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아 Mar 28. 2023

남에게 상처준 아이에게 몰래 사탕 하나 더 준다

너의 상처를 사랑으로 보듬어줄테니, 그 사랑을 나누어 주렴

우리동네키움센터에서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 가는 시간대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학교 끝난 바로라서, 과목 수업보단 놀이를 준비해간다. 대개 만들기, 그리기 활동을 한다. 요즘 단어 뒤에 교육만 붙이면 다 말이 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놀이 교육이라 칭한다.


만들기, 그리기와 같은 예술 영역의 활동을 하다보면 "너 그것도 못해?", “똑바로 좀 그려”와 같이 능력에 대해 무시하는 말부터, 마치 그림에 본인만의 답이 있는지 “그런 더러운 건 그리면 안 돼” 하고 다른 친구의 색연필을 막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한다. 상처받은 아이에게 “ㅇㅇ이 그런 말 들으니까 속상하지~ 지금 잘하고 있는데, 그렇지?” 하고 위로하거나 “그런 말 하면 ㅇㅇ이가 속상하지, 미안하다고 해.” 하고 강제로 사과시킬 뿐이다. 그런데 강제로 화해시켰을 때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된다.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아이들에게 꾸지람을 하면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나에게 ‘싱아 선생님 바보‘라는 문구를 적은 아이가 원장 선생님께 꾸지람 듣고는 침울해하고 있으니까, “선생님은 괜찮아~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지~"라고 말해줬다. 아무렇지 않게 계속 놀이활동을 이어가니 그 후엔 오히려 더 잘 따랐다.


 반면에 아무리 좋게 말하거나 무섭게 말해도 상처주는 말을 계속하는 아이가 있다. 나는 이때 그 아이를 더 이상 혼내지 않는다. 당하는 아이에게 "언니,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말하라고 시킨다.


 그런데 또 놀라운 점은 이렇게 당한 아이가, 자신이 만만하게 보는 친구에게 똑같이 상처되는 말을 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과 계속 어울려 논다. 어느 정도 눈치를 보면서.


 상처받은 아이가 또 다른 친구에게 상처를 준다면, 나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고민이다. 사실 아이들은 상대에게 뚜렷한 말로 상처를 줘서 다 보이는 거지, 아마 어른들도 자신이 받은 상처를 내리 보는 누군가에게 말로 하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든 상처를 주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저, 마지막에 상처받은 아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빈다.


처음에 상처 준 그 친구는 동생들한테는 털털하게 할 말 다 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다소 왈가닥(?)하는 성격 때문에 선배나 선생님처럼 권위 있는 사람들이 놀이 활동에서 “감점”과 같은 불이익을 주거나 가위바위보 해서 원하는 친구 데려가며 팀 짜는 방식일 때, 마지막에 뽑히는, 무시를 받는 입장에 처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특정 성격이나 정돈되지 않은 인간관계 예절 미비함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비난받으면 아이 마음도 삐뚤어진다. 주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결국 아이들 사이에서도 대물림되기 쉽다. 가정이나 교육기관에서 적당한 사회성을 길러주고,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할 수 있는 공감교육, 감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또 사회에서 포용, 인정, 배려와 같은 사랑이 퍼져야 할 이유다.


나는 남에게 상처주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더 주곤 한다. 상처줘서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의 상처는 내가 사랑으로 보듬어 줄 테니 너도 가서 사랑을 나누어주라는 의미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왔다가서 좋지 않은 말과 행동을 저질러버린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이다.


어린이집에 다닐 시절, 7살 때 인어공주 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가서 "너네 공주병이냐"하고 당돌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반 전체 친구들이 나 하나를 두고 몰아세운 적이 있다. 나에겐 지금까지도 충격적으로 남아있는 사건인데, 한편 아이들은 이처럼 또래 친구들로부터 배척받는 경험도 필요하다. 어디까지를 친구들이 받아들여주는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지 그 선을 배워야 한다는 거다.


 사실 공주병 사건에서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인어공주 놀이를 하던 친구들이 같은 반에 한 친구를 은따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혹은 그저 나도 공주놀이를 함께 하고싶었는데 그 친구들이 부러웠어서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이제 와서 유치원에서의 상황을 돌아보며 이유를 되짚어 볼 뿐이다.


 행동은 삐뚤게만 나오는데 스스로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몰라 안 좋은 결과만 내던 시절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그럼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모쪼록 아이들이 좋은 자존감으로 자신을 지키면서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기쁨이 수고와 희생이라면 난 그걸 받아들일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