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 나의 출근길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어느날부터인가 눈 앞에 나타난 그 남자. 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자꾸 신경쓰인다. '저 남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여의도나 광화문 중 어느 높은 빌딩으로 출근하는 건 아닐까?' 나 혼자 지레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비싸보이는 구두를 신은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거라는 내 초라한 경험은 그 이상을 떠올리지 못 한다.
사실 나를 신경쓰이게 하는 건 이 남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남자의 옆에 있는 여자. 그 여자가 나를 신경쓰이게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와 싱그러움.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 남자를 보면 나는 몹시 질투가 난다. 너무 완벽한 행복. 내가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는 행복이기에 나는 무엇인가 내 것을 빼앗긴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물론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그 남자는 이런 내 마음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남자는 참 다정하기도 하다. 나란히 걷는 그 여자의 가방을 덥썩 받아 메고 길을 걷는다. 그의 말쑥한 정장과는 어지간히 어울리지 않는다. 딱 보니 여자의 가방은 명품은 아니다. 알록달록한 것이 내 눈에는 촌스럽고 유치하게만 보인다. 나에게 선물로 준다고 하면 줘도 싫다고 쳐다도 안 볼 그런 가방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 가방이 좋은가 보다. 매일 같은 가방을 메고 나오는 걸 보니 말이다. 남자는 별로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 그 가방을 언제나 자신의 어깨로 가지고 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것까지도 다 배려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촌스러운 가방이라지만 그녀를 위해 메는 가방이기에 그는 행복해 보인다. 사랑하는 어린 딸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니까.
맞다. 나도 근사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무렵의 귀여운 내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그 아이에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건네고 싶었다. 촌스러운 공주가방이라도 아이가 좋아하면 나도 기쁘리라 생각했고, 내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아도 아이의 가방을 메고 함께 집을 나서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지금 내 앞을 걷고 있는 저 남자처럼.
2년 전 어느날 꿈을 꾸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알을 너무 귀여운 병아리가 작은 부리로 쪼며 나왔다. 그때 꽉 잡았어야 했는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저 병아리를 바라만 보았다. '너무 사랑스럽구나.' 그렇게 멍하니 지켜보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병아리는 작은 다리를 총총거리며 사라져버렸다. 참 재미있기도 하지. 꿈이란 건 미신일 뿐이라고 비웃던 나는 그날부터 꿈엔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게 됐다. 초음파로 심장소리를 듣고 곧 떠나보낸 우리 아이도 꿈 속 그 병아리처럼 어딘가에 잠시 숨어있는 것이라고. 언젠가 숨바꼭질이 끝나면 다시 종종걸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줄 거라고 믿게 됐다.
올해 1월이었다. 술래가 너무 못 찾아서 지루해진 것일까? 아이는 다시 우리 곁으로 와 주었다. 아주 조그마한 점에서 작은 씨앗으로, 작은 씨앗에서 작은 사람으로, 둘에서 셋으로. 아이는 우리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매일 새로운 경험이다. 큰 걱정과 더 큰 기쁨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한다. 앞으로도 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은 많이 울고 또 많이 우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걸 안다. 그 시간이 10년 쯤 쌓이면 내 앞의 그 남자처럼 말쑥한 정장 위에 촌스러운 캐릭터 가방을 메고 걷게될 지 모르겠다. 그 날을 기쁘게 기다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