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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Sep 22. 2021

'마담'의 하루


“안녕하세요. 날씨 많이 덥죠?”



택시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가니 베트남의 전형적인 좁고 높은 건물 앞에 한글로 적힌 간판이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베트남 주인장이 문을 열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도 아닌데 택시에서 내려 걸어오는 그 잠깐에도 땀이 맺힙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1층 소파에 앉으니 테이블 위에 놓인 ‘한인 소식’이 보입니다.

잠시 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갑니다.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니 얼굴 부분이 뚫려있는 마사지용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옷을 벗어 침대 위에 있는 마사지용 원피스로 갈아입고 그 옆 빈 바구니에 옷과 가방을 넣었습니다. 침대에 엎드려 누우니 직원이 들어와 한국말로 속삭입니다.

마사지 시작합니다.”

 

90분 후, 엉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다시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소파에 앉으니 대전에 있는 마사지 가게에서 2년 일했던 적이 있다는 베트남 여주인이 말을 겁니다.

쿠폰을 거의 다 쓰셨는데... 새로 만들까요?

그래요? 10회에 얼마였죠?”

“지금 프로모션이라 10회에… 370,000동입니다.”


10회에 370,000동이면… 90분 전신 마사지가 한화로 약 18,000원.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어깨 통증이 심한 편이라 예전부터 마사지받는 걸 참 좋아했지만 벼르고 별러 받았던 마사지... 그나마 저렴한 편인 동네 마사지 가게에서도 90분 전신에 10만원. 베트남에선 5번 받고도 남는 가격입니다. 때문에 베트남에 와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마사지 가게를 찾고 있네요.

 

망설임 없이 10회 쿠폰을 결재하고 앱으로 택시를 잡았습니다. 5분 뒤, 택시가 근처에 와서 가게를 나서려는데 한국 아줌마 두 명이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옵니다.




택시를 타고 또 다른 후미진 골목 앞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 안으로 50미터쯤 걸어 들어가니 오른쪽에 네일숍 간판이 보입니다. 신발장에 놓인 슬리퍼로 갈아 신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갑니다.

가게 안은 손님들로 꽉 차있습니다. 소파같이 생긴 시술용 의자 5개 중 4개에 손님들이 앉아 페디를 받고 있고 네일 전용 테이블에도 손님들이 앉아 있습니다. 네일과 패디를 모두 받는 손님에겐 직원이 두 명씩 붙어 있습니다. 로컬 가게라 손님은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이지만 한국 사람도 간간히 보입니다.


하노이에는 많은 네일 샵이 있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위생상태도 걱정돼서 처음엔 한인타운에 있는 샵을 찾았습니다. 가게나 도구도 꽤 깨끗하고 관리 가격도 한국의 반값도 안돼서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한국 엄마들이 왜 비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데를 가냐며 꽤 괜찮은 로컬 가게를 알려줬습니다. 이곳을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는 한인타운에 네일숍도 비싸게 느껴졌습니다.


직원에게 예약한 이름을 말하니 자리로 안내해줍니다. 물 한잔과 함께 수십 개의 색깔 차트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건넵니다. 그동안은 칼라만 했는데 오늘은 왠지 세상 화려해지고 싶습니다. 오는 길에 검색에서 찾은 디자인을 직원에게 보여줍니다. 반짝반짝 스톤이 손톱 위에 한가득 있는 사진입니다. 직원이 가져다 종이에 원하는 디자인을 그려서 보여줍니다.

“(색깔 차트 표에 있는 색 하나를 가르키며) 칼라…. 페디… 네일… (종이에 그린 디자인을 보여주며) 스톤….”

"Okay, Madam."


손짓, 발짓, 그림… 비언어적 요소를 총동원해서 원하는 디자인을 설명합니다. 직원은 대충 알아들었는지 시술 도구 상자를 들고 와 제 손에 있는 젤 네일을 벗깁니다. 잠시 뒤 다른 손님 시술을 끝낸 또 다른 직원이 와서 제 발톱을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어폰을 꺼내 평소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틀고 소파에 머리를 기댑니다.

여러 번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이렇게 손발을 남에게 맡긴 채 앉아 있는 제 자신이 아직도 좀 웃깁니다. 이런 건 돈이 많은 사람이나 외모를 관리해야 하는 연예인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손과 발에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이는 게 한심해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둘째 낳고 딱 한번 페디큐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발에만 한 색으로 젤 네일을 했는데 6만원. 그 뒤로는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돈 아까워서 다시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와서 저의 손과 발이 팔자에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1시간 반 뒤. 제 손과 발에는 화려한 스톤이 한가득입니다. 다행히 생각했던 데로 예쁘게 완성됐습니다. 반짝반짝 예쁜 손과 발을 보다 갑자기 가격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됩니다. 원래 한 색으로만 페디와 네일을 받으면 약 200,000동. 우리 돈으로 만원이라 이 가격만 생각하고 오늘 너무 무리한 건 아닌지 조마조마합니다.


하지만 스톤 가득 두 손, 두 발 젤 네일을 받은 가격은 450.000동. 겨우 2만 3천원이었습니다. 다음엔 한 번도 안 해본 다른 디자인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 2시 반.

한껏 화려해진 손발만큼 업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롯데 백화점에 있는 한국 베이커리에 들러 레지던스에서 받은 쿠폰으로 커피와 빵, 그리고 아이들 먹일 조각 케이크를 삽니다. 베이커리 안에 수다를 떨고 있는 한국 엄마 무리들이 보입니다. 그중 아는 엄마들과 인사하며 처음 보는 다른 엄마를 소개받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 자연스럽게 그들의 수다에 끼게 됩니다.

대화의 주제는 온통 아이들 학교, 학원, 교육입니다. 다들 아이들이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어 이런 자리에서 남편을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학교과 학원에 대한 꿀 정보를 듣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수다의 주제가 골프로 바뀝니다.

 

“골프 치세요?”

아… 지금 배우고 있는데… 어렵네요.”

골프도 매일 쳐야 늘더라고요. 그럼 필드는 아직 안나가보셨어요?”

네… 이 실력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 7번 채밖에 없어요.”

그래도 일단 나가봐요. 시간 맞으면 우리가 머리 올려줄게요.”

 

공으로 하는 운동에는 관심이 없지만 다들 하는 분위기라서 엉겁결에 시작한 골프 레슨이 이제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레지던스 안에 입주민들을 위한 골프장이 있고 프로 코치가 들어와 수업해주기 때문에 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골프 코치는 아침 8시 반부터 30분 간격으로 수업 일정이 있었습니다. 평일에는 주로 아줌마들이, 점심시간과 주말에는 남자들 수업으로 스케줄이 꽉 차있었습니다. 수업 전에 연습하러 가보면 로비와 엘리베이터에서 스쳤던 한국 아줌마들이 칸칸에 들어가 열심히 공을 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에 와서 골프에 빠진 남편이 저에게도 골프를 권했습니다. 저 또한 나중에 나이 들어서 남편과 함께 공치러 다니면 좋을 것 같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어디선가 구해온 중고 7번 채만 들고 다니며 수업을 받았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코치가 풀세트를 살 것을 권합니다. 엄마들에게 채는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물어보면 꾸준히 치려면 300만 원대 정도가 적당하다며 권합니다. 하지만 막상 채보다는 신발, 옷, 모자 등 골프 웨어에 더 관심이 니다. 내일 주재원 생활을 오래 한 엄마랑 짝퉁 명품 가방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간 김에 골프 웨어도 둘러봐야겠습니다.

 




수다를 떨다 집에 오니 3시 반. 아이들이 올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Le가 썰어놓은 야채들을 꺼내 그릇에 담고 드레싱을 부어 유튜브를 보며 먹었습니다. 잠시 뒤 카톡으로 아이들이 5분 뒤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냉동실에서 핫도그 두 개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타이머를 맞춘 후 폰과 카드만 들고 1층으로 내려갑니다.

 

1층 로비에는 필드에서 막 돌아온 아줌마 무리, 국제학교 셔틀버스에서 내린 아이들, 음식 배달 온 베트남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마침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남자아이의 엄마가 배달 음식을 받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본 음식점인데 맛이 꽤 괜찮다는 말에 주문 연락처를 물어봅니다.

그때 저쪽에서 아이들을 태운 유치원 셔틀버스가 보입니다. 버스가 서는 곳으로 나가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저를 보자마자 유치원에서 만든 바람개비를 자랑하는 첫째의 말을 받아주며 버스 안에서 깊게 잠든 둘째를 받아 안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같은 유치원 친구들과 데리러 내려온 엄마들, 같은 시간 도착한 국제학교 아이들로 가득합니다. 유치원 친구들과 좀 있다 놀이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는 소리에 둘째가 깹니다.


집에 오니 아까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던 핫도그가 바삭하게 구워져 있습니다. 주스와 함께 핫도그를 먹으며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둘이 화음까지 넣어가며 영어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습니다. 잔뜩 흥분해서 계속 떠들어 대는 아이들은 보니 등원할 때마다 울음바다였던 몇달 전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즐겁게 유치원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젠 너무 감사합니다.

 


간식을 다 먹고 친구들과 먹을 과자를 챙겨 놀이방으로 갑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힐끗거리며 엄마들과 수다를 떱니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은 역시 아이들 유치원, 학원, 과외, 학습지입니다.

1시간도 안돼서 다들 과외 선생님이 올 시간이 됐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직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들과 백화점에 있는 서점 겸 문구점으로 향합니다. 벽면 가득 전시된 장난감과 문구들을 구경하다가 싼 장난감 두 개를 샀습니다. 새 장난감에 마냥 즐거운 아이들과 1층에 있는 피자집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남편이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으니 아이들과 저녁을 해결하고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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