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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 Aug 30. 2022

여행에 대한 욕심, 때늦은 후회–멜버른,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은 따사로웠다. 12월에 한여름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서울에서 몸을 감싸고 왔던 두꺼운 외투를 걷어내고 여름 햇살을 느끼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10시간 넘는 비행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기대로 피곤한 줄 몰랐다. 너무 가고 싶었던 호주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설레고 또 설렜다.

 

나에게는 ‘여행 친구’가 있다.

친구는, 딸아이와 동갑내기 아들을 둔 미술치료 전문가이다. 미술치료 이론을 아들에게 적극 활용하는 세심한 엄마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어느 날이었다.

“나 어진이 데리고 호주 가는데 같이 갈래?”

갑작스런 제안에 놀랐지만, 이미 내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의 지인이 멜버른에 살고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멜버른에 한 달간 머물 집을 구하고 다른 도시들을 버스나 비행기로 돌아보자는 계획이었다. 아이들이 갓난쟁이 때부터 같이 국내여행을 자주 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했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게 매번 설렜는데 게다가 호주라니......

친구와의 여행을 생각하니 아이들로 인한 힘듦은 생각도 되지 않았다. 비록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지만 친구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기간이었다. 한 달 넘는 장기여행이 가능할까? 그때까지만 해도 불가능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행에 대한 설렘을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출발을 앞두고 친구와 계속 통화하며 여행 준비에 몰두했다. 네 살 배기 아이들을 위한 여행 준비란 끝도 없었다. 출발 전부터 고되었지만 마냥 즐거웠다. 앞으로 닥쳐올 시련 따위는 생각조차 되지 않았다. 외동으로 자란 두 아이와 어떤 여행을 만들어 갈지 마음이 한껏 부풀어있었다.

                         멜버른 여행중 잠시 시드니 방문(2006년)

 

여행은 첫날부터 난관이었다.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며 걷다 쉬기를 무한 반복했다. 조금만 지나면 배고파했다. 간식도 챙겨 주어야 했고, 자주 화장실을 찾아 뛰어야 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싸우거나 울었다. 우리는 외동으로 자라 양보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다. 시선이, 풍경이 아닌 아이들에게만 머물렀다.

‘아~ 어쩌지?’

여행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장소만 바뀐 일상......

순간, 엉뚱한 이기심이 발동했다. 아이들을 현지 여름캠프에 보내기. 조금 어리기는 하지만 일부러 한국에서 영어캠프를 보내기도 하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스스로 타당함을 만들어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구실이 필요했다.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낯선 곳에 보낸다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다. 그래도 일단 보내 보자는 내 생각에, 친구도 동의했다.

 

며칠 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적당한 곳을 찾았다. 여름 바캉스 시즌이라서 어린이집이 방학이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한 부모들을 위해 단기 특별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아침 9시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후 4시 이후에 데리러 가면 되었다. 한국에서 조금씩 영어를 접하고 있었던 터라 현지에서 직접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키즈카페’ 같이 재밌는 곳이라고 미리 충분히 이야기해 주었다. 첫날은 엄마와 잠시 떨어진다는 것에 눈물을 보였다. 그럼에도 친절한 선생님과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신기한 듯 탐색하기 시작했다. 곧 다시 오겠다는 엄마와 작별인사를 한 첫날, 얼떨결에 별 무리 없이 아이들과 헤어졌다. 아이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행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들을 캠프까지 보냈어야 했는지 자책이 들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멀리 여행하지는 못했다. 늦은 오후에는 아이들을 찾아야 했으니 시내를 돌아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멜버른 시내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창 분주했다. 호주 사람들이 일 년 간 블랙프라이데이를 고대한다더니 우리에게도 쇼핑의 찬스가 주어졌다. 친구와 한가로이 브런치를 즐기며 유럽풍의 거리를 산책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여름캠프에 가 있는 동안 친구는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아이들 걱정으로 친구와의 산책이 즐겁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으니 편하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늦은 오후, 아이들을 찾아서 함께 저녁을 먹고 노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아이들은 점점 캠프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자와 엄마의 이중생활을 두 주간 지속했다. 친구가 먼저 입을 뗐다.

“아무래도 난 더 이상 어진이를 캠프에 보내고 싶지 않아.”

“그래? 나도 사실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어.”

갑자기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솟구쳤다. 함께 하는 여행이라 친구는 내 제안을 무작정 거절할 수 없었던 거였다. 나는 딸아이가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다녀서 큰 걱정을 안 했지만 여기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던가.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우리 넷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캠프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처음처럼 싸우지도 않았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마냥 좋아했다.

버스를 타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향했다. 아이들은 신나게 노래도 부르며 즐거워했다. 2시간 이상을 달려 눈앞에 대자연이 펼쳐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해안 쪽으로 다가갔다. 기이한 형상의 바위와 웅장한 절벽은 거대한 자연의 경이로움 자체였다. 집채만 한 파도에 아이들은 고함을 지른다. 까르르 웃음이 파도소리와 하나가 된다. 해안 절벽에서 거센 바람이 아이들을 집어갈까 꼬옥 껴안는다.

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좋다. 함께여서 더 행복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여행은 하나를 눈에 더 넣는 것보다, 함께하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는 것을......

          죽기전에 가봐야 한다는, 그레이트 오션로드(2006년)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8.

                                -2006년 네 살이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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