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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Jul 06. 2021

살며, 다투며, 배우며

결혼 초반 어느 봄날에 아내, 어린 두 딸과 함께 서울랜드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큰 딸이 5세, 작은 딸이 3세쯤 되었다. 공원에서 공놀이도 할 겸 축구공을 가지고 갔다.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는데 공이 다른 사람들이 놀고 있는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공을 잡으러 뛰어가는데 작은 딸 또래의 어린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우리 공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서는 한참 동안 우리를 무시하고 마치 자기 공인 양 우리 공을 가지고 신나게 노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냥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거기서 뭐해, 어서 공 가지고 와. 우리도 놀아야지!”

그 어린아이에게 혹시 상심이 될까 봐 돌려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노심초사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니 아내가 답답해서 소리쳤다.


내 것을 챙기기보다는 남에게 주로 양보만 하고, 타인에게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삶을 살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권리를 변호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의 삶이다. 이처럼 미래는 때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흘러간다.


서양에서 보통 전문적인(professional) 직업군으로 목사, 의사, 변호사를 든다. 이들 세 직업이 삶의 가장 중요한 치료자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삶이란 물질만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영혼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상한 영혼을 치료할 목사가 필요하다. 당연히 의사는 그 전제로서 영혼이 거주하는 인간의 육체를 치료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무엇인가? 상한 사회적 갈등 관계를 치료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별도로 심리 상담가의 직업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변호사는 심리 상담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인 갈등을 다루는 치료자이다. 


 갈등관계에 빠진 당사자들을 상담하고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인다. 법의 판단을 받아 권리를 회복한 자는 경제적인 이익을 취득함과 동시에 정의가 회복되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패배자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왜 부당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를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타인의 권리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갈등 치료자인 변호사의 삶을 산지가 16년이 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고객과 만나 수백 건의 사건들을 자문하거나 상담하고 소송을 수행했다. 사회적 갈등을 다루며 당사자들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마치 흙더미 속에서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나듯 갈등의 삶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내 삶도 완벽하게 영위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을 변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치열한 법적 분쟁 현장에서 지켜본 타인의 삶에 대한 간접 경험을 글로 정리하며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부분 아무 문제없이 평탄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해관계가 충돌되고 서로 간에 대화와 타협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많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가 평탄한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이. 그럼에도 아이는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며 성숙한다. 어쩌면 삶의 세 수레바퀴는 이것이 아닐까? 


“ 살며, 다투며, 배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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