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by 다은

내가 여섯 살 즈음, 우유가 마시고 싶어서 컵에 우유를 잔뜩 따라 걸어가다 그만 발치에 있는 무언가를 보지 못하고 부딪쳐서 우유를 왈칵 쏟은 적이 있었다.

우유를 쏟은 순간 나는 ‘이크! 엄마한테 혼나겠다!’라는 생각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마른 걸레를 들고 부리나케 내 쪽으로 와 나를 밀치더니 “으이그!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네가 그럼 그렇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라며 나를 옆에 세워 둔 채로 폭풍 같은 잔소리를 쏟아내며 그 상황을 수습했다.


그 당시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더 크게 혼날까봐 불안했으며, 한 편으로는 참 많이 무안하고 수치스러웠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이지만 그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 때문이리라. 어린 아이가 실수로 우유 한 컵 쏟은 것이 그렇게 무안을 주고 그동안 해온 것들을 싸그리 묶어 폄하 당할 만한 일이었을까.

나는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회사 일에 치이고 집안일에 치어가며 밖에서든 안에서든 스스로 맡은 바를 잘 해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을 불쌍한 내 엄마. 보험회사를 다니며 직장상사를 상대하고 고객을 상대하고, 집에 돌아와선 가족들을 상대로 본인의 에너지와 노력을 부단히 쏟아내야 했던 사람.

당시의 엄마에게는 그저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었을 텐데 굳이 한 자리에서 우유를 마시지 않고 컵을 들고 요리조리 오가다 결국에 쏟아버려서 그것마저도 엄마의 할 일로 되갚아버리는 늦둥이 딸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내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가 만들어내는 사건사고를 하나씩 겪어 나가고 있는 요즘에야 나는 그 당시 엄마의 태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기를 낳고 기르기 전까지는 도저히 그런 엄마를 이해 할 수가 없어서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실수했을 때 아이를 비난하거나 무안하게 혼내지 않을 거야, 절대로.’라고 다짐하며 살았다.

(막상 자식을 낳고 기르다보니 그 '절대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리고 지후를 낳고 기르면서, 결국,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일이 일어났다.

26개월 지후가 처음으로 유리컵을 깬 것이다.

내가 유리컵에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엄마가 마시는 컵에 마셔야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플라스틱 컵 대신 유리컵으로 바꿔서 물을 따라주었는데, 방에 가서 물을 마시고 놀다가 그 컵을 떨어뜨려 깨뜨린 것이다.


퍽! 하는 소리에 지후 방으로 가보니 얼음처럼 굳어버린 지후와, 발치에 흐트러진 유리 파편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지후의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졌다.

지후의 뒷모습이 내 어릴 적 모습처럼 보이면서 불쌍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많이 놀랐구나.. 무섭지..


우선 안전한 곳으로 지후를 옮긴 뒤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이는 다친 곳이 없었다.

“컵이 깨져버려서 많이 놀랐지? 다친데 없으니 괜찮아. 다행이다.”하고 안심시켜주자 그제야 지후가 “놀래써(놀랐어)”하고 입을 연다.


놀라서 얼어버린 지후를 토닥이며 안아준 뒤 “이제 엄마는 바닥을 치워야 하니까 여긴 들어오면 안 돼~ 밟으면 발 아야!”하고 왼쪽 팔로 벽을 만든 뒤 오른 손으로 바닥을 청소했다.

청소하는 동안 지후는 내 등 뒤에서 “들어가면 안 돼, 밟으면 아야!”하며 쉴 새 없이 조잘대고 얼쩡거렸다.

컵이 깨진 것에 놀랐고, 그걸 치우는 모습 또한 생소하고 신기했으리라.


바닥을 다 치운 뒤 “이젠 들어와도 돼. 엄마가 다 치웠어.”하고 허락을 하자 “이제 와두 돼. 컵 없더”하고는 방을 마구 누빈다. 한 곳에 치워 둔 유리조각과 쓰레기들을 처리하러 방을 나서기 전에 지후를 보고 “컵이 깨져서 놀랐지? 그래도 엄마가 컵 깨진 거 치우는 동안 뒤에서 잘 기다려줘서 고마워~ 기특해~”하고 쓰다듬자 지후는 자기가 정말로 뭘 잘 했다고 느껴졌는지 “응!”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하며 웃어보였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어린 날의 내 자신도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다은아, 너도 많이 놀랐었지? 이젠 괜찮아......"

나는 이렇게 너를 통해 위로를 받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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