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

by 다은

나는 지후를 낳기 전까지 ‘영화광’이었다. 보통 한 달에 네 다섯 번은 극장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핫’한 영화뿐만 아니라 웬만한 개봉 영화는 다 섭렵했었다. 그런 내가 영화관에 발길을 끊기 시작한 것은 지후를 임신하고 7~8개월 쯤 지난 시기였다. 영화관에 가만히 앉아 두 시간을 앉아있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기도 했고, 소리가 큰 액션 영화의 경우 소리에 따라 태동이 심해지기도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게 혹시 태아에게 스트레스일까 싶어서 더욱 안 가게 됐다. 그 이후 임신 10개월이 지나 지후를 낳고 부터는 돌 즈음까지 계속 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단 한 번을 제외하곤 지후와 두 시간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를 낳으면 몇 년간 문화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어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신랑 역시 나와 함께 매주 영화관에 방문하던 영화광이었는데 지후가 태어난 이후 그 역시도 영화관에 발길을 끊게 됐고, ‘우리는 언제쯤이면 자유롭게 극장에 다닐 수 있을까’라며 한탄하듯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골수팬도 많은 영화 어벤져스가 개봉을 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봐 온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도 후속편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 부부가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후가 모유수유를 하기도 했지만, 잠을 잘 때에는 오직 엄마나 아빠와만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둘 중 하나라도 볼 수 있는 사람부터 보자 싶어서 “내 몫까지 재미있게 보고 와”하고 신랑을 영화관에 보내줬다. 신랑은 혼자만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미안한 듯 했지만 이미 그의 입꼬리는 한껏 치솟아 있었다. 그렇게 가끔씩 신랑에게 영화를 보러 가라고 자유시간을 줬다. 사실 내가 시간을 만들어줬다기보다는 지후를 재우러 갈 즈음에, 혹은 지후를 재우고 나서 심야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터치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신랑은 나를 배려해서인지 그런 외출을 자주 하지는 않고, 정말 보고 싶은 게 있을 때에만 외출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후가 두 돌 쯤 되었을 때, 드디어 우리 부부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지후가 어린이집에 가고 신랑이 휴가를 쓰는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아빠가 휴가인 날 지후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후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지후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노력해온 만큼 부모로서 이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휴가를 화려하게 보내는 것도 아니었고 영화 한 편 보고 밥 한 끼 먹고 나면 지후를 하원 시킬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우린 참 좋았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 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마냥 즐거운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신랑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을 때에는 “부모로서 이 정도의 자유시간은 누려도 되지”하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이른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고 나니 지후 없이 우리끼리만 즐겁게 보낸 반나절이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 날은 평소보다 일찍 지후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고, 그 이후의 일정은 지후가 좋아할만한 체험코스로 움직였다.


이처럼 우리 부부는 우리 나름대로 이전부터 즐기던 취미 생활을 다시 즐기면서 부모의 역할도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다. 비록 과거에는 영화가 보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표를 예매하고 몇 시가 되었든 둘만 움직이면 됐고, 영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식당이든 술집이든 들어가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기에 참 자유로웠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지금은 지후를 일순위로 생각하고 스케줄과 동선을 고려해야 하니 예전만큼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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