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하원 후 동네 놀이터에서 32개월 지후를 놀리던 어느 가을날. 지후는 보통 때처럼 반복해서 미끄럼틀을 타며 깔깔거리며 놀기도 하고 주변의 형아, 누나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며 따라서 뛰어 놀고 있었다. 그러다 그네가 궁금해졌는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때 그네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네를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아주 쌩쌩 타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지후가 직진해서 그네 쪽으로 향했고 당시 지후와 나의 거리는 3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당장 지후를 붙잡기엔 무리였기에 “지후야, 멈춰!”하고 소리를 치며 지후에게 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지후를 막아서는 것보다 지후가 그네 쪽으로 향한 것이 조금 빨랐다.
‘퍽!’
뒤쪽 높은 곳에서 그네를 타고 내려오던 아이의 발이 지후 쪽으로 다가오더니 곧 지후의 가슴팍과 충돌했고, 지후는 그 순간 그대로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영화에서 사고 나는 장면을 연출할 때 그런 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이유는 그저 관객이 그 장면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아이가 내 눈 앞에서 날아가는 것을 보니 영화의 그런 연출은 인간의 경험을 제대로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순간이 천천히 재생되는 것 같았다. 내 눈앞에서 지후가 공중에 뜨더니 천천히 뒤로 날아갔고,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뒤통수를 바닥에 박으며 떨어졌다.
그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놀이터에 정적이 흘렀다. 그네를 타던 아이와 그 주변 아이들, 아이들을 놀이터에 두고 근처에서 이야기하던 아이 엄마들까지 모두 굳어버렸다. 그리고 들리는 울음소리. “엄마아~~~!!” 넘어진 지후가 나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바닥에 넘어져 있는 지후를 안아서 들어 올리고 토닥였다. “아이고, 우리 지후 너무 놀랐겠다. 얼마나 아플까 우리 아기... 호~ 엄마가 불어 줄게.”
크게 놀라기도 했고 워낙 세게 넘어진 터라 지후는 더 크게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런 지후를 안아서 계속 달래주고 있는데, 내 시야에 그네에서 그대로 굳어 버린 아이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아이는 “내가 잘못한 거 아닌데...”라고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내 품에서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지후를 안은 채로 그 아이에게 다가가 남은 한 손으로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네 잘못 아니야. 동생이 갑자기 다가가서 부딪친 거야. 동생 실수야. 너도 놀랐겠다. 괜찮아.”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놀이터 구석으로 가 지후를 달래면서 지후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놀이터의 바닥은 폐타이어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라 딱딱한 편이 아니었고, 바닥에 특별한 장애물 또한 없었기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머리를 부딪힌 것도 아팠겠지만 많이 놀라기도 했던 터라 차분하게 지후를 품에 안고 달랬고, 점차 지후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잠시 뒤에는 악을 쓰며 우느라 흘러내린 콧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후의 울음이 다 그치길 기다린 뒤 나는 이야기했다.
“지후야, 그네 타던 형이랑 부딪혀서 꽝 넘어졌지?”
“웅, ‘아야’ 했어.”
“그래, 진짜 아팠을 거야. 그래도 크게 다친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근데 지후야, 그네가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
“응.”
“그래, 그네가 보고 싶어서 가까이 갔구나. 그런데 그네는 말이야, 아무도 안 타고 있을 때에는 가까이 가도 되는데, 누가 타고 있을 때에는 멀리서 봐야해. 안 그러면 오늘처럼 쾅 부딪혀서 다칠 수 있어.”
“형아가 그네 타면 멀리서 봐야대. 가까이 가면 꽝 해!”
“그래 맞아, 우리 지후 오늘 하나 배웠네.”
“하나 배웠네~”
이야기를 마치고 지후를 품에 안고 쓰다듬고 있는데 지후와 부딪힌 초등학생이 우리 앞쪽에 서서 어슬렁어슬렁 시선을 끌었다. 그 아이는 자신과 부딪힌 동생이 넘어져서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까처럼 나의 위로를 바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점차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쳐서 “아까 부딪혔을 때 너도 많이 놀랐지~”하자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하고 대답했다. 지후에게 “형아도 지후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많이 놀랐대, 앞으론 조심하자”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자 그 아이는 옆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자리를 떠났다.
아이야, 분명 네 잘못이 아니지만 혹시나 어린 아기가 넘어졌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혼이 나게 될까봐 얼마나 긴장했니. 정말로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