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별무리에서 버클리까지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 꽂히면 좀 오래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리포터”를 읽고 싶다길래 시리즈를 사주었는데 6학년 때까지 내리 3년을 해리포터 시리즈만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외골수로 자라는 건 아닐까?’ ‘다른 책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좋은 책들은 언제 읽지?’ 3년째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어떤 날은 일부러 해리포터 책을 읽지 못하게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동안 불타오르던 해리포터를 향한 열정이 서서히 기타를 향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던 건 대안학교에 입학한 7학년때 부터였습니다.
처음에 딸아이가 기타를 좋아하기 시작할 무렵 솔직한 심정으로는 말리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기타라는 악기에 저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즐겨봤던 만화영화 중에 “안녕 자두야”나 “아기 공룡 둘리” 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기가 높은 만화영화입니다. 거기에 보면 자두 외삼촌이랑 마이콜이 나오는데 그닥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캐릭터들이 한결 같이 기타를 들고 있습니다. 왜 작가는 하고 많은 악기 중에 마이콜과 자두 외삼촌의 손에 하필 기타를 쥐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의 기타라는 악기에 대한 이미지가 대체로 그랬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이가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심취했더라면 오히려 달가워 했을지도 모르는 편협함이 그 때 제 안에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기타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좋아하다가 덜컥 전공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기타를 품에 안고 살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타 연습만 하고 있었고 친구들하고 놀때도 기타를 들고 노는 것 같았습니다. 주말에 집에 와서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계속 기타 연습만 했습니다. 아침 잠이 많은 아이가 주말 아침이면 가족들 보다 한 두 시간 일찍 일어나서 기타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주말 아침 잠은 그 후로도 계속 반납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에게 간단한 코드와 주법을 배워서 연습하더니 유튜브 선생님을 찾아 혼자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기 기타리스트 정성하가 딸아이에게는 아이돌이었고 그 기타리스트의 악보집과 앨범을 구입해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연습했습니다. 일년 정도 그렇게 연습을 하던 아이가 어느날은 갑자기 기타 경연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콜텍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대회인데 전국의 기타리스트들이 참가하고 상금도 걸린 대회였습니다.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기타 연주하는 영상과 음원을 주최측에 보내야 한다면서 저에게 녹음실을 찾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독학으로 일년 남짓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전국 대회에 나간다고 하니 속으로 웃음도 나왔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지인을 통해 음악학원 녹음실을 몇 시간 빌려 연주영상과 음원을 녹음했습니다. 전국에서 12명이 본선에 진출하는데 놀랍게도 딸아이가 본선 통과를 했습니다. 연주곡 명은 ‘아리랑’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본선 진출이 뜻밖이었고 신기했습니다. 가족 중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더 그랬습니다. 본선 대회 연주날 홍대 앞 상상마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온가족이 출동했습니다. 대전에 사는 동생네 가족까지 함께 갔고 금산의 학교 친구들도 딸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에 모였습니다. 난생 처음 기타대회가 열리는 곳에 가보니 가보니 저만 제외하고 부모들의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아이가 세살 때부터 기타를 가르치면서 음악가로 키우고 있는 부모도 있었고, 딸 셋을 기타리스트로 키우기 위해 매니저를 자청하고 아이들 공연과 대회 뒷바라지만 하고 있는 엄마도 있었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버클리음대 합격생도 있었고 이미 인스타 팔로워가 상당수 되는 인지도 높은 기타리스트도 있었습니다. 옆에서는 그 기타리스트의 아빠이자 매니저가 명함을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경험삼아 가보자고 즐겁게 떠난 그 곳에서 저는 신세계를 봤습니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어디나 할 것 없이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끼고 왔습니다. 그날의 경험이 신선한 충격이었고 단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던 저와는 달리 아이는 쟁쟁한 기타리스트들의 틈에서 자신도 더 열심히 기타를 배우고 실력있는 연주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마음속으로 불태웠다고 했습니다.
8학년이 되자 아이는 저에게 기타 레슨 선생님을 찾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전문적으로 기타를 배우고 싶고 화성악이나 음악 이론도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9학년이 되면 인도 이동수업을 떠나는 아이가 그 사이 기타 레슨을 받는게 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움에 대한 아이의 열정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을 보면서 일년동안 원하는 레슨을 받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여기 저기 수소문 끝에 교회에서 찬양팀 반주를 하는 레슨 선생님과 연결이 되었는데 아이가 원하는 수업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몇 차례 더 레슨 선생님이 바뀌었고 아이는 그렇게 일년을 지나고 9학년이 되어 인도이동수업을 위해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일 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기타에 대한 열정이 식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도에서도 처음에 향수병으로 고생하던 2-3개월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처럼 늘 기타 연습 삼매경이었습니다. 밴드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놀때도 품에는 기타를 안고 있었고 숨쉬듯 악기와 함께 호흡하고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의 기타실력은 날로 발전했습니다. 인도에서 귀국한 이후에는 같은 대안학교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화성악과 음악이론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선생님을 스스로 찾아가 레슨을 시켜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11학년때 학교에서 독서캠프가 열리던 주에 ‘휴먼 라이브러리’ 라는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듣게 된 강연은 그 이후로 아이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력이 되었습니다. 광운대 실용음악과 교수이자 작곡가인 백하슬기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아이는 그날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고집을 보면서 저역시도 더는 아이의 꿈과 진로를 막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1학년 무렵 전공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제가 아이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모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자 아이는 그때부터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주말마다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서울로 학원을 다니면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학점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도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과목을 위주로 공부하고 입시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음대를 준비하고 입시를 치렀던 첫해에 안타깝게도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낙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는 국내 대학이 아닌 미국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음대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저도 아이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가야할 길이 분명해 보였고 언젠가는 그 길을 가고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나거나 실패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 마음 속에 자신의 진로와 꿈과 미래에 대한 더 확고한 결심이 서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외국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하는 아이에게 길게 보고 마음 편히 준비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재수를 하던 일년 동안 아이는 좁은 연습실에 아침마다 들어가 자신과의 싸움을 매일 했습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목표가 확고해진 이상 더는 재미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이 목표로 했던 버클리음대에 합격했습니다. 아이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준 버클리음대 입사관들이 적지 않은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CJ 문화재단에서 해마다 버클리음대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장학생에 선발되었습니다. 아이는 내년 학기 출국을 앞두고 지금도 맹연습 중입니다. 주말에는 학비를 벌기위해 레슨 아르바이트도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연주회를 다니며 용돈도 벌고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었던 교육환경과 그 안에서 마음 다해 칭찬하고 격려해 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꿈과 비전을 위해 하루하루 열정을 다해 살아왔던 아이의 노력이 감격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