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나는 지후에게 “이제 우리 자러 갈 시간이야, 마지막 한 번만 놀이하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럼 지후는 “이제 잘 거야?”, “마지막이야~”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놀이를 한 뒤 애착인형을 집어 들고 침실로 간다.
예외가 있는 날도 간혹 있는데, 밖에서 너무 늦게까지 놀고 와서 집의 놀이감을 충분히 못 가지고 놀았던 경우나 새로운 장난감을 너무 늦게 꺼내줘서 탐색할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좀 달랐다. 집에서 충분히 많이 놀이 했고, 뒤늦게 새로운 장난감을 꺼내준 일도 없으며, 계속 놀던 놀이감으로 놀았던 날이었는데, 잘 시간이 되어 내가 마지막임을 알리자 “아니야, 더 할 거야!”하며 계속 놀겠다고 했다. 평소 그러지 않던 아이가 그러니까 진짜 더 놀고 싶은 것 같길래 조금 더 시간을 주고 기다렸다. 그러나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는데, 그럴 수 없던 첫 번째 이유는 ‘다음 날 일과에 지장을 받을까봐’였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이미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그것에 상관없이 계속 놀게 하면 그것이 추후에 “더 놀래!”라고 고집을 부리게 만드는 빌미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기도 하다. 엄마가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했는데 아이가 고집을 부린다고 “에휴, 그럼 조금만 더 해”하면서 조금씩 받아주고 여지를 주기 시작하면 아이는 ‘어라? 고집 부리니까 이게 먹히네? 그럼 더 고집 부려야지!’하면서 그런 행동 패턴이 강화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평상시에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훈육 시에 객관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부모라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 매 번 그러는 게 아니라 특수한 경우라면 한두 번 예외를 줘도 됐지만 그날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내 실수였다.
조금 더 놀게 한 뒤 지후를 어르고 달랜 것이 아홉시 반쯤. 안 잔 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에 비해 잠이 드는 데 걸린 시간은 평상시에 비해 매우 짧았다. 지후를 재우고 나와서 신랑에게 “오늘 좀 이상하네?”하고 평소와 다른 점을 이야기 나누고 육아퇴근 후 찾아온 자유 시간을 여유롭게 즐긴 뒤 새벽 2시 쯤 우리 부부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잠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지후가 기침과 함께 토를 하고 울면서 잠에서 깼다. “콜록!”하고 지후의 기침 소리가 들리자마자 눈을 번쩍 뜬 나는 바른 자세로 누워 자던 지후가 울면서 토를 왈칵 하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아이의 몸을 세워 앉힌 뒤 고개를 숙이게 하고 등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다 쏟아낸 후에는 놀라서 크게 울고 있는 지후를 안아서 달랬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기 놀랐지~ 괜찮아~”
지후가 울음을 그치고 이내 평정을 찾고 나니 뒤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오 마이 갓. 지후의 몸, 내 몸, 침대가 토사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전시 상황의 지휘관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느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빨리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비몽사몽인 신랑을 깨워 침대 패드를 새 것으로 교체하고 더러워진 침구를 치우는 뒷정리를 하도록 했고, 나는 지후의 몸을 얼른 닦고 옷을 갈아입힌 뒤 나 역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히려는 동안에도 지후는 옷이 젖었다며 울고, 자기가 콜록(토) 했다며 울고불고... 한밤중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래, 지후가 콜록 하면서 토가 나와서 옷이 젖었지. 옷이 젖어서 속상해? 괜찮아~ 빨면 다 지워져~”하자 지후는 울다가 울음을 뚝 그치고 “빨면 지워져?”한다.
아가들은 참 단순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단편적인 것들만 보니까 정말 편할 것 같다. 나는 지후의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저 침구랑 옷을 다 어떻게 수습하고 정리해서 다시 지후를 재워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느라 바빴는데 말이다.
급한 대로 겨우 뒷수습을 마치고 섬유유연제 향이 폴폴 나는 향긋한 새 옷을 지후에게 입힌 뒤, 뽀송하고 톡톡한 느낌이 나는 침구로 교체한 침대에 지후와 함께 누웠다. 지후는 바꾼 침구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는지 “토 한 거는 빨았어? 이불 바꿨지?”하며 떠들다가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내 품 안에서 쌔근쌔근 자는 지후를 보며 그 날 저녁을 되돌아보았다. 왜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
생각해보니 저녁식사를 평소보다 늦게 한 날이었고, 거기다 지후가 후식을 먹은 게 밤 9시였다. 근데 자러 간 시간이 30분도 채 안 지난 시간이었으니 아이의 작은 위가 저녁식사와 후식까지 소화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아이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물리적 시간에 쫓겨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그래서 그렇게 안 잔다고 그랬을까? 조금 더 놀게 둘 걸... 30분 정도 늦게 잔다고 변하는 건 없었을 텐데. 내 실수네.’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또 다시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엄마라는 존재는 내 아이가 겪는 일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일은 그저 아이를 키우다가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상황 중 한 가지이고, 결정적으로 아이가 다치거나 아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상황처럼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난 것이 내 탓이라 여겨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냥 소화시킬 시간을 조금 더 주면 될 뿐, 별 것 아닌 작은 에피소드일 뿐인데도 말이다.
엄마는 정말 어쩔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