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탈을 쓴 폭력
"000, 너 일로 와 봐!"
김 부장이 팀장으로 부임한 후 세 달쯤 지난 날이었다.
부재인 선배 업무 커버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업무 대응까지 진행하고 있던, 평소처럼 바쁜 월요일이었다.
사무실은 조용했고, 키보드 소리만 들리던 아침이었다.
잔뜩 흥분했으나, 묘하게 생기 있어 보이는 얼굴의 김 부장이 조용한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너 이거 뭐야? 빨리 설명해 봐."
원인은 구매팀에게서 받은 메일 한 통 때문이었다.
사업부가 취득한 자산의 등재가 이월된다는 내용.
당시 사업부의 자산의 취득이나 말소 등 전반적인 관리에 대한 주관 부서나 담당자가 없었고,
실적 담당이었던 내가 그나마 감가상각비 반영 정도만 챙기고 있던 실정이었다.
김 부장은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 따졌고,
전후 사정을 잘 몰랐으나, 원칙적으로 대답했다.
구매팀 입장과, 우리 부서에서 대처해야 할 순서.
"너 생각이 있는 새끼야?"
돌아온 김 부장의 말은 문제 해결이 아닌, 분노 표출이었다.
네가 뭔데 혼자 판단해서 그 따위 얘기를 지껄이냐며.
억울했다.
충분히 대응 가능한 일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내 담당 업무라고도 볼 수 없었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리더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도 크게 번지는 걸 방지한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얘기하는 방식이었다.
언성을 높이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걸,
오전, 점심시간 직전,
한 시간 동안 본인의 화풀이를 할 내용은 아니었다.
"생각이 없는 놈", "왜 멋대로 판단하냐" 등의 표현은,
속된 말로 혼자 "좋뺑이 치는" 실무자의 업무 의지를 떨어뜨렸고,
결정적으로 모든 팀원, 그리고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다 들리는 자리에서 굉장한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한 시간이었다. 그의 화풀이는.
결론은 어떻게든 안 되는걸(마감된 재무 실적을 수정하는 것) 되게 해 오라는 억지.
화풀이가 마무리된 후,
흡연 구역에서 타 팀 선배가 내게 괜찮냐는 위로를 해 줬다.
몇 번 얘기해 본 적도 없는 또 다른 팀의 선배는,
"내용 들어보니 별 일도 아니구먼 왜 염병이래요"라는 위로를 해 줬지만,
다른 팀 사람들도 이 사태를 관전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그날 그 층에 있던 대부분이 이 상황을 다 보고, 들었을 것이다.
오전 한 바탕 사태 후에,
갑자기 팀 선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야 너 팀장님이 밥 먹으러 오래"
밥맛 다 떨어져도 같이 얼굴 마주 보며 점심 먹어야 하는 게 한국 직장인 아니겠는가.
본인은 "내가 좀 심했지?"라며, 기분 풀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처럼, 팀 선배가 한마디 덧붙였다.
"팀장님이 너한테 화낸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듣고 정신 차리라고 한 말이야."
그 말이 위로라고 생각했던 걸까.
말이야, 똥이야.
[감정이 아닌 구조의 문제]
사건 자체보다 더 문제였던 건,
그 행동들이 조직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였다.
첫째, 공개 모욕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조직 내 위계의 과도한 행사’다.
질책이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걸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하는 순간
업무 관리가 아니라 ‘인격적 공격’이 된다.
리더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짓누르면,
그 순간 팀 전체는 위축되고 침묵하게 된다.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누구도 의견을 내지 않게 되는 상태가 된다.
이건 조직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둘째, 화풀이식 질책은 문제 해결과 아무 상관이 없다.
리더가 화를 내는 이유가
정말 일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호해지면
실무자는 업무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없어진다.
‘논리’가 아니라 ‘기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조직은 언제나 무너진다.
셋째, 책임 전가는 팀의 신뢰를 파괴한다.
잘못된 책임 구조나 관리 부재는 이미 조직의 문제인데
그걸 가장 낮은 위치의 실무자에게 밀어 넣는 순간,
그 조직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프로세스를 고치고,
팀 간 역할을 정리해야 하는 건 리더의 역할이다.
실무자에게 ‘네가 왜 모르냐’고 소리치는 건 그 역할을 전가하는 것이다.
넷째, 욕설 후에 아무 일 없다는 듯 ‘밥 먹자’ 하는 이중성은 관계를 더 왜곡시킨다.
한국 직장에서는 흔히 있는 문화지만,
이건 ‘문제 해결’도 아니고 ‘화해’도 아니다.
그저 가해자의 감정을 덜어내고, 모욕을 사적으로 무마하려는 행동일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이 조직 안에서 반복되면 폭력과 친밀감이 동일선상에 놓인다는 점이다.
그건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래 그런 사람한테 한 번 물린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