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늦게 결혼 한데다 나를 늦둥이로 낳았기 때문에 내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부모님들에 비해 열려 있다고 느낀 부분은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엄마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있어 내 의견을 가장 존중해 주었는데, 그것을 처음 느낀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나는, 그 학원을 6년 정도 다녔을 때 더 이상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싫어져서 “엄마 나 피아노학원 그만 다닐래. 그거 말고 00학원 보내줘,”라고 말을 꺼냈다. 00학원은 다른 친구들도 많이 다니는 보습학원이었고, 나는 친한 친구들과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놀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엄마는 내게 정말로 피아노를 그만 다니고 싶은지 묻고서 바로 00학원에 등록해 주었다. 당시 나는 혼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가 그렇게 바로 내 의견을 수용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정말 깜짝 놀랐었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은 최대한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수능을 준비해야 할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에 친구가 검도학원에 다니던 이야기를 듣고 검도가 너무 배우고 싶어져서 엄마에게 검도 학원에 등록해달라고 했고, 나는 바로 검도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검도학원을 그만 두고 헬스장에 다니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엄마는 헬스장을 등록해줬다.
당시 우리 집 사정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어려웠음에도 엄마는 내 선택을 존중해주었고 최대한 내 의견을 수용해 준 것이다.
이후에 고 3이 되었을 때에도 집에서는 공부가 안 된다며 독서실에 보내달라고 할 때에도, 특정 과목 학원을 추가로 다니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엄마는 꼭 거기를 다녀야겠냐고 묻긴 했지만 결국엔 내 의견에 따라 주었다. 학원비를 결제 할 때에는 카드 한도가 막혀 두 개의 카드로 따로 결제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 학원 수강 기간보다 더 길게 할부를 해서 결제를 해 준 적도 있었다.
당시에 그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왜 우리 집은 이렇게 형편이 안 좋은 걸까’하고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려운데도 다니게 해주셨으니까 열심히 해야지’하고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본인의 욕구나 필요는 차치하고 내 학원비, 독서실비를 지원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아온 엄마.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것을 사기 위해 이것 저것 비교하고 따져가며 여러 번의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던 엄마.
내가 부모가 된 지금, 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겠지만 만약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더라도 엄마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을까?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철없는 내 자신이 죄스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