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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Aug 06. 2020

희망, 악어의 눈물

어느 무기수와 대화

다소곳이 앞섬에 모은 양손, 살짝 숙인 고개, 전반적으로 조아리는 듯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다. S수용자는 야간이나 주말 사동 근무로 들어오는 직원에게 이렇게 깎듯이 대했다. (낮에는 본 담당이 있고, 저녁이나 주말은 교대 근무를 하기에 담당이 수시로 바뀐다.) 계급이 높건 낮건 직원에게 한결같이 웃으며 대했고 커피 한 잔을 권하며 인사했다. "부장님 오늘 야근 이신가 보네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누가 보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항상 수용동 복도를 청결히 했고 담당실과 화장실 청소를 자처했다. 그가 수용동 도우미로 있는 곳을 담당하게 되면 하루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S가 있는 사동에 근무하기를 직원 모두 선호했다.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이었다. 우산이 소용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신발에 물이 가득 차 발걸음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펌프질이라도 하듯 신발 틈으로 빗물이 솟구쳤다. 양말이 다 젖으니 축축했다. 악취가 가득해 신발을 벗기도 힘들었다. 하루 온종일을 발 밑에서 오는 찝찝함을 견뎌야 했으나 그나마 배치가 S가 있는 수용동인 것을 위안 삼았다.


S를 비롯한 수용동 도우미들이 벽에 걸레로 무언가를 열심히 닦다가 나를 맞이했다. 노후된 시설을 타고 들어온 습기는 벽에 곰팡이를 남겼고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함을 자아냈기에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S는 자신이 건축도장 기술자인데 이건 건물을 잘 못 지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자신에게 공구 몇 개랑 재료 좀 쥐어주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수용자에게 쇠로 된 공구를 쥐어줄 때는 직원들의 철저한 통제하에 이뤄진다. 심지어 1인치 나사못마저도 마찬가지다.) 나는 S에게 시설보수 공과에 지원해서 일을 해볼 것을 권유했으나 자신 같은 장기수들은 잘 안 뽑아 준다고 했다. '아 S가 장기수였구나...' 이 날 알았다.


S는 무기수였다. 죄질도 상당히 안 좋았다.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얼굴과 그의 죄질이 매치가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뉴스에 나올 법한 흉악법들이 즐비한 이곳이라 어지간한 흉악범들은 이제 그냥 옆집 아저씨 보이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S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S.. 그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이곳에서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석방의 기회를 얻기 위해 가면을 쓰고 인내하고 있는 것일까.  


주민번호를 외우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수용자, 법원 출정 때 봤던 그 수용자 모습이 떠올랐다. 꺼억 꺼억 대며 죄송하다고 잘 못했다고 판사에게 사죄했고 판결 선고기일이 정해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잘 못을 했을까. 대기실에서 그 수용자 포승을 묵다 그의 표정을 보고 흠칫 놀랐다. 방금 전까지 대성통곡을 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표정은 평화로웠고 장난기가 있었다. 나는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던 나 자신을 책망했다. 법정에서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을까.


이십 년 가까이 징역 생활을 하는 무기수 혹은 장기수들, 그러고 보니 그들 대부분은 직원 말을 잘 따랐고 수용자들 사이에서 문제도 거의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어지간한 상황에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다른 수용자 의견에 따랐다. 징역을 오래 잘 사는 그들 나름대로의 노하우겠거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석방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낮춰 을을 자처한 건 아닌가 싶다. 직원과 다퉈봐야 본인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고 수용자들과의 다툼으로 수용기록카드에 좋지 않은 시찰이 올라가는 것 또한 가석방에 유리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S는 교육을 성실이 이행했다. 그리고 6개월간 교육 이수 끝에 자격증을 땄고 다시 본 소 이송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20년을 넘게 살다 보니 자기 본 소가 어딘지 헷갈려 했다. 처음 입소한 소인지, 교육받기 직전인 소인지, 가장 오래 머무른 소인지... 이송 가는 전날  공손히 찾아와 내일 본인이 어디로 이송 가는지 알아볼 수 있냐고 물었다. 궁금해하고 답답해하는 S에게 "미안한데 나는 권한이 없어요."라고 했다. 실제로 이송 지를 조회할 권한이 없기도 했지만 그런 정보를 허가 없이 본인에게 미리 통보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셔서 빨리 승진하셔요." 그는 미소를 잃지 않고 승진 빨리 하라는 덕담을 남겼다. 계급이 높아지면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이 늘어나는 줄 알았나 보다.


S가 이송 가는 날 아침이었다. 자기 이송 지를 통보받고 부랴부랴 짐을 쌓다. 같은 수용동에서 생활했던 수용자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고 마지막에 내게 인사했다. "부장님 건강하세요. 또 뵐 날이 온다면 밖에서 봬요." "네 S씨도 건강하세요. 우리 밖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합시다." 그는 끝까지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S..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이곳에서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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