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 중독'에서 벗어나기
나는 책 읽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들을 눈으로도, 손으로도 하나하나 짚으며 꼭꼭 씹어먹는 느낌이 좋다. 내가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거장들, 니체, 데일카네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런 사람들과 고요히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1년을 붙잡고 읽고 있는 것도 있고, 또 어떤 책은 하루 만에 후루룩 읽고 천천히 곱씹으며 며칠 동안 2 회독을 하는 책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다독'은 못한다. 누구는 1년에 100권을 넘게 읽는다는데, 나는 불가능하다. 내 독서 스타일에도 맞지 않는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책을 사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산 책을 다 읽진 않는다. 그냥 내가 소유하고 싶어서 산 물건들이라고 생각한다. 문구류도 좋아하는 문덕(문구덕후)이라서, 특정 브랜드의 노트와 펜을 사모으기도 한다. 그걸 다 쓰진 않는다.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모아둔다. 내가 소유했다고 해서 전부 다 가치롭게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과 문구는 소유한다는 그 자체로 내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인스타그램에 글 계정을 운영하고 나서부터는 내 독서와 취미가 살짝 변질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이거 인스타에 어떻게 올리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예쁜 문구를 사면 '이걸 어떻게 활용해서 예쁜 사진을 찍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다가는 '내가 아닌 남들을 위해' 책을 읽고, 문구류를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갓생'에 목말라 있다.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갓생' 사는 친구를 보거나, 자기 계발 인플루언서를 팔로우하며 '와 정말 대단하다. 어쩜 저렇게 부지런하고 가지런하게 살지'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해본 경험을. 나도 종종 있다.
미라클모닝, 매일 1시간씩 영어공부, 필사모임, 독서기록 등등. 열심히 하루를 알차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 완벽해 보이는 루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된다. '나는 뭘 하고 있지?' '저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도 한 번은 부러워서 따라 해 봤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영어 공부하고, 책 읽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그랬더니 고3 때 이후로 처음 코피가 났다. 골병들기 딱 좋은, 나와는 맞지 않는 루틴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행위들이 '무리'가 된 것이다.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었다면, 하면 할수록 오히려 에너지가 더 생겨났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처럼 말이다.
바쁘게 산다고 해서 다 갓생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바쁘고 열심히 사는 나'에 취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학대하기 쉽다고까지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바쁨=성공'이라는 공식에 중독되어 있다. 뭔가를 계속하고 있어야만, 성장하고 있어야만, 발전하고 있어야만 제대로 사는 사람 같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여유를 부리면 게으른 것 같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혹시 당신은 스스로에게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조금 오글거릴지라도, 당장 거울을 보고 물어보길 바란다.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노트에 펜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봐도 좋다.
나에게 말을 걸면, 신기하게 내가 모르던 나의 감정과 욕망들, 약함과 강함들이 튀어나온다.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따라 했을 뿐이고,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는 방법을 베꼈을 뿐이었다는 걸 말이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게, 솔직히 편하고 합리적이긴 하다. 성공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들 한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맞춰줘야 하는 기준이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내 기준을 세우는 건 어렵다. 실패할 수도 있고,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검증된 남들의 길로 가면 안전하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놓치는 게 있다. 그 '성공'이 정말 내가 원하는 성공인가? 남들 눈에 멋져 보이는 삶이 정말 나에게 행복한 삶인가?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원하는 지점까지,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자기 계발이 아닐까.
나는 1년에 100권을 읽지 못해도 괜찮다. 한 권을 1년 동안 붙잡고 있어도, 그 책에서 진짜 의미를 찾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포장도 뜯지 않은 문구들을 모아두는 것도 나만의 행복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 수 있지만, 그게 나다.
미라클모닝을 하지 않아도, 매일 운동하지 않아도, 토익 900점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내 속도로 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과는 순간이고 과정은 우리 삶인데,
그 결과가 어떻든 과정이 나다워야 행복한 삶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남들은 어떻게 살지?' 대신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무엇을 할 때 진짜 기쁠까?' '어떤 속도가 나에게 맞을까?'
답은 바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남들 기준으로만 살아왔다면 내 목소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과정 자체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니까.
중요한 건 완벽한 계획이나 화려한 성과가 아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가고, 그것을 내 방식대로 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냥 나다운 사람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