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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May 06. 2020

구해줘 홈즈-현실판

6년간의 남의 집 구경 유랑기

가장 자주 찾아간 곳은 연희동이다. 회사, 친정과 가까운 '도심'인 데다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골목 가게들까지-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였다. 처음 마음을 뺏겼던 단독주택도 연희동에 있다. 사진관 앞 오거리 골목, 3번째 집. 인규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마당 크기가 적당한 단독 주택이었는데 위치도 좋고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두 번, 세 번 찾아가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비해 평당 가격이 괜찮게 나온 편이었다. 매매를 해서, 2층에 살면서 마당을 쓰고 1층 주차장을 공사해서 카페나 갤러리, 미용실 같은 작은 가게를 내주는 거다! 큰 빚을 내야겠지만 평생 갚으며 산다고 생각하고... 월세로 이자를 좀 충당하고..............


흠. 지금 생각해도 참 터무니없다. 애초에 신혼부부인 우리가 감당할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밤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 고민했다. 주변을 다니며 나름 시장조사(?)도 열심히 다녔다. 우리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꿈을 키우는 사이- 그 집은 팔렸다. 뭐, 당연한 결론이었는데, 무척 속상했다. 그 뒤로도 남편은 수시로 그 동네에 들렀다. 당시 우리의 안목이 괜찮았던 건지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근처도 가기 싫다고 했다. 부러워서, 배가 아팠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슬쩍, 안 보는 척 쳐다보고 말았다. 매매가 성사된 뒤에도 한동안 그 집은 그대로 있었다. 뭔가 틀어진 건가? 그냥 저대로 주거용으로 쓰시는 건가? 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몇 달이 지나니 공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집 전체를 회색 건물로 깔끔하게 리모델링해서 가게로 쓰고 있다. 


그 뒤로도 연희동에서 참 많은 집들을 봤지만, 그 집만큼 맘에 드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사이 우리는 먼저 전세로 살아보면서 우리가 단독주택에 맞는지, 연희동은 보는 것만큼 실제로 살기 좋은 동네인지 확인해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우리가 감당 가능한 전셋값이면 높은 언덕에 있거나 너무 좁거나 너무 오래된 집들이 었다. '이렇게 이렇게 고치면 예쁘겠다' 싶은 집들도 있었지만, 전세로 들어가 큰 공사를 하긴 어려웠다. 답이 전혀 안 나오는 집들도 있었다. 특히 오래된 집에 깊이 파인 방공호를 볼 때면 단독주택에서 '턱'하고 마음이 멀어졌다. (남편은 그 집에 '리스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곰팡이 가득- 뜯어진 벽지에 갈색 창틀은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넓은 마당은 감당할 자신이 없는걸요.


그 뒤로도 부암동, 구기동-평창동, 은평 뉴타운 등등- 여러 동네를 다녔지만 쉽게 답을 찾지는 못했다. 북한산 자락 끝 어떤 집은 윤종신 씨가 젊을 때 살았던 집이라고 했다. 집주인이 1층, 우리가 2층 전세를 사는 구조였는데, 집주인이 친절하게 웃으면서 '애기 키울 건가요? 여기 잔디에는 아무 물건이나 놓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 차라리 안 웃으셨으면 조금 덜 무서웠을 텐데 싶었다. 


집을 보러 다닐수록 '비싼 덴 이유 없지만 싼 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절감했다. 부동산은 냉정했다. 좋아 보이는 곳은 비쌌다. 거기에 '안전', '학군' 이런 단어들을 추가할수록 가격은 더, 더- 올라갔다. 차라리 집에 확신이 있다면 적당한 가격에 매매를 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고쳐서 오래 사는 게 좋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그 사이 인규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니 '살기 좋은 동네'도, '매력적인 동네'도 모두 기준이 바뀌었다. 안전한 환경이 우선이었다. 주변에서는 모두들 대단지 아파트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학원이 많은 동네 '초품아'를 찾아 일찌감치 자리 잡으라고 했다. 회사 근처 대단지 아파트, 요즘 '핫'하다는 대단지 아파트도 몇 곳 다녀봤다. 당연히, 좋다. 좋긴 좋은데... 나한테는 여전히. '방울토마토 심을 한 평 땅이 있는 집'이 가장 탐나는 집이었다.  


최근에는 타운하우스와 테라스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보러 다녔다. 삼송, 김포, 행신동, 파주 등등 내 생활권인 서울 서북부+경기 북부 지역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확실히 경기권으로 나가면 선택지가 넓어졌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한 타운하우스들을 계속 짓고 있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은 그만큼 길어질 테지만. 


파주의 한 타운하우스. 서울을 벗어나면 눈에 들어오는 집들이 더 많다. 다만, 그만큼 직장도 멀어진다.


이 과정을 거치는 6년 동안 나는 줄곧 회사 근처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지간한 집이 지금 사는 집보다 좋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첫 집은, 감사하게도 하루 종일 해가 잘 들어오는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오래된 빌라에서 답답하게 살아온 나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첫 집이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계속 '더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게 스스로 참 어리석다, 싶기도 했다. 또 6년을 품어준 아파트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습관(?)처럼 집만 보러 다니는 것 같아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게 뭘까'라는 대화도 너무 오래되니 답도 없고, 재미도 없어졌다.  


생각해보면. 삶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는 '결정적'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그냥, 스윽, 불현듯 온다. '어디 살 것이냐'로 시작해 '어떻게 살 것이냐'로 돌아오는 이 반복된 물음에 틈을 내준 건 코로나19였다. 강제로 집에 머무는 오랜 시간. 그나마 베란다에 나가 화분에 물이라도 줄 때 숨통이 트였다. 마침 일이 바뀌면서 더더욱 오래 집에 머물게 된 남편은 종일 답답해했고, 인규는 종일 TV만 봤다.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 건 남편이었다. 확진자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자 남편은 이런, 저런 집들을 혼자 보러 다니더니 '함께 가보자'며 단독주택 한 곳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이사가 결정됐다. 나름 지난 6년 우리가 '습관처럼' 집 구경을 다닌 경험들이 녹아 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 또 망설이면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2020년 4월 28일. 우리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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