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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Sep 13. 2021

현지인처럼 장보기


“Bao nhiêu tiền?” (바오 니에우 띠엔?) 



현지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베트남어 문장입니다. 베트남에 도착해서 남편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표현 중에 하나인데요. 무슨 뜻일까요? 


‘bao nhiêu’는 ‘얼마큼 많이(how many/much)’ 그리고 ‘tiền’은 ‘돈(money)’이니깐…. 

바로 ‘얼마예요?’라는 문장입니다. 

뭐라도 사려면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배워놨는데... 사실상 현실에선 쓸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베트남에 도착해서 먹을 거라곤 음료수와 선물 받은 과일밖에 없는 냉장고를 보고 주부로서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맨날 외식을 할 수도 없고… 혼자 살았던 남편이나 한참 크고 있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집밥을 해먹이고 싶었지만 남편 혼자 살았던 집이라 쌀 한 톨도 간장 한병도 없었죠. 


교통체계가 엉망인 하노이에서 길 하나도 혼자 못 건너던 첫 주에 유일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곳은 레지던스 지하에 있는 ‘롯데마트’였습니다. 도착 다음날 먹을 것을 구하러 온 가족이 마트로 출동했습니다. 


처음 가본 베트남 롯데마트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빨간 쇼핑 카트를 하나 챙겨서 마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체적으로 한국에서 자주 가던 대형마트와 다를 게 없었지만 간간히 보이는 베트남어와 처음 보는 물건들… 그리고 아직은 낯선 가격표에서 베트남 마트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쌀을 본 적이 없다는 남편의 말과 달리 다행히 한쪽에 다양한 쌀들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동남아 쌀은 한국 쌀과 다르다던데… 괜찮을까?’라고 걱정했는데... 한국 쌀 포대 발견! 그나마 밥은 한국 쌀로 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요리할 때 꼭 필요한 식용유부터 소금, 설탕, 케첩, 우유, 달걀, 베이컨 등등… 먹을 수 있겠다 싶은 건 다 카트에 담았습니다. 한국 브랜드 마트라서 그런지 익숙한 브랜드와 먹거리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국 라면부터 소면, 고추장, 김치, 떡국떡 까지… 그래도 대충 한식을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엔 정육 코너로 갔습니다. 대형 마트답게 소량 포장되어 있는 고기들을 보다가 닭 머리까지 포장되어 있는 닭고기를 보고는 너무 놀라 아무것도 담지 않고 다른 코너로 갔습니다. 생선코너에서는 연어 빼고는 잘 모르는 생선들이 많아서 선뜻 고를 수가 없었습니다. 야채 코너로 가니 감자, 양파, 당근 같은 익숙한 야채 말고도 처음 본 여러 가지 풀들이 있었습니다. 오이와 호박은 한국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생겨 일단 사지 않았습니다. 계산대 가까이 한국의 마트처럼 푸드 코트가 있어서 사람들을 음식을 골라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쌀국수부터 닭다리 세트, 각종 샐러드, 고구마, 옥수수 등이 보였습니다. 


어느새 가득 쌓인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향하는데 간식을 맡은 남편과 딸들이 보였습니다. 작은 딸은 카트 손잡이 쪽 아이 좌석에 큰 아이는 카트 안에 타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남편과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남편의 카트 안에는 다양한 과자와 음료수, 사탕류들이 가득했습니다. 계산을 하려고 하나씩 꺼내다 보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지 과자,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과 똑같은 한국 과자, 그리고 익숙하지만 현지화된 한국 브랜드 과자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삐빅..삐빅... 

점원이 한참 동안 바코드를 찍다가 영수증을 주었습니다. 총가격은 2,000,000vnd이 넘었습니다. 많은 동그라미가 화들짝 놀랐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국돈으로는 10만 원 정도. 베트남 동화는 뒤에서 0을 하나 빼고 반으로 나누면 한국돈으로 환산되거든요. 남편이 베트남에서 쓰라고 준 카드를 주고 계산완료. 점원과 한 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카트 가득 먹을 것을 샀지만 막상 집에 와보니 부족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한식에 필요한 소스와 한국 야채, 그리고 제가 요리할 수 있는 고기와 생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온 가족이 택시를 타고 한인타운으로 향했습니다.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는 덕분에 베트남에는 이미 한국 전용 마트, ‘K-market’이 있었습니다. 하노이 안에만 수십 개의 매장이 있지만, 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매장으로 갔습니다. 마트에 들어선 순간 마치 한국 마트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물건들이 보였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는 장을 못 볼 사람처럼 미친 듯이 물건을 쓸어 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고 싶었던 익숙한 소스들이 모두 있었습니다. 야채 코너에는 한국무, 애호박, 깻잎, 고추, 그리고 콩나물까지... 정육코너에는 눈에 익은 삼겹살, 불고기용 소고기, 국거리, 삼계탕용 닭고기, 닭봉도 있었습니다. 냉동고에는 게맛살, 어묵, 만두, 핫도그 등이 가득했고요. 생활용품 코너로 가니 생리대도 크기별로 있었습니다. 혹시나 제대로 된 생리대가 없을까 봐 거의 일 년 쓸 만큼을 한국에서 가져온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마트 한쪽에는 떡볶이, 닭강정, 김밥, 돈까스 등을 파는 스낵코너도 있었습니다. 계산 중에 계산대 앞에 놓은 '새콤달콤'을 두 개 집어 카트 안에 넣었습니다.

영수증을 보고 뭘 이렇게 많이 샀냐며 놀라는 남편과 달리 저는 한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케이마트는 가격이 좀 비싸고 고기나 생선, 과일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 다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레지던스에서 알게 된 엄마들이 품목마다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단체 카톡방을 여러 개 알려 주었습니다. 초대받은 톡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고기, 냉동육, 양념육 까지... 알고 있는 모든 고기를 파는 정육점부터 밑반찬, 국, 찌개, 단품요리까지 파는 반찬방, 가래떡, 인절미, 꿀떡, 떡케이크까지 다 있는 떡집방, 로션, 비타민, 안주거리 등을 파는 생활용품방 등등... 모든 것들은 카톡을 통해 주문하고 배달되고 있었습니다. 오토바이의 천국인 베트남이기에 필요한 모든 먹거리, 물건들을 주문만 하면 집까지 왔습니다. 한국 물품 단톡방은 보톤 한국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톡에서 한국어로 주문 및 확인 가능했고, 베트남인 배달원에게는 직접 현금을 주거나 물건을 받은 후 주인에게 계좌 이체를 하면 되기 때문에 물건 구입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런 단톡방들은 제가 베트남에서 사는 동안 점점 늘어나고 파는 물품들도 점점 더 다양해졌습니다. 한국 엄마들이 새로운 톡방을 알려줄 때마다 들어가 구경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베트남은 늘어나는 한국인 수만큼 한국인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장을 보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게 수월해져 갔습니다. 다만 대형마트나 한국인들을 위한 톡방에서 물건을 구입하다 보니 현지인들처럼 장을 볼 일은 없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기껏 배운 ‘“Bao nhiêu tiền?(얼마예요?)’을 입밖에 낼 일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7시. 아이들은 8시 넘어서 유치원에 등원하기 때문에 평소엔 자고 있을 시간인데... 이날은 잠이 일찍 깨서 혼자서 모닝커피를 즐기러 1층 카페로 내려갔습니다. 국제학교 등교시간이라 레지던스 앞에는 셔틀버스들이 서 있었고 로비에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미 욕심을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아직 까진 부러운 마음에 국제학교로 셔틀버스를 바라보던 중 몇몇 특이한 엄마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탄 버스가 저만치 사라지자 집으로 가지 않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는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들은 등원시키고 바로 롯데 근처 골목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는 겁니다. 베트남은 4~5월부터 우리의 한여름 날씨가 되고 낮에는 자외선 지수가 너무 높아 걸어 다니기도 힘들기 때문에 아이들이 등교하는 이른 아침에 장을 보러 간다는 겁니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골목 시장에 가보고 싶어 시장에 자주 다니는 엄마에게 데리고 가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등원할 때 대형마트에서 산 바퀴 달린 이동식 장바구니를 끌고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셔틀이 떠나자마자 같이 가기로 한 엄마와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링랑시장 단골 과일가게

롯데 바로 옆 호주 대사관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 100미터 정도 걸으니 길에서 야채를 파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더 꺾어 들어가니 좌우로 다양한 노점들이 쫙~ 있었습니다. 야채부터 과일, 계란, 생선, 그리고 꽃까지... 다양한 물건들과 오토바이를 몬 채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까지 뒤섞여 시장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이곳은 롯데에서 가장 가까운 현지 시장, 링랑시장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생활용품, 아이들 옷, 직접 구운 빵을 파는 가게도 보였습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뚫려있는 가건물이 보였고 그 안에 정육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붉은 고기 덩어리들이 선반에 올려져 있었지만 냉장고나 저장 시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기 위로 파리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고기는 안 사기로 하고 채소와 과일 위주로 구경했습니다. 채소와 과일들은 무척 신선해 보였습니다. 그중 괜찮아 보이는 가게로 가서 가격을 물어보고 손짓 발짓해가며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장바구니 가득 담았는데도 만원 남짓밖에 안됐습니다. 작은 빵가게에 가서 15cm 정도 되는 갓 구운 바케트 빵 가격을 물으니 한 개에 1,000동(50원)! 바게트까지 구입하고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끌고 오면서 이제야 진짜 베트남에서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링랑시장은 제가 주로 장보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었지만 베트남 상인들과 직접 만나는 게 저에겐 더 흥미로웠습니다. 자주 가다 보니 단골 가게도 생겼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갈 때마다 채소 이름을 한국어 하나씩 물어봤습니다. 그 채소 가게 주인은 1~2년이 지나자 웬만한 채소는 한국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꼬 어이~ 깓깓"


집에 도착해 시장에서 산 채소와 과일을 부엌으로 나르며 빨래를 개고 있던 메이드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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