 가득하다. 하루라도 덜 가고 싶은 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시간표를 짤 때는 사이사이 공강 시간에 끝난 수업 복습하고 다음 수업을 예습해서 시험 기간에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은 멀고도 멀었으니 당장 눈앞의 한두 시간 공강이 거슬린다. 어차피 미리 공부를 하든 안 하든 간에 시험공부는 따로 해야 할 거 같은데 말이다.


하아.. 이번학기에 듣기로 했던 세 과목 중에 하나는 팀 프로젝트로 진행된다고 한다. 대신에 시험은 없다.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2-3명씩 짝을 지어서 하라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나로서는 이거나 저거나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이다. 11월 말까지는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12월 첫 주부터 팀으로 하면 된다고 한다. 한 달간의 여유가 있으니 그 사이에 슬슬 알아보자... 안되면 혼자 해야지 뭐 ㅠㅠ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싶어도 사이사이 이런 사소한 걱정거리가 추간 된다.


여하튼 첫 주가 지나갔다. 학사 일정상 15주만 더 지나가면 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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