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엄마가 집에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는 현관문을 열기도 전부터 “엄마~!!”하고 소리를 쳤다. 신발을 벗어던지면서 “엄마, 다은이도 왔어!”하고 친구가 이야기를 하면 안쪽에서 “그래, 어서 와~”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친구의 엄마. 나는 “아줌마,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는 친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방에서 조잘거리며 놀기 시작하면 아줌마는 간단한 간식거리를 들고 오셔서 “먹으면서 놀아~”하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순간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 자체도 너무 부러웠는데, 가끔 아줌마가 직접 만든 간식거리를 내어주시는 날이면 그 부러움은 배가 됐다. 간혹 아줌마가 만들어주시는 메뉴에 놀라서 친구에게 “우와, 너희 엄마 이런 것도 만들어줘?”라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가장 임팩트가 컸던 메뉴는 ‘떠먹는 피자’였다. 당시 나에게 피자는 그냥 배달시켜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걸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많이 놀랐었다. 진심으로 놀라서 묻는 내 질문에 친구는 “응, 탕수육도 만들어주는데?”라고 답했고, 그 답은 나를 완전히 K.O. 시켰다.
집에서 탕수육이라니.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란 말인가.
사실 내 주변엔 맞벌이 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많아서 우리 엄마만 집에 없는 것은 아니었고 많은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몇 안 되는 ‘집에 있는 엄마’를 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청소년이 된 이후에는 ‘나는 아기를 낳으면 내가 직접 키울 거야. 애가 학교 갔다 오면 집에서 맞이해 줄 거야.’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혼자만의 다짐으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철이 없던 나는 그 다짐을 엄마 앞에서 내보였고, 그 때 나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쓴 웃음을 지었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 세상 어느 엄마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새끼를 내버려두고 하루 종일 직장에 묶여 있고 싶겠냐는 말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도 어린 나를 두고 처음 직장에 가는 날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 네 식구가 아빠의 월급만으로 생활하기엔 빠듯했기에 엄마 역시 눈물을 머금고 직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늦둥이 막내딸은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는 엄마를 붙잡고 울고불고 했으니... 엄마 본인도 원치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택한 복직과 맞벌이 부부의 삶은 당시 엄마에겐 참으로 잔인한 것이었다. 이미 수 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울먹였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도 눈물이 났다.
나의 경우에는 19개월이 된 지후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복직을 했다. 운이 좋게도 나의 상황을 잘 배려해주고 시간을 맞춰주는 직장을 만난 덕에 평일 하루와 토요일만 출근하면 되는 곳이었다. 지후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한 달 정도는 집에서 지후 낮잠을 재워놓고 친정엄마에게 낮잠 이후를 맡긴 뒤 서 너 시간 정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토요일은 신랑에게 지후를 맡기고 출근했다. 처음엔 고작 세 네 시간을 나가 있는 것조차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서 일을 마치면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는데, 점차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오롯이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한 결 편해지고 자유로워졌다.
나보다 앞서 워킹맘이 된 친한 언니가 “복직을 하면 육아의 질이 높아진다.”고 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는 “그럼 전업주부가 하는 육아는 질이 낮은 거냐.”며 발끈하기도 했었는데, 복직을 하고 나니 그 언니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복직 전에는 집안일과 육아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아이와의 상호작용에서 짜증을 많이 내다가 복직하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육아로 인해 힘든 시간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래서 퇴근 후에는 아이를 보는 시선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온화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이었으리라.
물론 지금도 나는 워킹맘이 하는 육아의 질이 전업주부에 비해 비교적 높다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양육의 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양육자의 컨디션과 정서 상태다. 내 경우 일주일에 며칠은 워킹맘, 며칠은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그것을 더 크게 느낀다. 양육의 질이라는 것이 단순히 워킹맘과 전업주부로 나누어 설명할 만한 사안이 아닌 것이다.
엄마가 일이든 육아든 어떤 것에 지쳐 에너지가 없고 예민한 상태라면 아이가 어떤 요구를 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고 날카롭게 받아치게 되며, 반대로 에너지가 있고 마음이 편안한 상황이라면 아이의 말이나 마음을 조금 더 들어줄만한 여유가 있다. 그뿐이다.
다만,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주로 담당해야 하는 양육자의 경우 육아에 참여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적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아이가 결핍감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시간을 정해두고 휴대폰이나 다른 방해요소 없이 아이와 놀이하는 시간을 갖고, 더 많이 스킨십을 나누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위로를 받고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다시 다음 날을 버틸 힘을 얻게 되니까.
젊었을 적 우리 엄마에게도 누군가 이런 걸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엄마도 마음이 덜 무거웠을 거고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조금은 덜 외로웠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