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모두 전라도 분이신 데다가 그동안 딱히 경상도와 연관된 일도 없어서, 나는 회사에 취업한 20대 후반에야 비로소 경상도라는 곳을 가보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30년 가까이 살면서 왜 경상도를 한 번도 가볼 일이 없었을까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여튼 그랬다. 아버지의 고향은 남해에서도 배 타고 1시간은 들어가야 있는 섬나라이고, 어머니의 고향은 아직도 소 키우고 벼 심는 시골이기에 나는 당연히 경상도도 그럴 줄로만 알고 있었다.
울산으로 출장 간 것은 신입사원 연수가 끝난 후 실제 근무지로 배치된 바로 다음날이었다. 아직 몇 번 입어보지도 않은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새벽같이 김포공항에 갔더란다. 생애 두 번째 비행기를 타고 - 첫 번째는 제주도 수학여행이었다 - 울산공항에 내릴 때 즈음, 창밖으로는 어마어마한 풍경이 펼쳐졌다. 뉴스에서만 보던 현대중공업의 수천 톤 짜리 골리앗 크레인이 바다 위에 떠있었고, 울산항으로는 커다란 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어디까지가 공장인지 헷갈릴 만큼 넓은 현대자동차 공장의 파란 지붕이 펼쳐져 있었다. 택시를 타고 석유화학 단지 안으로 이동하는 길은 더 신기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SK이노베이션 울산컴플렉스의 굴뚝에서는 연신 불길이 타올랐고, 삼성정밀화학이나 한화케미칼 등 그동안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던 회사의 로고가 잔뜩 박혀있는 회색빛 공장들이 쉬지 않고 나왔다.
나는 그때서야 생각해봤다. 당장 스마트폰을 켜고 네이버 뉴스만 봐도 경제가 어떻고 주가가 어떻고 하는데, 거기에 나와있는 회사들은 다 뭐 하는 회사일까. 몇몇 IT기업을 제외하면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 산업은 제조업인데, 그 회사들의 공장들은 어디 있었을까. 나는 왜 여태까지 경상도도 전라도랑 똑같은 시골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지금 보면 삼성전자, 그리고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도 과거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렇다. 어쩔 땐 나라의 경제를 이끄는 효자도 되었다가, 반대로 한국의 미래를 좀먹는 악질 대기업으로 몰리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가전, 모바일 업체이자 반도체 기업이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일하면 10년이나 20년 후에는 백혈병 걸리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거나 비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우선 자기가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세상을 해석하려고 한다. 삼성에 대해서도,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도.
인터넷 뉴스 기사 댓글처럼 잠깐의 가십으로 이슈를 소비하는 사람들 말고, 정말로 이곳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부에서 경험해 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히 다른 회사에서 다니다 온,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끼는지.
이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