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업이란, 내가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내 아들이나 딸이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이런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원에서 태어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확인해보니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났었다. 지금이야 대한민국이 삼성 공화국이라고 말하면서 삼성 바이오 등 정부와 관련된 수많은 삼성 비리들에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삼성은 한참 사업을 확장하면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 같은 느낌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부모님은 다들 삼성전자에 다녔고, 가전제품은 모두 삼성전자 제품을 썼으며, 자동차는 삼성차를 타고 다녔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 동수원 초등학교를 다니고 아주대학교에 입학하고, 어른이 돼서는 삼성전자에 다니며 삼성전자 제품을 쓰며 삼성 자동차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했다.
우리 집이 잘 풀린 건지 안 풀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서울 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 가끔씩 수원에서 살던 좋은 시절이 떠올랐지만, 그때와 서울의 삶을 비교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초/중/고를 서울에서 버티며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난다고 해도 너무 오래전 일인 것 같다. 서른이 넘은 지금, 그때를 떠올리고 비교하기란 이미 늦은 일이다. 다만 가끔 생각한다. 내가 수원에서 계속 살았다면 서울에서 살았을 때 보다 별로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서울에서 버티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은 잘 안 난다. 이사를 많이 다녔던 것 같고, 부모님도 많이 힘들어하셨다. 초등학교 때 이사를 와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잘 버텨내고, 다행히 대학교도 서울에 있는 곳에 입학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꿈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학창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가. 덕분에 나는 하루에 왕복 세 시간이 넘는 지루한 통학을 하긴 했지만, 서울에 있는 좋은 학교에 다니며 이십 대를 지냈다.
나름 이름있는 학교를 졸업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워낙 특이한 학과를 전공한 덕분인지 취업을 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모 대기업에 취업하여 마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공계를 졸업하여 서울에서 일하기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이었고, 전공을 그대로 살려 일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 어려운 일을 자꾸 해내며 3년 반을 일했다. 20년을 넘게 산 부모님 댁에서 출퇴근하며 본받고 싶은 상사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괜찮은 연봉을 받았으니, 배가 불러도 한참 부른 상황이었다.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야심 차게 주도하던 프로젝트가 결국 엎어지고, 속한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나는 회사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다른 회사로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항상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야 정말 운이 좋아질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정말 때맞춰 좋은 기회들이 굴러들어오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직을 생각하는 순간, 3년 만에 삼성그룹에서 환경 안전 직군을 타 직군과 독립적으로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자소서와 면접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미 예전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매일 작성하던 보고서와 이메일, 그리고 상사들 앞에서의 대면보고가 나에게는 곧 자소서이고 면접이었다.
결국 삼성과 LG, 두 기업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때 나는 어떤 일이 더 좋은 직업일지, 어떤 회사가 더 행복한 직업일지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 생각이 났다. 연봉을 많이 주고, 회사 분위기가 선진적이고, 일하기 더 좋은 분야인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만약 길을 지나가다가 우리 아이가 삼성 제품을 보거나, 뉴스에서 삼성을 보고 '저기는 우리 아빠가 다니는 회사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지구를 지킨다고 반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말하는 경동 콘덴싱 보일러 CF처럼, 그 자체가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내용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후회한다. 그냥 LG 가서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일할걸...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평택까지 내려와서 공장 노가다를 하고 있다니... 다시 그 때로 돌아가서 선택하라고 해도 삼성을 선택할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