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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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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Dec 23. 2021

못난이 집빵

난 외모 보는 여자였다.



제과, 제빵 기능사 국가 자격증을 딴지 꽤 오래됐다. 식구들 입맛에 맞게 기본 레시피를 요래조래 수정하면서 우리 집레시피를 만든다. 거기에 정성을 한두 꼬집 넣어서 구워낸다. 어느 베이커리보다 맛있다고 식구들은 엄지척을 해준다. 단 하나의 단점은 제품들의 외모다.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허당미 풍기는 못난이 빵, 못난이 케이크가 된다. "있지만..."으로 시작되는 식구들의 비주얼 지적질나는 말하곤 한다. 모양 반지르르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제품이 품고 있는 재료 본연의 깊은 맛을 즐기라고.


집밥같이 구수한 집빵이지만, 집밥을 계속 먹으면 외식하고 싶듯이 집빵도 계속 먹으면 외식빵이 먹고 싶다. 그럴 때면 식구들과 집 근처 빵집이나 디저트 카페를 찾게 된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면서 '픽미업'을 외치고 있는 빵이나 케이크들을 욕심껏 골라 본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첫맛에 반해 폭풍 흡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혀에 마비가 온다. 강한 맛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때쯤 되 식구들은 정해진 답을 이야기한다. 비주얼은 떨어지지만 빵이 담백하고 맛있다고. 사랑이 듬뿍 첨가된 못난이 빵은 화려한 카페 빵에 결코 지지 않는다. 역시 모양보다는 맛이다.




결혼 전, 남편은 내가 배우 김남주를 닮았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니면서 눈총받았었다. 친정 아빠도 "자네.... 그건 아닐세."라고 단호하게 말다. 여동생은 정색을 하면서 진심으로 화를 냈었다. 나조차도 그 말에는 어이가 없었다. 남편의 눈에 콩깍지 덕에 배우 김남주를 닮은 예쁜 사람된 것이었다.


결혼 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남편의 동공은 심하게 흔들렸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땐 마눌님의 아름다운 내면이 외모를 감싸버렸어. 김남주 씨에게 미안했지."


남편에게 나는 그냥 내면만 예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외모지상주의를 맹렬히 비난했다. 사람의 얼굴과 몸매는 내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오로지 중요한 건 내면의 아름다움이라고 줄곧 주장하면서 살아왔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그 구걸남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잘생겨서일까? 자연스럽게 구걸남에 ''자가 붙어버린다.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그 해의 여름은 대부분 유럽 국가들에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을 정도로 더웠었다. 남편과 아들은 무더운 한에는 숙소에서 나오기를 꺼려했었고, 나는 베네치아에서 유명하다는 유리공예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거리로 나왔었다.


분명히 바람 한점 없는 날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간질간질한 바람이 불어왔고, 눈을 뜰 수 조차 없는 빛이 눈앞에서 팡 터졌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살랑이는 바람과 찬란한 빛을 뿜으며 이탈리아 남자가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의 정의에서 벗어난 외모였다. 그 남자는 내 앞에 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했다. 10유로를 달라고. 손함을 표현하는 "플리즈(please)"라는 말도 없이 당당하게 돈을 요구했다. 을 헤벌리고 홀린 듯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10유로짜리 지폐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 세상 외모가 아니었던 구걸남님은 씽긋 웃으며 윙크를 날리고... 그렇게 피 같은 10유로와 함께 빛 속으로 사라졌다.


...... 

외모를 보는 여자였다.




손이지만 예쁜 모양의 빵과 과자를 만들도록 노력해 보기로 한다. 물론 기본인 맛내기에 충실한 후 멋내기에도 신경을 쓸 것이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사람도 그렇다. 베네치아 구걸남님 때문에 얼굴 보는 여자임이 증명됐지만 그래도 내면의 아름다움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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