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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

by 한상영변호사 Aug 11. 2020

어머님은 아버님이 먼저 소천하신 후 고향마을에 얼마간 혼자 거주하셨다.  


차츰 연세가 더 드시며 낙상을 여러 번 입으셨다. 나중에는 혼자서 거동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읍내에 있는 요양원에 왔다 갔다 하시다 나중에는 도시에 있는 둘째 형 집에 거주하셨다. 그러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형 집 근처 요양원으로 모셨는데 그곳에서 6개월 정도 지내시다 2년 전에 소천하셨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대학에 다닌 후부터는 사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뵌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명절, 생신이나 휴가철을 빼놓고는 항상 마음만 있을 뿐 서울에서 나의 생활을 유지하다 보면 세월이 금세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미 내 생활은 서울에서 정착이 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80년 이상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서울 생활은 아예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고향으로 이사 가지 않은 이상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온 지 어언 37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부모님은 모두 내 곁을 떠나셨다.


아버님에 이어 4년이 지나 어머님마저 떠나시자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마음을 제대로 추스를 수 없었다. 저녁 식사 후 혼자 산책하는 중에도 부모님 생각이 나면 가슴이 멍 먹 해지며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이어 주는 것은 부모님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분들이 살아 계심으로 인해 과거도 항상 현재가 될 수 있었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함께 보낸 추억의 시간들이 아련히 가슴속에 떠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어느 고객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땅 문제로 사건을 의뢰했다. 50대 후반의 중년 남자였다. 모습에서부터 매우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이력이 느껴졌다. 부인, 아들도 그와 함께 사무실에 왔다. 그의 직업을 물어보니 정부 공기업의 자회사에서 35년 동안 운전기사로 일하다 1998년 IMF사태로 어쩔 수 없이 정년퇴직을 한 것이었다. 말이 35년이지 그 긴 세월 동안 운전기사로 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말같이 쉽단 말인가? 


그가 운전기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장남은 미국의 유명 주립 대학교 경제학과를 석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고, 차남도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났다.


그가 조용히 자신의 어머님 이야기를 꺼냈다.


“제 어머님이 지금 92세의 고령입니다. 아버님은 6. 25 직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은 슬하에 4남 4녀, 그러니까 8남매를 두셨습니다. 6. 25 전쟁 당시 저희 가족은 전투가 매우 치열한 강원도 화천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혼자서 전쟁의 포화를 이겨내고 우리 8남매를 병아리 품듯이 보살펴 주셨습니다. 어머님 홀몸으로 우리 8남매를 잘 지켜내고 키우셨습니다. 현재까지도 우리 8남매 모두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 이야기를 계속하던 그는 어머님에 대한 애처롭고 감사한 마음에 이내 가슴이 복받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는 고령의 노인이 된 어머님을 자식들이 서로 모시려고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 서울 근교에 사는 여동생이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데 장남인 자기가 어머님을 계속 모시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퇴직금으로 2000년경에 여동생이 사는 경기도 양평 근처에 땅을 하나 샀다. 거기다 새로 집을 짓고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땅에 법적인 문제가 생겼다. 사정이 있어서 땅의 명의를 누나 이름으로 했는데 누나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그 땅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들고 내 사무실에 찾아온 것이었다. 1심에서 왜 패소했는지 그 이유를 자세한 상담을 통해 분석했다. 1심 판결도 충분한 변론과정을 거쳐 판사의 심사숙고 끝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대충 작성할 수 없었다. 


증거나 법리에 의해 앞뒤가 정확하게 들어맞아야 해서 장문의 항소이유서를 작성하여 2심 법원에 제출하고, 이어 열린 변론기일에서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판사에게 설명하였다. 


약 10개월에 거친 재판 끝에 1심 판결이 번복되고 의뢰인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다. 상대방이 2심 판결에 대해 더 이상 불복을 하지 않아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승소로 최종 확정된 후 그는 어머님을 자신이 지은 집에 편안히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었다며 매우 기뻐했다. 그의 부인과 자녀도 모두 즐거워했다. 

 

당시 그분의 어머님이 92세였으니 지금도 살아 계신다면 106세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만난 의뢰인의 가족 중에 가장 노령인 분이 106세인데 그분의 어머님도 지금까지 살아 계실까? 혹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공기 좋고 물 맑기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싶은 아들의 따뜻한 효심을 품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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