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당황한 건 돌봄 교실 신청 때였다. 분명 남편이 신청하고, 서류도 남편이 접수했는데, 학교 측 공지는 '엄마'한테만 왔다. 나보다 더 당황한 건 남편이었다.
"아니, 왜 나한테는 연락을 안 주는 거지?"
(그때만 해도... 이 말을 그렇게 자주 하게 될 줄 몰랐다. 둘 다.)
남편이 학교 측에 연락한 뒤에야 둘 다에게 돌봄 교실 공지가 전달됐다. 3월 새학기 시작을 앞두고, 이번에는 학교 전체 공지사항이 전달됐는데, 이 역시 나에게만 왔다. 내가 '전달한' 공지사항을 통해 학교 알림장 앱에 접속한 남편은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 봐, 심지어 어플 이름이 스쿨맘톡이야."
둘 다 그냥 허허- 웃는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초등학교를, 둘째는 어린이집을 새로 등록했는데 교육 기관인 초등학교뿐 아니라 보육 기관인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연락은 엄마한테만 왔다. 심지어 교회 성경학교 연락조차 엄마한테만 왔다. 쏟아지는 공지사항들을 남편과 공유하며 '너무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둘째를 낳고 복직한 지 두 달 된 '일하는 엄마'고, 남편은 교대 근무를 하는 '일하는 아빠'다. 우리는 듣기만 해도 서러운 '워킹맘'으로도, 들어본 적 거의 없는 '워킹대디'로도 불리고 싶지 않다. 나와 남편은 꽤 팀워크가 잘 맞는 '워킹 페어런츠'다. 교대 근무로 평일 낮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남편이 첫 아이 학교와 학원을 주로 담당하기로 한 터였다. 그런데 학원은 전화를 걸 때마다 "아, 인규 어머님~"이라고 남편을 불렀다. 아이 학원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오늘 오후에 어떤 일정이 있는지 미처 챙기지 못한 나에게 연락이 와봤자 나는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연락은 나에게 쏟아졌다. <아이 돌보는 건 = 엄마> 공식이 견고했다.
학교나 학원이 부모 양쪽보다는 한쪽에 연락하는 게 더 수월해서라면? 시작할 때 주 양육자가 누구인지, 누구와 소통하면 좋을지 선택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아이 돌보는 건 엄마였다. 녹색 '어머니'회였고, 스쿨'맘'톡이었다.
주 양육자 다수가 엄마여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걸까?
자녀별 여성 고용지표(2019년)를 확인해보니, 만 15~54세 기혼 여성 중 만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은 모두 496만 명이었다. 이들 중 취업 여성은 282만 7천 명, 절반이 훌쩍 넘는다. 돌봄이 필요한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기혼 여성, 절반 이상은- 일하는 여성이란 의미다.
자녀 취학기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속출하는 것 또한, 물론, 통계에 나타난다. 그래서 '주 양육자=엄마' 공식이 성립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 경력단절 여성이 속출한다는 건 결과가 아닌 원인일 수도 있다. 주 양육자는 엄마이기 때문에, 그 공고한 벽을 넘기 힘들어서- 엄마들이 자꾸 직장을 관둘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여성 이사제 관련 취재를 위해 만난 이은형 교수님 인터뷰에서도, 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의 일의 성격이 굉장히 몰입을 요구한다는 거죠. 주말에도 나와라 그러면은 바로 나가야 되고 오늘 야근해야겠다, 그러면 야근할 수 있어야 되고. 한마디로 '온 콜'에 즉각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거든요. 하버드 대학 한 교수는 그걸 'greedy work', 탐욕스러운 일이라고 했어요. 일의 성격 자체가 굉장히 요구가 많다는 거죠. 그래서 가정에서 누군가 그 일을 하게 된다면 그건 주로 남성이 하게 되고, 여성은 반대로 아이의 육아와 관련해서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을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좀 유연하고 느슨한 일자리에 있게 될 가능성이 높지요.
대체로 엄마가 그런 역할을 하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라든가,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육아 책임을 지우느냐 하는 정도는 나라마다 굉장히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그게 굉장히 강합니다. 여성이 독박을 쓰게 되는 그런 문화인 거죠."
- 국민대 경영학과 이은형 교수
연령대별 고용률 분포를 보면 유럽 등 다수 국가에서 대체로 ∩자형 포물선 형태가 나타난다. 30~40대 고용률이 최고를 찍다 연령이 높아지면서 고용률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여성은 M자형 곡선을 그린다. 출산, 육아기를 겪는 30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다 함께 퇴장했다 50대쯤 다시 취업 시장에 등장하는 것이다. 단절된 경력을 이어 붙인다 해도, 저임금 저숙련 시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모양이라고 한다.
꼭 일하는 엄마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일하는 엄마든 전업 엄마든, 돌봄은 가족 구성원 전체가 함께 지어야 할 짐이다. 그게, 정말이지... 무거운 짐이다. (잠깐 눈물 좀 닦고 갈게요...) 아이가 내일 체육복을 입고, 미술에 쓸 재료로 단풍잎 10개를 주워가야 한다면 이게 왜 엄마만의 숙제가 돼야 할까. 나눠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돌봄 무게가 줄고, 무게가 줄어야 양육자가 행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래.야. 아이도 행복하다.
잘 살펴보면, 이미 현실은 상당히 변했다. 부모 중 한 명만 참석하는 졸업식에, 입학식에 아빠만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아빠들도 스쿨'맘'톡을 내려받으며 씁쓸하게 웃고 싶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