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김 부장이 아닌, 내가 겪은 진짜 얼굴

미화된 회사물이 아닌, 직접 겪은 기록들 (Prologue)

by 준헌


요즘 유튜브 쇼츠나 스레드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핫하다.

드라마를 직접 보진 않았지만, 편집된 장면들과 반응만 봐도 대강의 맥락은 알 수 있었다.


사실 전혀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다.

원작자(유튜브에서 부동산 설명해 주는 분)가 얘기하는 '회사는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으니, 미래는 재테크로 알아서 대비하자'라는 메시지만 간직하면 된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은 영업 출신이지만 관리직 와서는 꼰대질만 하고,

상사에 대한 과한 의전(이건 뭐 이해할 수는 있다),

슬리퍼 착용 같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자기 꼰대력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내 방식이 맞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 장면들을 보는 순간,

나는 기성 대기업에서 흔하게 보던 수많은 아저씨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드라마는 주인공이랍시고

합리적이고 사무적인 동료보다 ‘인간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포장한다.


그 감정 포장이 가장 거북했다.

왜냐하면 이런 유형을 이미 현실에서 충분히 겪어봤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남자 직원이 얼마나 쉽게 그들의 스트레스 배출구,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몸으로 배웠다.

그 상처는 드라마처럼 감동으로 덮이지 않는다.

결말도, 교훈도, 미화도 없고 상처만 남는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의 제목을 <나의 개저씨〉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의 아저씨〉에는 박동훈 부장이라는,

현실에 드물지만 분명 존재하는 ‘좋은 어른’이 나온다.

자기 욕심보다 사람을 먼저 보고, 권력으로 짓누르기보다 묵묵히 책임지는 상사.

회사생활에서 가끔 보았던, 정말 몇 안 되는 괜찮은 선배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현실에서 김 부장 같은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박동훈 같은 사람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런 마음으로 팀을 챙기지”

“요즘 애들이 날 오해하는 거야”

이런 식의 자기 합리화의 재료로 삼는 꼬락서니가, 가장 보기 싫었다.


현실에서는 박동훈은 유니콘 같은 존재고,

김 부장은 흔하디 흔하다. 더하면 더한 인간들이 많지.

그런데 현실의 김 부장이

박동훈의 얼굴을 자기 얼굴에 덧씌우며

스스로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게 심히 역겹다.


그래서 정반대로,

내가 실제로 겪은 진짜 개저씨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누군가가 스스로를 ‘좋은 아저씨’라고 착각할 때

그 밑에서 누가 얼마나 고통받는지,

그 현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드라마에는 허 과장 같은 인물도 나온다.

능력이 부족해 진급에서 뒤처지고,

팀에 피해를 줘도 버티다가, 지방 발령 통보에 억울함을 토하는 캐릭터.

대중은 그런 인물에게 동정심을 쉽게 준다.

하지만 그 서사에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현실에서는 허 과장 같은 사람들로 인해

젊은 직원들의 시간을 갉아먹고, 팀 성과를 끌어내리고,

유능한 직원들이 지쳐 이직하게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기획/관리 업무를 수행하며,

정리해고 기준, 그리고 인건비가 영업이익에 얼마나 큰 포션을 차지하는지 너무 잘 알게 됐다.

그리고 냉정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정리 해고 대상에 오르는 사람은 대부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만년대리, 만년과장 케이스도 드물지 않다.

업무 범위는 신입보다 좁고,

속도는 느리고,

업무 지시를 하면 “내 짬에 왜 이걸 하냐”라고 반발한다.

이런 사람들이 한 팀을 얼마나 무너뜨리는지 명확히 봤다.

그러니 드라마가 허 과장에게 느끼라는 불쌍함도

나로서는 억지에 가깝다.


결국 김 부장도, 허 과장도,

미디어는 감성으로 포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젊은 직원들을 소진시키는 구조적 문제의 두 얼굴이다.


그리고 그 두 얼굴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으로서

‘따뜻한 회사 서사, 혹은 잔인한 회사 생활의 피해자 코스프레에는 도저히 감정 이입할 수 없었다.


지난 회사 생활이 떠올랐고,

현실의 김 부장을 신고할까 말까 고민했던 밤들도 생각났다.

하지만 당분간은 회사에서 살아가야 했고,

문제를 크게 만들 에너지도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나왔다.

대신 이렇게라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앞으로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일들을,

몇 편에 걸쳐 하나씩 풀어낼 것이다.


거창한 폭로나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는 게 아니고,

그냥 이렇게라도 내 억울함과 화를 풀지 않으면

평생 이 기억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다음 글부터는

내가 직접 겪은 개저씨 만행 1편으로 들어간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