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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un 04. 2023

나에게 묻다



질문의 연속이다. 나태하기 짝이 없는 나와 내 생활에 묻고 답하길 여러 차례, 답은 없다. 하지만 삶에 어떤 의문이나 질문도 없이 주어진 대로만 사는 것은 내가 제대로 지내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게 한다. 물론 그 의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다. 몇 장 남은 <세상 끝의 카페>를 마저 읽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책에서 묻고 있었다. 요즘 나의 고민과 질문을 그대로 담은 책이라 숨 고를 새도 없이 읽고 내게 반문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연처럼 작년에 써 둔 글을 읽게 되었다. 내가 쓰고도 제목만으로는 무슨 글인지 짐작도 못했던 글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머릿속을 흩어놓는 고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인데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면 우유부단한 내가 내게 벌어준 시간이기도 하고 벌이기도 하다. 모든 질문에는 답이 있기 마련이니까. 갑갑한 마음에 내 마음은 이런데 막상 닥치면 그대로 이걸 다 꺼내진 못하겠지 하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그럼 이대로 계속 지내는 게 좋으냐 되물어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모든 것은 나를 되찾는 데 있다. 그래도 나는 요즘 매일 자라는 기분이다. 정말은 내 발로 들어간 좁은 유리병을 깨고 내 팔과 다리가 빠져나오게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변화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면 도삽의 증거인 거실 한 켠이 삐죽 고개를 내밀 테지만,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내가 스스로 안정적인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맞다. 어젯밤 꿈을 꿨다. 우물쭈물했지만 내 할 말을 다하는 걸 보니 내가 아는 본래 나의 모습이었다. 꿈 밖에서도, 집 밖에서도 이기적인 나를 되찾고 싶다. 


얼마 전에 산세베리아 화분 가장자리에 새순이 돋았다. 초록별로 보낸 율마 생각에 키우기 쉽다는 산세베리아를 앞에 두고도 걱정이 깊었다. 뚝 분질러 새 화분에 순을 옮겨주며 보았을 때 뿌리가 많지 않아 제대로 크겠나 싶었는데 잊고 지내는 동안 자리를 잡았는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지나친 관심보다 적당한 무관심이 차라리 낫다는 말의 방증이리라. 살면서 내가 던지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 중에 이렇게 적당히 묻어두어야 좋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생각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고 난 후의 문제다. 책을 읽으면서도 쉬이 사색과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던 나는 읽으면서도 생각이 흩어지는 때가 많았다. 좋은 글을 읽으면서도 내 안에 들여다보고 적용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늘 마음에 티가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나에 대한 고민을 오래도록, 깊이 해 본 적은 십여 년 만에 처음이다. 마치 그때 이후로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지금 흔들리는 모든 시간이 계단이 되어 내가 걸어갈 길 앞에 놓이리라 믿는다. 몇 주째 나를 찾으며 넋두리를 하느라 주변 사람들이 먼저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처럼 이 모든 것이 나를 자라게 할 건강한 뿌리임을 알기에 조금 더 기대어 두드려보고 훌쩍여 보련다. 곧 질문의 답을 찾으며 웃을 날도 오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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