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이 홧김에 모친 집에 불을 질렀다.
아침에 뉴스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딸이 엄마 집에 불을 질렀다. 그것도 홧김에 그랬다는 것이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용을 보니 부친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이 모든 재산을 남동생에게만 준 것이 방화 동기였다.
당연히 그녀는 현주건조물 방화죄(사람이 거주하여 살고 있는 건물에 대한 방화라고 해서 현주건조물 방화죄라고 한다)로 1심 형사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그녀는 집에 모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방화했다. 방화 즉시 소방서에 신고도 했다. 이런 것들이 참작되어 실제 형을 살지는 않고 집행유예가 되었다.
재산이 뭐 길래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엄마와 딸 사이에 불까지 지르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렇게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재산 문제이다. 가족 사이에도 재물의 위력은 여지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더 큰 파괴력이 있다.
김 씨는 가족의 재산다툼으로 인해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최근에 그의 부친이 뇌졸중 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했다. 부친은 80대 초반으로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모친도 살아 계시지만 치매가 있어서 부친을 돌볼 형편은 못되었다. 부친은 그의 명의로 20억 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부친의 재산을 두고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많은 재산을 받기 위해 부친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서로가 모시려고 했다. 부친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어디에 입원해 있는지 다른 형제에게는 알려 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부친이 자녀들의 재산 다툼에 볼모로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친이 사망하면 부친을 봉양한 자의 기여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재산이 모친과 자녀 사이에 법정 상속비율로 자동 상속될 예정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친 사망 전에 서로가 더 많은 재산을 미리 받아 내려고 분쟁이 생긴 거였다. 즉 생전 증여를 더 받아내려는 것이었다.
부친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지만 정신 상태가 왔다 갔다 하셔서 완전한 의사무능력 상태라고 보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부친 정신이 온전해질 때 자녀들은 서로가 부친으로부터 증여 약속을 받아 내려고 했다. 급기야는 부친 돈 문제로 서로 형사 고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부친을 의사무능력자로 생각하여 법원에 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부모 유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경우들이 모두 발생한 사례였다. 상담을 하면서 부모가 미리부터 유산 배분을 잘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씨는 대학교수였다.
부친은 거의 90에 가까운 고령의 노인이었고, 모친도 80대 중반이었다. 부친은 자신과 여동생을 자녀로 두셨다. 모친의 정신 상태는 온전하였다. 부친은 1년 전에 미리 법률사무소에서 유언 공증을 해서 모친과 두 자녀에게 유증을 해 놓았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김 씨의 사례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은 것이다.
그런데 유언 공증의 효력에 대해 여동생이 문제를 삼았다. 유언 공증은 여동생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증 법률사무소에서 이루어졌다. 공증에 의한 유언을 하기 위해서는 증인 2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부친이 유언의 취지를 말로 진술 전달하고(구수), 변호사인 공증인이 유언자의 진술을 필기한 후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민법 제1068조). 그러나 설사 공증사무소에서 유언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유언자의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상태라면 유언의 효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동생은 부친이 유언할 즈음에는 부친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하였는데 어떻게 유언 공증이 이루어졌느냐며 유언무효 소송을 제기할 태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이 씨는 일단 부친 재산이 소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재산관리 방법에 대해 나의 자문을 구하였다.
나중에 실제로 유언무효 소송이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부모의 재산 때문에 단 둘밖에 없는 오누이 사이의 의가 상한 안타까운 사례였다.
박 씨는 외동아들이었다.
모친은 부친보다 먼저 사망하였고, 부친과 그만이 남게 되었다. 부친의 나이는 8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부친이 모친 사망 후 얼마 안 되어 새로 재혼을 하게 되었다. 80대 고령의 나이에 새로운 사람과 사랑한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보기에는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그는 고령 여성이 부친의 재산을 노리고 부친에게 접근하여 환심을 사서 결혼한 것으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부친은 결혼하자마자 모든 재산을 새로 재혼한 여자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생전 증여를 한 것이다. 이전에도 그는 부친과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친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재혼한 후 부친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다. 재산은 이미 재혼한 여자가 모두 차지하고 그에게 분배할 재산이 거의 없었다. 그는 억울하여 내 사무실을 찾았다.
재혼한 여성을 상대로 유류분이라도 반환 청구하기로 했다. 유류분은 상속인의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위해 사망자의 재산처분권을 일정 범위 내로 제한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부친이 유증(유언에 의한 증여)이나 생전증여로 재산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하자. 그래도 상속인인 그는 유류분 권리에 의해 그가 원래 받았어야 할 법정 상속분(5분의 2) 중 50%인 10분의 2는 재혼녀로부터 다시 반환받을 권리가 있었다.
유류분 반환 소송 진행 중에 재판부는 사건을 조정절차로 회부했다. 전직 법원장이었다가 퇴직 후 조정위원으로 봉직하는 조정관은 쌍방을 합리적으로 설득하였다. 그는 조정결정이 완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결과에 승복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벌어 놓은 재산이 자녀들에게는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공짜로 들어오는 돈을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다. 남겨 놓은 유산이 많을수록 가족 사이의 다툼이 많이 발생한다. 당사자인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들도 재산 다툼에 가세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능하면 생전에 판단능력이 온전할 때 재산 문제를 사전에 정리해 놓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도 사는 형편이 제각 기라서 섭섭한 형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 부모님은 딱 두 분이 사실만큼 재산이 있었다.
돌아가실 때는 남겨 놓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 재산이 있었다면 우리 형제간에도 다툼이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간혹 부모로부터 상속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공짜 바라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삶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자문한다.
만약 나에게 많은 유산이 있었다면 지금만큼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을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부모님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공짜 없는 삶, 그것이 진짜 인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