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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07 방학에는 더욱 특별해지는 품앗이 교육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기숙형 대안학교의 방학은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가정학습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하는 때입니다. 일반 공립학교의 아이들처럼 지속적으로 학원을 다닌다거나 가정에서의 연이은 학습의 과정이 없다가 방학을 하게 되면 한달가량은 자칫 생활이 흐트러지기가 쉽고 다시 개학하고 귀교했을 때의 규칙적인 생활이 힘들어지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학이 가까워지면 부모들은 마음의 준비를 비롯해 아이들의 가정학습을 도울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고민하고 함께 공유하기도 합니다. 우선 방학을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한 학기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택배 박스에 담아 집으로 보냅니다.


이불이며 책들이며 악기나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커다란 박스에 담겨 집으로 도착하면 일단 짐정리와 이불빨래를 하는 것으로 방학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던 학교에서처럼 방학에도 매끼니마다 시간을 맞추어 밥을 해주는 부모도 있지만 하루 몇 끼를 준비하든 방학동안 아이들의 먹거리를 신경쓰는 일도 보통일은 아니었습니다. 끼니를 챙기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 방학에 해야하는 과제와 보충학습 등을 신경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 여행이나 현장체험 학습도 방학이 아니면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기숙형 대안학교의 부모들은 처음에 한 두번 아이들과 방학을 보내다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요즘에는 부모 모두가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하루 종일 혼자 집에만 있게 되면 식사나 생활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돌아오는 방학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방학에 할 수 있는 인턴쉽이나 봉사활동 등의 일정이 있고 또 스스로 자신의 생활에 대한 관리 능력이 어느정도 성장한 경우가 많아서 큰 걱정을 하지 않지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라면 방학중 생활 관리가 특별히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학교 부모님들은 방학이면 지역별로 품앗이 가정학습을 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특별한 매뉴얼이나 지침을 주는 것은 아니었고 부모들 스스로가 지역별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품앗이 프로그램입니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이기 때문에 부모 모임은 보통 지역별로 이루어집니다. 서울지역, 경기지역, 인천지역, 대전충청지역, 강원지역, 전라지역 이렇게 총 6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경기지역에서는 방학이면 체육대회나 체험학습여행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도 함께 모이는 바비큐 파티와 같은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인천지역에서는 방학때마다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출국 전에는 ​학생과 부모들 20여명 정도가 팀을 이루어 필리핀 팔라완 지역의 문화와 음식 그리고 교육등을 주제로 미리 조사해서 발표하는 워크샵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지에서는 2주간  봉사활동과 문화 체험등의 의미있는 경험과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인천 지역 선교 여행이 해마다 진행되었고 공동체에 좋은 영향이 되는 것을 보고 타지역의 자녀들도 함께 선교여행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주 간의 여행 기간이 끝나면 주말마다 다시 모여 경제특강이나 악기연주와 같은 특강을 개설해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대전 지역에서는 방학에 지리산 산행 프로그램이 개최되었습니다.


지리산 등반을 여러번 한 가족의 부모들이 학생들 팀원을 모집하고 신청한 아이들과 함께 미리 체력 훈련을 했습니다. 산행에 대한 안전 교육도 미리 받은 아이들은 4박 5일 간의 지리산 완주를 통해 공동체의 부모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생활 인프라가 매우 부족했던 세종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한 집에 모아놓고 독서와 부족한 학습을 도와주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모여 오전에 두어시간 책을 읽고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해서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 생활했습니다.


늦잠으로 흐지부지 버려질 수도 있었던 오전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모여 책을 읽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독서나 공부 말고 밖에 나가 노는게 더 좋은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방학에 아이들을 하릴없이 혼자서 집에 있는 것보다는 함께 도란거리며 모였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엄마들도 모여 수다도 하고 학교와 아이들 이야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방학이 거듭될 수록 부모들의 품앗이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해졌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에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어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몇년간 생활하다보면 동네에 친구가 별로 없기 마련입니다.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라면 친구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교 친구들 전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전국구 친구망을 갖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또래 아이들의 정서상 자주 쉽게 만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학에는 부모들의 허락하에 친구네 집을 종종 방문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친구 관계가 다양하고 돈독할수록 방학중에 친구집을 방문하는 횟수도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둘째 딸아이가 중학생때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도 친구 가족의 찬스 덕분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사는 인천 지역의 한 교회에서 청소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주도 캠프가 3박 4일 동안 있었습니다.


일정을 보니 주로 여행지 방문이 대부분이었고 딸아이의 절친이었던 그 친구와 가족들의 초대로 멋진 여행을 함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면 항상 마음가짐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기 중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시키는 선생님들이 마치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숙사에서 아침 일찍 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생활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하게 신경써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 역시 부모 이상의 돌봄과 아이들의 생활관 관리를 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때가 많았습니다.


저에게 방학이라는 의미는 이렇게 학교에서 잘 생활하던 아이들을 개학할 때까지 가정에서도 생활과 학습면에서 잘 돌보아야 하는 책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잘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방학중에도 학교의 철학과 교육의 가치관의 중심을 잃지 않고 학교의 교사들과 부모가 동일한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저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올해로 10년째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열여덟번의 방학이 지났고 이제 마지막 학년 여름 방학이 남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그 전처럼 많은 일정을 부모와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마음으로 격려하고 지지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바로 방학입니다. 이 마지막 방학에도 아이의 마음이 부모의 사랑과 격려로 가득차오르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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