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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사 Oct 22. 2023

처음 만난  여름 방학

처음 만난 여름 방학 (1)

 “짠! 커피 배달!”


  “일찍 마쳤네?”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다. 햇빛보다 환한 웃음을 띤 윤슬이 커피를 들고 한별이 일하는 밭으로 왔다.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이 일찍 보내주셨어. 와, 배가 한가득이네.”


  윤슬은 읍내의 카페에서 일을 했다. 한별은 배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골로 도망친 그들은 각자 일을 구해야 했다. 한별은 당장 일을 시작하고, 돈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윤슬은 카페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가장 평범해 보인다는 것. 스무 살이 되어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녀의 눈엔 가장 평범해 보였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녀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카페에 일하면서 처음 마시게 된 아메리카노의 맛은 그녀의 이상과 달랐다. 커피를 입에 머금자마자 뱉었다. 담뱃재가 떨어진 물을 모르고 마셨을 때의 맛이 났다. 


  윤슬의 아빠는 집안 어디서나 담배를 물고 있었다. 집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고, 곳곳에 담뱃재가 마구 떨어져 있었다. 밥그릇, 수저통, 물이 담긴 물컵도 그에겐 재떨이였다. 그녀는 무심코 물을 마시다 뱉어내기 일쑤였다. 그 사람에겐 길바닥도 방바닥도 매한가지였다. 모든 곳이 쓰레기통이었다. 


  “수확 시기여서 그런가, 향이 되게 좋다.”


  윤슬이 농장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몇 달 전, 한별이 처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할 땐 냄새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밭이라기보단 약품 공장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쥐약, 스프레이형 킬러, 과산화수소, 크레솔 등 여러 약품 냄새가 가득했다. 


  몇 년 전부터 야생동물이 급격하게 많이 나온다고 했다. 농장에는 뉴트리아, 고라니, 살쾡이, 멧돼지 등이 골머리를 썩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점차 약품의 냄새가 옅어지더니 흙냄새와 싱그러운 과육의 향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늘에서 조금만 기다려 줘. 금방 끝나.”


  한별은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말했다. 그녀는 바닐라 라테를 마시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는 늘 아메리카노를, 그녀는 바닐라 라테를 마셨다. 그녀에게 아메리카노는 담뱃재가 떠오르는 맛, 아빠가 떠오르는 맛이었다. 한별에게 라테는 엄마가 떠오르는 맛이었다. 엄마는 매일 그에게 우유를 줬다. 과자를 먹을 때도, 과일을 먹을 때도, 소풍에 김밥을 싸갈 때도 늘 우유를 넣어줬다. 


  “진짜 깔끔하게 잘 딴다. 그래도 꼭지는 좀 남겨둬야 하는 거 아냐?”


  기다리기 지루해진 윤슬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도 맞았다. 이렇게 깔끔하게 자를 필요는 없었다. 아니, 이렇게 하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의 꼭지가 연결된 나뭇가지를 보고 있으면, 그게 꼭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달고 매달려 있는 그의 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별은 자신도 모르게 싹둑 잘라버렸다. 


  집착과 보호는 다른 뜻이다. 그 두 단어를 알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단어를 배우는 것은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것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집착한다.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이 보호이고 양육인지는 모르겠다. 집착과 방임 사이. 비슷한 단어가 비슷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도, 정반대의 뜻을 지닌 단어가 함께 섞일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엄마에게 배웠다. 그는 매일 숨이 막혔다. 


  “끝났어. 이제 점심 먹으러 가자.”


  그들은 일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갔다. 스무 살이 되면서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함께 아침을 먹고 각자 일찍 출근한 뒤, 퇴근 후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시작했다. 일과가 마친 후에도 같이 저녁을 먹었고, 그러다 보면 밤이 왔다. 


  그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밥을 빨리 먹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아빠를 피해 밥을 먹지 않아도 됐다. 이 집에서 처음 밥을 먹을 때, 그들은 밥 먹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깨지 않고 편히 자려고 노력했고, 공격적이지 않으려, 방어적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의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한별은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배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작물 판매와 유통도 맡아서 했다. 마을의 해결사 윤슬은 산책하러 나갔다. 그녀의 오후 일과는 주로 장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만나는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들을 해결해 주는 만능 해결사이기도 했다. 가끔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 품앗이도 하는 등 이것저것 마을의 공사다망한 인사였다. 


  처음부터 그들이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그들이 시골로 이사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경계하면서 바라봤다. 마을에는 청년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쉽게 귀농하고 빠르게 포기하고 나갔다. 윤슬과 한별도 그런 이들 중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차츰 마을에 스며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과 친해지기 전부터 그들이 함께 산다는 것,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건너 건너가 그들이 집을 계약한 부동산 사장이었고, 또 건너가 배 농장의 주인이었으며 또 건너 아는 사람이 그녀가 일하는 카페의 건물주여서 매일 아침 카페에 커피를 사러 다녔다. 그들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참하고 순한 아이들이라고 그들을 칭찬했다.


  윤슬과 한별은 시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농사짓는 법, 음식을 만드는 법 같은 일상의 중요한 일부터 태풍에 대비하는 법, 문 수리하는 법, 곰팡이 없애는 법 등 소소한 것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배웠다. 


  그러나 많은 것을 척척 해결해 내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마냥 어렵기만 한 것이 휴대폰이고 컴퓨터였다. 젊은이들을 보면 늘 휴대폰 사용법을 물어보았지만, 그것도 한두 번 일이지 다들 바쁜 일이 있다며 피하기 일쑤였다.


  윤슬과 한별만큼 마을 사람들에게 휴대전화 사용법을 매번 상세하게 알려주는 이들도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정부나 기업에서 이런저런 혜택이나 지원금을 주는 대신 따로 인터넷으로 신청할 것도 알아볼 것도 많았다. 그래서 마을 노인들은 늘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직접 신청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서곤 했다. 


  마을 어른 한 사람을 돕고 나면 그 소문이 하루 만에 마을에 다 퍼져서 너도나도 알려달라고 그들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도왔다. 그러다가 몇 번 더 하자 신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계속되는 부탁에 귀찮기도 했지만 늘 고맙다고 말하는 노인들의 뒷모습을 볼 때나, 자네들 없었으면 이런 건 알지도 못했다고 하는 말, 그리고 뭐 하나를 도와주면 늘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귀찮음이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평균 연령이 높은 시골 마을에서는 곳곳에 그들의 쓸모가 있었다. 하다못해 그냥 길을 지나가도 사람들은 그들을 예뻐했다. 젊은 친구가 마을에 있으니 마을이 환해진다, 참 예쁘다. 처음에는 그런 칭찬이 민망하고 어색해서 못 들은 척 지나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감사하다고 웃으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주고받는 감사가 좋았다. 한별에겐 부담감 없는 호의를 주고받는 것이어서 마음이 편했고, 윤슬은 자신을 가치 있게 느껴주는 사람이 생긴 것이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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