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타치 Feb 16. 2024

시어머니는 페미니스트

결혼을 하며 며느리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며느리 이전에 귀한 딸임을 자주 되뇌는 시어머니 덕분에 명절은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 한 끼 식사 하는 자리일 뿐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리다고 크고 나서는 방이 비좁아서 불편할 거라며 당일에 오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큰 아주버님이 제사 전날 가시길래 남편에게도 형하고 같이 가라고 보내고 있다. 나도 나중에 장성한 아들들하고만 보내는 하룻밤을 생각하면 오붓할 것 같다.


시댁은 신정을 지낸다. 연휴가 긴 구정은 며느리들이 친정이든 여행이든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시어머니의 바람에 시아버지도 동의하셨다. 긴 연휴에 두 분이서 적적하실 것 같아서 나들이 가는 길에 짬을 내어 들렸다. 형님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만나게 됐다. 며느리들이 명절에 제 발로 찾아가는 풍경이라니.

"와줘서 고맙지만 다음엔 우리 걱정은 말고 식구들끼리 즐겁게 보내려무나."

"아들들이 효자잖아요."

큰 형님의 말에 시어머니의 두 눈은 동그랗게 커졌고 손사래까지 치셨다.

"어머, 난 효자아들 하나도 안 반갑다. 그런 말 하지도 마라. 아내를 먼저 생각하는 아들이길 바란다. 진심이다."

시어머니는 제사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자주 얘기하셨다. 제사를 차츰 간소화시켰고 이젠 제사대신 기도를 한다. 아이들이 부침개를 좋아해서 제사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이젠 안녕이다.


명절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친정엄마를 보면 짠하다. 친정집은 명절 때마다 시끄럽다. 나는 독신주의자였다. 남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지만 그 집안이 어떤지 어떻게 안단말인가. 가부장적인 아빠는 무뚝뚝하고 부엌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들 중에 가장 효자인 아빠는 둘째였는데 큰형수가 제사를 거부해서 대신 제사를 가져왔다. 형제가 많았지만 엄마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사를 지낸 후엔 어김없이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설거지가 가득 쌓인 주방에서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돌아가신 조상님을 위해 음식을 만들다가 며느리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 지혜로운 조상님이라면 후손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할 것 같다. 우리 시어머님 같은 분이라면 말이다. 죽은 이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라고 자주 말하신다.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 덕분에 친정 아빠가 많이 바뀌긴 했다. 친정에 도착하면 소매부터 걷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사위 덕분에 친정아빠도 거든다. 신문지를 펼치고 마늘도 까고 밤도 까는 사위 옆에서 옆에 앉아 서툰 칼질을 한다. 아빠는 술잔을 기울이고 싶겠지만.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이다.

pixabay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펼쳐본다.

출발점은 '나는 중요하다.'이다.  반대로 뒤집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너도 중요하다.

1. 충만한 사람이 될 것.
2. 같이할 것.
3. '성 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4. '유사 페미니즘'의 위험성에 주의할 것.
5. 독서를 가르칠 것.
6. 흔히 쓰이는 표현에 의구 김을 갖도록 가르칠 것.
7. 결혼을 업적처럼 이야기하지 말 것.
8. 호감형 되기를 거부하도록 가르칠 것.
9. 민족적 정체성을 가르칠 것.
10. 아이의 일, 특히 외모와 관련된 일에 신중해질 것.
11. 우리 문화가 사회규범에 대한 '근거'를 들 때 선택적으로 생물학을 사용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12. 일찍부터 성교육을 할 것.
13. 사랑이 반드시 찾아올 테니 응원해 줄 것.
14. 억압에 대해 가르칠 때 억압당하는 사람을 성자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 것.
15. 차이에 대해 가르칠 것.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세상을 꿈꿔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5시면 눈을 뜨는 여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