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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약을 삼킬 용기

AI 시대의 직장인 생존일기 (7)

by 최지현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파란 약을 먹으면 편안한 환상 속 현실에 머물게 되고, 빨간 약을 먹으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진짜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빨간 약을 삼킬 용기를 가져보자고 제안한다.

출처: 영화 <매트릭스>



지식(Knowledge)은 더 이상 희소한 가치가 아니다.

이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거의 모든 종류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복잡한 계산과 추론도 인공지능이 더 정확하게 수행한다. 인공지능은 효율성 면에서 인간 지능을 압도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Wisdom)다. ‘DIKW’ 개념은 피라미드 구조로, 자료(Data), 정보(Information), 지식(Knowledge), 지혜(Wisdom) 순으로 구성된다. 이 구조의 꼭대기인 지혜는 앞으로 인간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스크린샷 2025-08-24 오전 11.59.35.png DIKW 개념 도식화


지혜는 그 아래 단계들보다 훨씬 모호하다.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많고, 측정하거나 정의하기 어렵다. 지혜는 인간 고유의 해석 능력에서 비롯된다. 데이터 분석, 정보 정리, 지식 수준의 추론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수하다. 그러나 지혜의 영역은 다르다.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고, 판단이 달라지는 이유는 각자의 경험, 맥락, 감정,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니체는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라고 했고, 공자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지혜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사유다.

철학과 문학, 역사와 예술을 통해 인간이 무엇에 흔들리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교양이 아니라 직업적 생존 전략이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능력은 AI가 대체하기 어렵고,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적 감각의 가치는 커진다. 챗GPT가 상담을 잘해주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학습된 CoT(Chain of Thought)의 결과물이다. 인공지능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다. 인간은 왜 욕망하고, 어떻게 믿고, 무엇에 의해 행동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데이터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철학은 이성적 사고를 훈련하고, 문학은 내면과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서사로 드러낸다. 역사는 인간의 선택이 낳은 결과를 시간 속에서 추적하게 하며, 예술은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 인문학적 훈련은 감상 수준을 넘어, 맥락을 읽고 구조를 파악하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는 기계적 판단이 멈추는 지점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정답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구성하는 능력이야말로 시장과 조직에서 요구되는 사고 역량이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다.


AI 시대에 지식 노동자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 해답이 ‘가장 인간적인 것’에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비효율적이고, 모호하며,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제는 본질적이자 전략적인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 감정의 결, 해석의 뉘앙스, 설득의 온도, 관계의 복잡성—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경쟁력이다. 기술이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효율의 환상 속에 머물 수 없다. 현실은 인간만이 해석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빨간 약은 불편하지만, 진짜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는 환상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직시해야 할 때다. 그 준비는 인간에 대한 공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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