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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즈베리 Nov 18. 2024

개강 2주차 - 육아맘과 대학생 그 사이 균형잡기

지난 주말 밤 영어 수업 시간이 재공지되었다. 나는 목요일 오후 5시 45분에 시작해서 밤 9시에 끝나는 수업에 배정이 되었다. 시간표를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어? 아기 어린이집이 5시 30분에 끝나는데 수업이 5시 45분 시작이라고? 이걸 어째야 하나... 


영어 수업은 이번학기 수업 중 유일하게 출석체크를 하는 수업이다. 총출석률이 80% 이상이 되어야만 시험을 칠 수가 있다. 최대 2번의 결석만이 허용되는 것이다. 저녁 수업이라 심리적, 체력적 부담은 있지만 남편이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 수업에 참여하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수업시간을 변경할 수도 있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이 수업 시간을 유지하기로 했다. 


월요일 데이터베이스 수업은 1시간 반 수업을 하고 사이에 한 시간 점심시간이 있고 또다시 1시간 반 수업을 한다. 교실 가운데 즈음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다들 노트북을 켜고 딴짓하는 것이 보인다. 스포츠 기사를 읽는 친구, 용기 있게 게임을 하는 친구, 자바 숙제를 하는 친구 등등 딴짓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대단하다. 그리고 몇몇은 선생님 수업을 아주 재미나게 듣는다. 농담 아닌 농담에 크게 웃기도 하고 사이사이 질문에 대답도 잘한다. 어찌 저리 똑똑할 수 있지!! 나는 딴짓을 할 용기는 없어서 반쯤 졸린 눈으로 수업을 듣는다. 공책에 끄적끄적 중요한 것들을 메모는 하지만 100프로 집중한 상태는 아니다. 근데 이 수업에 노트에 필기하는 학생은 나 하나다. 다들 얼마나 손이 빠른지 노트북으로 필기를 하거나 패드로 필기를 한다. 확실히 이 친구들과 나는 세대가 다른가보다.  오늘은 집에 가서 꼭 저 PPT를 출력해서 복습을 하리라 다짐을 해본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수업이 없는 요일이긴 하지만 이번주엔 자바 숙제를 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 카티스라는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문제들을 풀어서 제출하는 과제인데 이번주에는 15개 정도의 코딩을 해야 한다. 주어진 문제에 따라서 코딩을 하고 그 프로그램을 카티스 웹사이트에 있는 컴파일러에 제출하면 자동으로 여러 가지 테스트 케이스를 거쳐 시간 안에 프로그램이 작동되면 accept가 된다. 수업 첫날부터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과제를 내주셨다.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학생에겐 자율성이 주어진 너무 재미있는 수업이겠지만 나는 첫날부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꾸역꾸역 인터넷에 자바 문법을 찾아가며 겨우 숙제를 끝 맞췄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자바 수업 듣기를 포기할까? 고민이 크다. 차분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드디어 목요일이 왔다. 이번주 내내 이 목요일 영어 수업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장점이 많아서 저녁 수업에 머무르기로 했지만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서 바로 남편에게 넘기고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이 아니다. 목요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이의 저녁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보냈다. 퇴근하기 전에 회사에서 전자레인지로 도시락을 데워오면 혹시나 하원 후 배고파 할 수 있는 아이에게 바로 먹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오전과 오후 수업과 공강을 반복하다가 오후 4시 40분 예정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남편이랑 같이 아이를 데리러 갔다.  어린이집 마당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우리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ㅠㅠ 아마도 말은 못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을지... 짠하고 미안하고 너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엄마가 공부를 하는데 우리 아가가 힘들어서 울다니 어찌 주객이 전도된 이 상황이 나도 당황스럽다.


아이를 바로 집으로 보내도 되지만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같이 보내기 위해 어린이집에서 나와 바로 옆의 컴공과 건축학과가 같이 쓰는 건물로 갔다. 나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건물 안에 어떤 아빠도 우리 아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앉아 있는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오? 이런 고생을 하는 게 나만 있는 게 아니네? 진짜 독일 대학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다른 집 아이도 이 시간에 이 건물에 있는 것을 보니 딱한 아이가 우리 아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도 되고 안심도 되었다.


아이와 함께 20여분의 시간을 보내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남아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강의실로 들어가는 내 발걸음에는 짜증과 예민함이 있는 힘껏 묻어났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하는 수업이라니! 정말 싫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벌써 착석해 있었다. 근데 그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는 분이 한 분 계셨다.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구부정한 허리를 가진 할아버지 학생이 계신 것 아닌가? 할아버지 학생의 책상 앞에는 오래된 핸드폰과 공책과 펜이 놓여 있었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꺼내놓는 MZ들 사이에 드디어 아날로그 동지가 생겼다. 하하 


할아버지 학생을 보며 내적 반가움을 마구 느끼고 있을 즈음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고 이번학기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교수님은 저녁 늦게 하는 수업이니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주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미국 출신이시고 IT분야에서 15년 정도 근무하시다가 이제는 IT영어 강의를 하시고 계신다고 했다. 수업도 토론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셨다. 밤에 듣는 게 너무 싫지만 수업은 너무 알차고 좋았다. 밤에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이미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툴툴 거리며 걱정을 안고 집을 나섰는데 오늘 학교에서 여러 사람들을 보니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얼마나 감사한 기회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게 되었다. 아마 내가 내년에 복직하고 나면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이렇게 아이와 아빠 단둘이 잠들어야 하는 날이 있을 텐데 이 목요일이 그날의 연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슬슬 적응연습을 할 수 있다니 나중엔 이 목요일에 감사할 날이 올 것 같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긴장의 목요일이 끝나니 금요일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했다. 자바 실습이 있는 날인데 원래는 수업시간에 배운 것에 대해 실습을 진행하는 수업이지만 우리 교수님은 이 시간을 프레젠테이션 시간으로 쓰라고 하셨다. 우리는 과제로 나왔던 15문제 중 두 개를 선택해 본인의 코딩에 대해 발표를 하고 그리고 발표한 학생에 대해서는 엑스트라 점수를 주신다고 했다. 엑스트라 점수라니! 놓칠 수 없지! 뒤로갈 수록 과제가 어려우질 테니 첫 수업인 이 시간에 꼭 발표를 하고 말리라.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짐에 다짐을 했다. 치열한 손들기 경쟁 끝에 발표 순서를 얻었다. 두 개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들어오니 긴장이 쫙 풀린다. 휴 오늘의 목표 달성!


자바 실습은 조교가 진행하는데 점수받는 팁을 많이 알려주었다. 자바는 따로 시험이 없고 이 카티스 프로그램 과제와 후반부의 조별과제를 통해서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수업에 끝까지 참여하고 제출하라는 것을 모두 제출하면 절대 fail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주에 과제를 하며 자바를 들을지 말지 엄청 고민했었는데 조교의 말을 들으니 일단 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주 한 주 그냥 따라가 보자. 할 수 있는 최대한 해보자. 중반부 이후부터는 조별 과제인제 이 수업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조를 어떻게 짜야 될지 막막하지만 아직 6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조 짜는 건 그때의 나에게 맡기고... 정안 되면 혼자 하지 뭐! 자발적 아싸의 삶은 고독하고도 용기있다.

 

긴장하고 스트레스받고 치열했던 2주 차가 끝이 났다. 어제 늦게 데리러 간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수업 끝나자마자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점심을 먹자마자 낮잠 자기 전에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가 낮잠에 들고 고요한 집에 앉아 있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드디어 주말이 시작되었구나. 숨찬 한 주가 끝난 것 같아 오늘 저녁에 맥주나 한잔 할까 했는데 새롭게 주어진 자바 프로그래밍 과제가 내 마음을 짓누른다. 휴... 나 대학생땐 놀 수 있는 시간도 많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없을까? 자바 수업 진짜 이대로 쭉 가도 괜찮은 걸까? 에라 모르겠다 애기 잘 때 일단 나도 좀 자자!

2주 했으니 14주 남았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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