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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친이야기> #프롤로그

삶에 대한 막막함 앞에 선 젊은이들에게

운영하다보니 제 채널이 좀 딱딱한 것 같습니다.

한 때 고등학교 교단에 서본 적이 있는데 학생들은 수업이 지루해지면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곤 했죠. 수업엔 집중하지 못하던 친구들이 그 순간만은 눈이 반짝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얻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역시 가장 재밌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요.

우리가 성공하겠다고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자신의 부족함에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우리 삶은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혹은 이 세상으로부터 더 사랑받고 싶은 동기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저는 5년 전까지 사귀었던 전여친 생각이 납니다.

그녀는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는 커리어우먼이었고, 저는 서울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지방의 어느 사립대학교를 다니는 동갑내기 학생이었습니다.

네 롱디, "오늘부터 1일" 외친 날로부터 4년째 쭈욱~ 장거리 연애였습니다.

"취업하면 결혼하자"는 말을 매년 했지만 계속 원하는 직장에 떨어졌어요.
데이트를 위해선 왕복 8시간을 이동해야 했던 그 시절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저와 여자친구는 지쳐갔고...

29살이 되던 해 하반기 채용에서도 모두 탈락해버리자 저는 여자 친구를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30살이 되고서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해야 한다니... 막막했나 봅니다.

이 상황에 남자의 자격지심과 여자 친구의 짜증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집니다.
결국 눈에 훤히 보이는 결말을 향해 가고 있었죠.

너무나도 막막했던 그 시절... 어떻게 어떻게 지나가고 저는 35세의 유부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전여친이 떠오르곤 하네요.

그때 "나는 이 상황에 너무 짜증 나!!!"라고 말하더니...

아직도 변하지를 않네요.

"집에 설거지가 쌓여있는 이 상황이 너무 짜증 나!!!"라고 말하는 건요.

그래서 오늘 하이마트에 가서 식기세척기 주문하고 왔습니다.



"???"






네! 29살 모든 입사지원에서 고배를 마시고... 취준생인 상태로 전여친과 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며 결혼을 했습니다.

소개팅 직후 시작된 학생과 직장인의 장거리 연애와 그 기다림을 못 이겨 시작한 신혼생활... 와이프 속에 그 시절 전여친이 생각나곤 합니다.

모두가 불안하게 바라보던 늘 위태롭던 우리 이야기... 지지고 볶고 찌질해지면서도 그 속에 담겨있던 소소한 행복과 웃음들의 시간들을...

삶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있는 이 시대 젊음들에게 격려를 담아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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