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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by 라타치

100세 시대는 축복일까? 죽는 그날까지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울퉁불퉁한 뱃살과 성격 말고 단단한 근육을 갖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나는 헬스장에 간다.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상체운동이나 하체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개인수업을 받을 때는 혼자 할 때보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하게 된다. 삼각근과 내전근이 발달하는 느낌이다. 선생님이 페이스메이커로서 하나, 둘 숫자만 세어주어도 힘이 난다. 지금은 딸린 식구가 있고 수업료가 비싸서 자주 못 받지만 훗날엔 이틀에 한 번씩은 수업을 받아 물컹한 근육들을 말근육으로 만들 거다.

hands-3457909_1280.jpg 출처 pixabay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온다지 않나. 헬스장과 함께 도서관도 열심히 다닐 거다. 나이가 들며 외골수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책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알아야지 싶다. 그래서 도서관을 다니는 노인들을 존경한다.

지난 주말, 시험기간인 큰아이와 도서관에 갔다. 책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중에는 얼핏 보더라도 어린 학생보다 노인이 더 많았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뒤쪽에서 창문을 여닫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소란스러웠다. 할아버지 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초등학교 그것도 저학년 교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 한 사람은 춥다며 창문을 닫고 다른 사람은 덥다며 창문을 열고. 누구 한 사람이 주먹을 날리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여기가 당신 집이요?"

"그럼, 당신 집이야?"

"창문 하나만 열어요. 왜 두 개씩이나 열고 그래요."

"내 맘이야!"

그래도 한 사람은 존댓말을 쓰니 상식적인 분일 거란 생각에 육탄전으로 가진 않겠다 싶었다. 소리를 지른 할아버지가 자리로 가지 않고 창문 앞을 지키고 서 있기 시작했다. 존댓말하는 할아버지는 분에 못 이겨 사서에게 가서 하소연했다. 아들 아니 손자뻘 되는 사서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른다. 보는 내가 창비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서에서 이 사건을 빨리 해결해 달라는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떼를 쓰는 것이었다. 어느 한 사람이 자리를 옮기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가서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그만 쳐다보라는 아들의 충고에 잠자코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빈자리가 많았다. 그런데 두 할아버지는 자신이 맡은 자리를 고수한 채 꿈쩍하지 않았다. 사서는 번갈아 와서 불평하는 할아버지들의 말을 잠자코 들었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급기야 한 할아버지가 사서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민원을 넣겠다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도서관 관계자 여럿이 출동했고 할아버지들을 달래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상황이 궁금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를 반복했다. 시험인 아들에게 다른 열람실로 갈까 물었는데 괜찮단다.

"엄마도 신경 쓰지 말고 책 읽으세요."

도서관에 다니는 노인을 존경한다는 말 취소다. 도서관에 가든 안 가든, 책을 읽든 안 읽든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ball-1845546_1280.jpg 출처 pixabay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입은 닫고,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배려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시험이 코앞인데 소설책만 읽는 아들을 목격하며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눈이 마주친 아들에게 미소를 띠며 머리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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