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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Sep 15. 2021

'마담'으로 불리다


"Xin chào. Cô Le."

"Xin chào. Madam."


아이들 등원하고 바로 링랑시장에서 잔뜩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인사에 빨래를 개고 있던 'Le'가 문 앞으로 뛰어나와 짐을 받았습니다.


"Cái này, cắt cắt. (이거 잘라주세요.)"

라고 말하며 장을 봐온 야채 중에 양파, 오이, 파프리카, 양배추를 소쿠리에 따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소쿠리에는 망고, 사과를 담았습니다. 눈치 빠른 'Le'는 양배추를 들고 손으로 자르는 시늉을 하며 뭐라고 합니다. '이만큼만 자를까요?'라는 말인 거 같아 'Vâng(네)'이라고 대답하고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옆 시장을 갔다 왔는데도 이미 햇살이 뜨거워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20분.

남편과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없어서 배고픈지도 몰랐는데... 이제 아침을 먹어야겠네요.


하노이 시티뷰를 보며 즐기는 호텔 조식 혼밥!

핸드폰과 이어폰, 카드키만 작은 가방에 넣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38층으로 갑니다. 호텔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63층에 도착했습니다. 문이 열리자 호텔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Good morning, Madam."

"Good morning, one person please."


직원을 따라 호텔 식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는 얼굴들이 보입니다. 하노이가 한눈에 보이는 2인석 자리에 앉으니 서빙 직원이 와서 묻습니다.

"What would you like to drink, madam?"

"Ice Latte, please."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하나 집어 음식들을 둘러봅니다. 일단 제일 좋아하는 훈제 연어를 듬뿍 담고 샐러드 코너로 가서 역시 좋아하는 두부 샐러드를 담습니다. 고기 요리는 마음에 들지 않아 계란 요리 코너로 가서 오믈렛을 시킵니다. 음식을 담는 동안 아는 엄마들과 가볍게 인사하기도 하고 잠시 서서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자리에 돌아와 직원이 갖다 놓은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을 마시고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며 아침을 먹기 시작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바로 시장에 갔다 오느라 정신없었는데... 이 여유로운 아침 식사 시간은 힐링 그 자체입니다.





맛있고 여유로운 식사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Le는 일 끝나고 갔을 시간이고 집 앞에 청소 카트가 있는 걸 보니 레지던스 하우스 키퍼가 청소 중인가 봅니다.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있는 하우스 키퍼에게 인사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보며 일정을 확인합니다. 네일숍과 마사지 샵을 둘 다 예약한 날이라 서둘러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남자 직원 두 명이 사다리를 들고 들어옵니다. 하우스 키퍼가 다가와 에어컨을 청소할 때가 돼서 불렀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러더니 이거 버리는 거면 자기가 가져도 되냐고 묻습니다. 작아지고 얼룩이 있어 버리라고 쓰레기통 옆에 놔둔 아이들 옷이었습니다. 누구 줄만한 옷은 아니라 버리려고 했는데... 가져가라고 하니 너무 좋아합니다.

"Thank you, madam.'


오늘만 해도 몇 번 들었는지 모를 'Madam'. 로비 직원이, 하우스 키퍼가, 개인 메이드가 절 '마담'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식당을 가거나 백화점을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이 호칭이 너무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는데... 한두 달 지나고 나니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았습니다.


하우스 키퍼가 청소기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오자 생수를 챙기러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 식탁 위에는 Le가 개둔 빨래가 얌전히 놓여있습니다. 어제부터 쌓인 설거지 거리로 가득했던 개수대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합니다. 빨래하고 설거지 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이렇게 개어진 옷들과 깔끔해진 부엌을 볼 때마다 이게 웬 호사인가 싶습니다.


레지던스는 기본적으로 청소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굳이 메이드를 따로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친해진 엄마들에게 메이드 가격을 듣고 안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귀임한 집에서 일했Le는 대화하기는 힘들지만 눈치가 빠르고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잘했습니다. 레지던스에 개인 메이드를 등록해서 제가 집에 없더라도 직원이 문을 열어주니... 신경 쓸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냉장고에는 예쁘게 썰어진 야채와 과일이 플라스틱 통 개에 담겨있었습니다. 세탁실에는 잘 다려진 남편 와이셔츠와 아이들 유치원 교복이 걸려 있었고, 화장실엔 깨끗해진 아이들 크록스가 놓여 있었습니다. 매일 해도 티도 안 나고 인정도 못 받는 집안일... 저렴한 가격으로 누군가 나를 위해 해 주니 진짜 '마담'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외출 전 다음 달 조식 쿠폰 서류에 사인을 하기 위해 리셉션으로 갔습니다. 직원이 일처리를 하는 동안 놀이방 쪽을 보니 한 베트남 시터가 한국 아이와 놀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다른 베트남 시터가 일본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아직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가가 있는 집은 대부분 베이비 시터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보더라도 집안일 하는것과 금액이 같으니 일하지 않는 엄마라도 안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통장에 들어온 월급 거의 그대로를  이모님에게 이체했던 예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Le가 전에 일했던 한국 집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들 그리고 2살짜리 막내가 있었는데 베이비 시터와 요리해주는 메이드까지 총 3명이 있었습니다. 그 집을 방문했을 때 필리핀 영어 과외 선생님이 아이들 방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댁뿐만 아니라 레지던스에서 알게 된 한국 집들은 대부분 집안일해주는 개인 메이드가 있었고 아이가 어리면 베이비 시터, 아이가 유치원생이면 놀이 시터, 아이가 좀 더 크면 학습시터 및 과외 선생님까지 있었습니다. 주재원이 된 남편을 따라 베트남에 왔다가 한국 공기업에 취직했다는 아이 셋 엄마는 풀타임 메이드 겸 시터를 주 6일로 쓰고 있었는데 한 달에 백만 원도 안 든다고 했습니다.

 



서류를 확인하고 마사지 예약 시간이 다돼서 1층으로 내려와 Grab으로 택시를 불렀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반가운 인사에 돌아보니 최근 알게 된 한 엄마가 휴대용 골프 가방을 메고 서있었습니다. 잠시 뒤 베트남 기사가 그 엄마의 가방을 받아 차에 실었습니다. 지난번에 놀이 시터에 대해 물어봤었는데 괜찮은 사람을 찾았다며 제게 시터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저쪽에서 다른 한국 엄마가 자기 차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기사가 두 손에 커다란 K-market 봉투를 들고 있는 걸 보니 한인타운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왔나 봅니다. 남편 회사에선 개인 차량까진 제공하지 않았지만 많은 주재원들은 개인 차량과 기사까지 두고 있었습니다. 가끔 택시가 잘 안 잡히는 날이면 차가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마사지 샵으로 가는 중에 연락처를 받은 놀이 시터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 시간에 50,000동(2,500원)이라고 했는데... 소개해 준 집은 아이가 하나라 아이가 둘일 경우 가격이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잠시 뒤, 둘이면 한 시간에 70,000동이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너무 저렴한 가격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다음 주말부터는 남편이 없어도 아이들을 돌보기 훨씬 수월하겠다 싶었습니다.





잠시 뒤, 한 후미진 골목에 도착했습니다.

반가운 한글 간판이 저를 반기는 듯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베트남 주인이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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