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자락길 움직임
그동안 이런저런 연유로 동네 부근에서만 움직이는 바람에 봄 나들이다운 외출을 별로 못해 아쉬웠던 중 얼마 전 처음으로 시간을 내서 다녀온 곳은 서울 안산 자락길이었다. 안산을 빙 두르는 산책코스인데 가볍게 걷기에 무척 편하게끔 조성된 길이지만 길이가 생각보다 꽤 길어 이만 보 이상을 찍게 된다.
봄이 되면 다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북한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에 군집한 산과 숲의 숱한 길들을 차례로 둘러보는 것이 내 안에서 연례적인 이벤트처럼 되어있고, 보통 그 첫 코스는 3월이 되면 엄청난 개나리밭의 노란 물결을 구경할 수 있는 북한산 자락길이다. 이년 전 공황장애가 발병했던 봄, 잔뜩 얼어붙어 위축된 마음이 광장공포로 파급되지 않게끔 첫 바깥 외출지가 되어준 기념비적 추억도 있어서 봄이 되면 으레 가장 먼저 찾는 곳이지만 올해는 이미 개나리철을 놓쳐버렸기에 일부러 기억의 색인이 어긋나도록 작년 여름에 찾았던 곳의 봄을 관찰하기로 했다.
마침 날씨도 최근 들어 보기 드물도록 화창했다. 안산으로 향하는 길 지나는 연희동의 도시 경관이 재미있어서 더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역이 아닌 굳이 더 먼 반대 방향 쪽 역에서 출발하곤 한다. 참새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방앗간들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구조와 형태의 외양에 이끌려 여기저기 발걸음 닿는 대로 문턱을 넘나들고, 유독 어떤 것들에 시선이 중독적으로 머무르는 이유를 발견하고, 소소한 사치에 지갑을 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에 매료되는 누림은 현실이 과정을 반영하는 방식의 색다른 알림이었다. 내부에서 불이 지펴져 은근하게 배어 나오던 확신의 향내가 겉에서부터 스며들어 만나는 물리적 자극과 자연스럽게 섞여들 때, 내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나아가는 중이라고 슬쩍 확증해 주는 것이다.
다행히 안산에는 개나리도 진달래도 벚꽃도 조금씩은 그 흔적이 남아 있었고, 이제 새롭게 아카시아와 라일락과 황매화와 제비꽃과 복사꽃도 동참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메타세쿼이아를 지나 입산하는 초입도 어느덧 연초록의 새순이 돋아나 제법 모양새를 갖춘 숲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토록 짧은 봄, 꽃무더기가 너울너울 물결을 이루는 장관이 펼쳐져 있는 곳은 여기저기 어디에나 지천에 널려 있는데 내 비루한 두 발이 직접 디뎌낼 수 있는 곳은 너무나 한계가 있어서 늘 애가 탄다. 불안이 아닌 기쁨이 깃들어 있는 조급함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동요하는 마음의 초조한 즐거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관대한 분이신가.
떨어지는 꽃잎도 하늘도 새순도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봄다운 연한 파스텔 톤으로 통일되어 있는 포근한 색감을 즐기면서 하염없이 걸었다. 최근의 자기 극복의 과정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마련된 지금이, 이미 흘러가버린 후에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임을 알고 귀하게 여기고자 했다.
시각적 사치와 사유가 어우러지는 유흥의 도취가 깊어지는 오후가 될수록 하늘은 더욱 맑아지고 투명한 햇빛이 비추는 사위는 한층 선명하게 빛나며 강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작년과 다르게 역방향으로 돌던 코스의 마지막 부분은 인간의 눈이 담아낼 수 있는 시각적 한계 안에서 표현되기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풍경화 같은 봄 풍경의 절정을 보여주었기에 피곤함과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일초에 삼십 프레임씩 전사되며 끊어지는 우리의 물리성이 저차원적이라고는 하나,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이내 수천, 수만 장의 그림을 찍어내고 있지 않은가. 인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항상 욕심 가득한 수집가인 나는 오늘도 여지없이 만족스러운 전리품을 가득 모아 그러쥐고 돌아오는 길은 감개의 정동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