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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너리 Oct 30. 2022

#11 눈을 뜨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다.


"반드시 옳은 선택을 해야 해, 선택을 하지 못한 채로 있을수록 모든 건 가능한 채로 남아있어"

"각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옳은 것이야... 모든 길이 올바른 길이다. 모든 것은 다른 것일 수도 있고 그 의미보다 많은 걸 가질 수 있지"

『영화 '미스터 노바디' 대사 中』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30년 인생을 되돌아본 한 남자는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기 직전에 유튜브로 재생시켜 놓았던 명상 음악 소리가 여전히 잔잔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회상에 잠기기 전에 분노로 가득 찼던 방 안의 공기는 어느새 명상 음악과 같이 고요하고 평온해진 것 같이 느껴졌다. 몸살 기운과 치통도 양심은 있었는지 그 순간만큼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휴대폰을 집어 들고 명상 음악 영상을 확인해보니 3분의 1 정도인 4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지금까지의 인생 30년을 자신의 인생의 3분의 1 이지나 갔다고 생각했는데 회상에 젖어있는 동안 명상 음악도 딱 그 정도 흘러간 것이다.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는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둑 컴컴한 방안 블라인드 사이로 붉게 물든 세상의 빛이 작별 인사라도 하는 듯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회상하는 동안 벌써 하루가 끝나가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사정없이 내려 찍었던 키보드와 키캡들이 여전히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신발장 위에 여전히 쌓여있는 맥주 캔들이 눈에 보였다.


회상을 통해 기쁨, 슬픔, 괴로움, 행복, 환희, 사랑, 설렘, 좌절 등 오만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형형색색의 에너지를 발산하던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쳤던 자신의 과거를 타이머신을 타고 여행하다 온 기분을 잠시 느꼈지만 눈을 뜨고 나니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변한 건 오직 자신의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회상하기 전에 했던 질문들을 또다시 자신에게 던졌다.


"왜 이토록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황은 내 인생에서 계속 찾아오는 걸까?"


"이제는 정말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잘 못 됐는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군대에서 자기 계발서를 집어 들었으면 안 됐던 걸까? 그걸 시작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지 않았나? 아니면 아프리카에 갈 때부터 잘못된 건가? 호주에 갔으면 안 됐던 걸까? 내 인생을 IT라는 분야에 걸었던 선택이 잘못됐던 걸까? 애초에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팔자인 건가? 나 같은 놈은 꿈이란 걸 가지면 안 됐던 걸까?"


한 남자는 30년을 살아오면서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있게 한 수많은 선택과 경험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만약 자신의 선택과 경험을 인생에서 지울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지워버리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지 않았다.

순수하고 무지하기만 했었던 어린 시절,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마주했던 군대 시절,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내딛고 새로운 환경과 배움을 경험했던 아프리카 시절,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고 자신의 모든 걸 걸 수 있는 꿈이 생겼던 호주 시절,

도전과 실패, 환희와 좌절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밑바닥까지 내려와서도 꿈이란 걸 놓지 못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현재,

그 밖에 지금 자신을 있게 한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못했던 선택의 순간들..


이 중 하나라도 지워버린다면, 더 이상 그는 그 자신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가 살아오면서 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한데 모여 '한 남자'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그것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더 이상 '그'는 '그'가 아니게 되며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도 없게 된다.

비록 자신을 고통과 괴로움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던 선택이었을지라도 지금 '그'를 있게 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하고 귀중한 보물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앞으로 흘러간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정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많은 사람들이 갔던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소수만 갔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어떤 길도 가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다.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바다와 같다.

위대한 사업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고,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며, 사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등이 존재한다.

이 가능성들은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선택'이라는 행위를 했을 때 비로소 그것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가능성을 선택을 했을지라도 현실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가능성인 채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한 남자는 일반적으로 정해진 레퍼토리의 인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다. 정해진 레퍼토리라고 해서 나쁜 건 아니다. 그는 '변화'를 선택했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남과 다른 선택들을 했을 뿐이었다. 한 남자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비춰볼 때 열등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와 호주를 가서 자립하며 수많은 경험을 했고 외노자와 공장 노동자가 되기도 했지만 기획자가 되기도 했고, 영업인이 되기도 했고, 마케터가 되기도 했으며, IT 창업자가 되기도 했고 지금은 개발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도전과 실패, 기쁨과 슬픔, 절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했고 자존감이 치솟기도 했고 추락하기도 했으며 행복과 불행을 느끼고 울고 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을 만들어갔다.


그가 이러한 독특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해서도 아니고 뛰어나서도 아니었다.

단지 여러 가능성 중에 하나를 선택했고 그냥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뿐이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혹은 되려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으로만 존재하지 않았고 현실이 되어갔다.


한 남자의 인생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이유는 그가 했던 선택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고통과 괴로움에는 실체가 없었다. 그것들은 단지 그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었다.

그가 가진 꿈과 되고자 했었던 그 무엇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했었고 그것이 집착이 되어 스스로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가 되고자 했던 그 무엇과 꿈을 이루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그것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가능성일 뿐이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한 없이 부족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절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운명을 한계 짓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만들어내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한 남자의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어떤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생겨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다. 그러니 존재하지도 않은 것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남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과 선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꿈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집착을 내려놓고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기만 한 인생과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사실 매우 명쾌하고 단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로그래밍이란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코드를 읽어 들이며 어떤 목적을 수행하고 결과를 도출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코드가 실행되는 근본 원리는 조건문을 통해 어떤 조건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따라 특정 코드를 실행하고 그 안에서 반복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작업을 처리하고 어떤 의미 있는 결과물을 리턴한다.


이런 단순하면서 근본적인 원리를 토대로 다른 요소들이 덧붙여지면서 프로그램 코드가 복잡해지기 시작할 뿐이다. 순차적으로 코드를 읽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시간에 비유할 수 있고, 조건문은 선택에 비유할 수 있으며 조건에 따라 어떤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프로그래밍의 반복문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그 선택에 따라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프로그래밍에서도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정해진 코드는 없다. 다만, 정형화된 방법론만 존재할 뿐,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저마다 자신의 방법대로 작성할 수 있다. 인생  또한 사회적으로 정해진 기준이나 방법론이 존재한다.  그 길을 따라가면 쉽게 어떤 것을 얻어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타인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갈 뿐이다. 그것이 진정 자신의 길,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무작정 자신의 길을 만들 수는 없다. 이전에 길을 개척하고 만들어갔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며 배우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고 노력한다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남자는 지나치게 꿈에 집착하지 않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여러 선택을 하고 그것을 그냥 하는 것,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무언가 얻고자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결과를 받아들이며 그저 앞으로 전진하는 거,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렇게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인생의 큰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 그것이 의미가 있든 없든, 옳든 옳지 않든, 주어진 삶 속에서 그저 '나'다운 선택을 하고 '나'답게 살아보는 것,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해야 하는 일을 그냥 하면서 사는 것,

 이것이 자유롭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값진 선물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길에 옳고 그름은 없으며 모든 길은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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