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아노락 재킷 하나를 걸친 뒤 산책을 나섰다. 하늘은 여름이 끝난 지 한참임을 알려주듯 금세 어둑해져 있었다. 마땅히 갈 데는 없었다. 그냥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한 초등학교를 둘러싼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이런 날엔 영화 <중경삼림>의 금성무처럼 트렌치코트를 입고 두 주머니에 손을 푹 찌른 채 걸었더라면 제법 폼이 났을 텐데.
가로등이 안내하는 빛의 길을 저벅저벅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바닥의 많은 낙엽들을 부수고 있었다. 아, 가을이 지나가고 있구나. 이제 겨우 11월인데 벌써 말라 바스락거려 이내 부서지고야 마는 짧은 생명의 낙엽이 안타까웠다. 가을은 건조한 계절이다. 모든 것들이 말라버려 쉽게 부서지고 쉽게 불에 타고 그리고 쉽게 쓸쓸해지는 그런 계절. 그렇다. 가을은 사람의 마음마저 낙엽처럼 만들어 버린다. 지나간 사랑 또한 낙엽이지 않을까. 아주 붉게 물들었던 관계는 물기가 빠지고 시들해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가을을 좋아했는데 사랑이 낙엽 같다면 더 이상 가을을 좋아하고 싶지 않다. 결국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에 밟히게 된다면 그런 계절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쓸쓸함을 잊기 위해 독한 위스키를 마시고 싶지 않다.
“우리 사이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마음 대로 되지 않더라...”
지난 사랑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선과는 다르게 단풍이 금세 낙엽이 되듯 우리 사이는 시들시들 말라 버렸다. 집에서 기르는 식물이라면 최선을 다해 물을 주고 흙도 갈고 하면 그 푸른 싱싱함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가로수에 매달린 잎사귀들은 그렇지 않다. 붉었던 단풍은 말라가고 바스락거려 이내 부서지게 될 운명이다. 물을 준다 한들 흙을 갈아준다 한들 그 운명은 거스를 수가 없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성무는 유통기한에 대해 얘기한다. 어느 물건이든 기한이 있다고. 정이리에도 기한이 있고 미트소스에도 기한이 있다. 자신의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싶다고. 금성무의 대사처럼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삼각김밥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통조림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단풍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의 기간은 저마다 다르다. 삼각김밥은 일주일이고 단풍은 한 달이고 통조림은 몇 년이다. 금성무가 소망한 것처럼 내 사랑에 유통기한도 만년으로 하고 싶은데, 가을을 닮은 짧은 사랑이고 싶지 않은데...
가을 같은 짧고 쓸쓸한 사랑을 한 것은 내가 가을을 닮은 사람이어서일까. 나의 한구석에 쓸쓸함이 가득해서 그런 것일까. 향긋한 봄을 닮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나는 쓸쓸한 가을을 닮은 사람이었구나. 가을이 싫은 이유가 한 움큼 손에 쥐어지는데도 모래처럼 새어나가는 걸 보니, 그리고 어느새 손에 꽉 쥔 것은 가을에 대한 반가움인 걸 보니, 나는 가을을 닮은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나는 트렌치코트를 반기게 되고, 알록달록한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게 되고, 바스러지는 낙엽에 마음이 동하게 되고, 맥주 대신 쓰고 독한 위스키를 찾게 되는 거구나.
그녀도 가을을 닮은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서로의 쓸쓸함에 끌려 만나게 됐고, 교집합이라곤 가을 밖에 없어서, 가을의 낙엽처럼 우리 사이도 이내 바스라지게 된 걸까. 바스라질 운명에 대한 보상으로 짧게나마 그토록 강렬히 붉었던 것일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트에 들려 싸구려 위스키 한 병을 샀다. 짧게 지나가버리는 이 가을을 더 외로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중경삼림>의 주제곡 <california dreamin>을 들으며 위스키 한잔을 들이켠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취약하고 나를 닮은 이 짧은 계절을 음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