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를 낳기 전의 나는 매우 꼼꼼하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일례로 20대 초반에 일주일간의 국내 기차여행을 계획했던 때에는 미리 일주일치의 계획을 다 세워두었다. 숙소와 맛집뿐만 아니라 기차는 몇 시 몇 분 기차를 타는지, 도착시간은 언제이고, 무얼 타고 이동을 하는지, 그 이동엔 대략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까지 모두 문서로 작성해서 프린트했다. 심지어 그 프린트물은 책으로 만들어 여행 내내 가지고 다녔다. 특별한 여행뿐이랴. 평소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에도 당시 남자친구였던 신랑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어디에 갈 건지를 일부러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내가 상황을 미리 알지 못하고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내 스스로 통제감을 잃는 느낌이 들어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내가 아기를 낳았다. 당장 몇 초 뒤에 어떤 행동을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아기라는 존재를. 잠에서 깨는 것도 내 의지로 깨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울음소리에 의해 갑작스럽게 억지로 눈을 떠야 했고, 식사는 되도록 아기가 잘 때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아기가 잠에서 깨거나 울기라도 하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숟가락 대신 아기를 들어 품에 안았다. 신생아 때는 그나마 가만히 누워있기라도 하지, 아이가 기고 걸을 수 있게 되고 ‘엄마 껌딱지’ 시기가 오는 돌 전후에는 정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렇게 내 생활에서 통제감을 잃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의해 내 삶이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무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러다가 이대로 계속 지내면 내가 더 힘들어지고 우울해지겠다 싶어서 통제감에 대한 욕구를 내려두기 시작했다. 아기를 낳고 기르다보면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상황을 마주할만한 상황이 매우 잦기 때문에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시작은 아기의 기본생활과 관련이 있었다. ‘밥은 이 정도는 먹어야 한동안 배가 안 고플 텐데’라거나 ‘이 시간이면 자야 될 시간인데’와 같은, 아기의 일과에 대한 통제 욕구를 조금씩 내려놓은 것이다(아주 어릴 때의 이야기이고 나중에는 수면패턴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했지만). 아기가 좀 더 자라서는 예상치 못한 행동, 흔히 ‘저지레’라고 부르는 행동을 할 때 되도록 참아보는 것이었다. 쉽진 않았지만 그것의 뒷정리가 어렵고 위생적인 측면에서 깨끗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통제하기보다는 허용 가능한 수준에서 내버려두고 충분히 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고 나니 나도 마음이 편했고, 아이도 자신의 탐색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신랑은 아기와 함께 부대끼는 시간이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지 혹은 성향 탓인지 그 ‘내려놓기’가 잘 안 되었다. 지후가 숟가락질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후에도 손이 편해서 손으로 먹거나, 미숙한 숟가락질로 인해 질질 흘리고 먹으면 신랑은 그냥 한숨을 쉬면서 본인이 먹여주거나 수시로 지후의 손을 물티슈로 닦아댔다. 그럼 나는 그걸 보고 “그냥 스스로 먹게 둬, 옷이야 빨면 되지”라고 옆에서 한 마디 하고, 신랑은 다시 “이거는 빨아도 안 지워진단 말이야.”라며 어떻게든 옷을 사수하려 했다. 지후의 옷도 그렇지만 본인의 옷에는 또 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지후가 무언가 묻은 손으로 아빠에게 손을 뻗으면 ‘턱!’하고 지후의 손을 붙잡아 물티슈로 닦은 뒤 안아준다.
나는 그것이 보기 싫었다. 그까짓 옷이야 갈아입고 빨면 그만이지. 당신은 왜 아직도 자신의 기준에 맞는 ‘깔끔함’을 포기하지 못할까. 어린 아이가 성인처럼 깔끔하게 식사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신랑과는 꽤 많이 투닥거렸다. 나는 “아이 수준보다 과도하게 깔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을 그만해라”라고, 신랑은 “안 지워지는 얼룩이 묻으면 옷을 못 입게 되니까 옷은 깨끗하게 지켜야 해”라고.
그 결과 당시의 신랑은 자신에게 지저분하고 위협으로 느껴지는 그 상황을 조금이라도 참아보려 노력하게 되었고, 대신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참는 티를 내게 되었다. 맙소사. 그냥 참고 넘어가주면 안 될까? 나는 많은 것들을 지후에게 맞추는 과정해서 우울을 겪기도 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했는데 당신은 왜 ‘깔끔함’을 놓아버릴 수가 없을까.
그렇다보니 간혹 신랑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티셔츠에 뭐 하나 묻으면 집에 돌아가 그 옷을 빨아 얼룩을 지우기 전까지는 계속 신경 쓰고 한숨 쉬고 답답해하는 사람. 그래서 지후로부터 신랑의 옷을 지켜주기 위해 내가 나서서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종일 한숨 쉬고 툴툴 거리는 걸 보느니 차라리 그 전에 막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 지후로 인해 겪게 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만큼 당신의 그것도 이해해보도록 노력 해봐야지. 당신이라는 사람을 좀 더 이해 해봐야지.
하지만 당신과 지후의 욕구가 상반 될 때에는 아직 자기중심적이고 많은 부분에서 미숙한, 당신보다 훨씬 어린 지후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해 주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