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시 3교대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고, 단 한 번의 중단이 커다란 손실로 돌아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 정전으로 30분 동안 생산이 멈춘 삼성전자는 직접적인 피해 규모만 500억으로 추산했다("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평택공장 정전, 피해 500억 원"", 뉴스1, 2018년 3월 30일). 그렇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공장은 계속 가동 중이고, 가동 중인 설비를 운영할 인력들도 항시 상주할 수밖에 없다. 이건 반도체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등 연속공정으로 작업이 이뤄지는 다른 제조업도 마찬가지인 부분이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석유화학 회사는 일본에서 설비와 기술을 들여오며 성장한 회사였다. 따라서 사용하는 용어에도 알게 모르게 일본식 한자어가 많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3교대 이름도 심플하게 조간/주간/석간반으로 호칭했다. 그리고 교대반과 반대되는 일반 근무를 주전반이라고 불렀다. 조간, 주간, 석간은 시간과 관련된 한자 표현이라 듣자마자 알겠는데, 도대체 주전반은 사전을 찾아봐도 나와있지 않은 표현이라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주간(晝間) 근무가 전문(專門)인 반(班)이라 주전반(晝專班)이라고 부르나보다 했었다.
반도체에서는 3교대 시간을 Day, Swing, GY라는 약자로 구분하여 부른다. Day는 오전 근무이고, GY는 야간 근무, 그리고 Swing이 오전과 야간을 이어주는 오후 근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 용어들도 한국이 반도체를 배워온 미국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내 보고자료나 이메일을 보면 굳이 필요 없는 부분에 영어가 쓰여있거나 아니면 영어 단어가 원래 뜻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미국식 반도체 용어가 굳어져 이제는 헬조선 반도체 업계에 로컬라이징(Localizing) 된 케이스(Case)라고 생각한다. 영어 좀 써봤다.
GY는 Graveyard의 약자인데, 야간근무를 하필이면 "묘지"이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데에는 영국의 묘지기 야간근무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The meaning and origin of the expression: Graveyard shift, phrases.org.uk). 16세기 영국에서는 아직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산 사람을 죽었다고 판단하고 묻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시신의 팔에 종을 달아 혹시라도 시신이 깨어나면 소리가 나도록 하고, 이를 들을 수 있도록 밤새 묘지기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어째 좀 으스스 한 이야기이다.
나는 군대에서 전역하기 전 2달 동안 야간 당직 근무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점은 '나는 절대로 야간 교대 근무는 못하겠다'였다. 처음에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밤에 근무하고, 남들 일하는 낮에는 자면서 쉬기 때문에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전역을 앞두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야간근무가 반복되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걸 느꼈다. 밤새 일하니 배고프기도 하고 졸지 않기 위해서라도 간식을 많이 먹었고, 또 아침을 먹고 자다 보니 제대로 소화도 못 시킨 채 잠들어 속이 늘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피곤해도 해가 떠 있는 낮에 자는 건 쉽지 않았다. 남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깊게 잠들지도 못하고, 계속 잤다 깼다를 반복하다 보니 누워있는 시간은 길어도 막상 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밤낮을 바꿔 사는 것이 이렇게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왜 뱀파이어들 성격이 더러운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반도체 공장으로 이직을 한 후에는 1년 동안 기숙사에서 살았다. 내 룸메이트는 Etch 공정의 3교대 설비 엔지니어였는데 덕분에 3교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대략 10일 간격으로 근무 형태가 바뀌는 형식이었다. 룸메이트가 GY 근무에 들어가면 나와 근무시간이 정반대였다. 내가 퇴근하면 룸메이트는 출근하고, 내가 출근하면 룸메이트는 퇴근하기에 마치 방을 혼자 쓰는 것 같아 좋았다. 반대로 Day이나 Swing 근무 때는 최악이었다. Day 근무 때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느라 부스럭거리고, Swing 근무 때는 막 잠에 들 무렵인 밤 12시~1시 즈음 방에 들어와 씻을 준비를 하느라 너무나 괴로웠다. 지금 와서 그 괴로움을 생각하면 기숙사에서 1년 버틴 것도 대단하다 싶다. 기숙사는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하고 출퇴근이 편한 점은 좋았지만, 그것만큼 포기해야 할 점도 많았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평택공장 정전, 피해 500억 원", 뉴스1, 2018년 3월 30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21&aid=0003268871
The meaning and origin of the expression: Graveyard shift, www.phrases.org.uk
https://www.phrases.org.uk/meanings/graveyard-shif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