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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Sep 30. 2021

아이들과 어디를 갈까


오늘은… 여길 가자~”

 

하노이의 태양이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는 늦봄.

조식을 먹자마자 간만에 주말 골프 약속이 없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친해진 엄마들에게 들은 한 박물관을 폰으로 보여주며 빨리 나가자고 보챘습니다. 아직 여름도 아닌데 한낮이면 35도에 자외선 지수가 8~9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아이들과 돌아다니려면 아침에 움직여야 했으니까요.

 

야근도 많고 거의 매주 토요일에 새벽부터 필드에 나가는 남편은 주말이면 시원한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어 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젠 아이들이 즐겁게 유치원에 다니지만 아직 첫째의 학교가 정해지지 않아 1년도 안돼서 한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 온 베트남인데… 이대로라면 아이는 국제학교 문턱도 못 넘어보고 저는 휴직의 달콤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워킹맘으로 하루살이 삶을 살았던 제가 휴직을 하고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 졌기 때문입니다. 복직을 하게 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갈게 뻔하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만큼은 아이들과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놀고 싶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정보도 많고 직접 운전해서 여기저기 맘껏 구경했을 텐데… 여기는 길조차 혼자서 건널 수 없는 베트남 하노이.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열정으로 다른 주재원 와이프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얻고 블로그와 구글 지도를 검색해 가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만한 것들은 찾았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베트남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도전해볼 만한 여러 장소들을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Level 1


가장 접근이 쉬운 곳은 그나마 정보가 많은 주요 관광지입니다. 사실 며칠 여행 온 게 아니라 장기간 거주를 할 경우에는 의외로 유명 관광지는 잘 안 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란 저도 63 빌딩과 남산타워를 20대 말이 돼서야 처음 가봤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집에 적응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쯤 하노이에 놀러 온 친정 엄마 덕분에 관광지를 일찍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처음 와본 외국인들이 인사동, 종로, 명동, 남대문 등을 먼저 순회하듯이, 하노이에도 외국인들이 꼭 가보는 ‘호안끼엠’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호찌민의 묘를 지나가는 하노이 시티 투어버스

호안끼엠 안에서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Old Quarters’에는 세계의 유명 대도시에 가면 볼 수 있는 City Tour Bus가 있습니다. 홍콩이나 시드니에서 타본 빨간색 이층 투어 버스는 하노이의 유명 유적지나 역사적인 건물들을 1시간에 걸쳐 쭉 돕니다. 중간에 내릴 수도 있지만 정해진 중간 탑승 시간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코스를 보는 게 좋습니다. 아주 더운 한낮이 아니라면 버스 2층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노이 시내를 도는 것도 색다른 재미입니다. 그렇게 버스 위에서 둘러본 곳 중 자세히 보고 싶은 곳은 나중에 다시 가서 자세히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가봐도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알고 있거나 눈이 휘둥그래 해질 정도의 풍경이 아니라면 다들 그저 낡고 오래된 건물일 뿐입니다. 나중에 ‘나 여기 갔었다!'라고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나중에 역사 공부를 하고 둘러보았던 몇몇 유적지가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Level 2


유명 관광지를 대충 한번 돌고 나서 아이들과 주로 간 곳은 하노이 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입니다. 원래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을 너무나 좋아해서 쇼핑의 천국이라는 홍콩과 시카고에 가서도 자연사 박물관, 미술관에서만 시간을 보냈었죠. 그래서 하노이에 살면서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 가보리라 생각했었습니다.

베트남 소수민족의 전통집

하지만 주변에 물어봐도, 검색을 해봐도… 갈만한 박물관은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은 박물관에 가서 진지하게 전시물들을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일단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들을 위주로 돌아다녔습니다. 만한 박물관들은 다 가봤지만 아이들이 그나마 좋아했던 곳은 어른이 보기엔 어설픈 공룡과 동물 모형이 있는 ‘베트남 천연 박물관’과 베트남 소수 민족들의 전통 가옥을 야외 가든에 그대로 재현해놓은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 정도였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기 힘든 곳은 평일 낮에 혼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건물이나 시설이 전체적으로 열악했고 전시물들에 대한 안내나 설명도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미술관은 더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미술관도 반은 예전 불교문화와 관련된 전시물, 나머지 반은 베트남 전쟁과 사회주의 관련 그림, 그리고 호찌민 초상화뿐이었습니다. 현대미술이나 다양한 형태의 전시물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의 미술관들이 생각났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다양한 작품들을 넋을 놓고 감상하다가 하루로는 모자라 다음날 다시 방문했던 것과는 너무나 비교가 됐습니다. 그러나 곧 기나긴 전쟁 후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의 문화시설이 선진국보다는 열악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더 놀랐던 것은 시설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이었습니다.

Vietnam Fine Art Museum


하루는 낮잠을 자는 둘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주말에 첫째랑 ‘베트남 박물관’에 갔습니다. 저를 닮아 박물관 가는 걸 좋아하는 첫째와의 나들이였기에 나름 기대가 컸습니다. 넓은 마당에 커다랗고 현대적인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가 어두컴컴하고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휴관일인 싶어 로비를 지나가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들어가라고 손짓했습니다. 일단 들어가 1층부터 4층 전시실까지 둘러보는데 층마다 경비는 있었지만 전시를 보는 사람은 4층 통틀어 외국인 2명과 저희뿐이었습니다. 어두운 전시실을 단 둘이 둘러보려니 너무 무서워서 대충 보고 얼른 나왔습니다. 근대 유물이 꽤 있었고 4층에는 현대미술 작품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을까 의아했습니다.

집에 가기 전 살게 있어서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복합 쇼핑몰에 들렀는데 파리 날리던 박물관과 달리 쇼핑몰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Level 3


베트남에 오기 직전 처음으로 온 가족이 롯데월드를 갔었습니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건물들과 오색찬란한 놀이기구들, 맛있는 간식들과 신나는 음악, 그리고 대망의 퍼레이드까지. 아이들은 처음 와본 동화속 나라에 흠뻑 빠졌습니다. 서울에서 너무 눈을 높이고 얼마안되서 온 베트남. 추석에 가본 하노이 롯데센터 앞 동물원 겸 놀이공원에서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다 그렇진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남편 동료 주재원들이 추천했다는 놀이동산을 갔습니다.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놀이동산 ‘바오선 천당’에 도착하니 입구에 디즈니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가 우리를 반겼습니다. 분명 영화에서 본 '지니'인데… 약간 아이큐가 낮은듯한 얼굴이었습니다.

베트남 물가 치고는 꽤 비싼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나왔습니다. 광장을 지나 놀이동산 안으로 들어가는 벽에는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벽은 굉장히 낡았고 그려진 캐릭터들은 5% 정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와~ 회전목마다!” 아이들은 회전목마를 발견하고 뛰어갔습니다. 아이들을 태우려고 보니 회전목마 안이 굉장히 지저분하고 말에는 안전벨트가 없었습니다. 회전목마를 타고 흥분한 아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용 청룡열차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열차를 탔지만 저는 보는 내내 불안했습니다. 열차에 그려진 기괴한 피카추도 맘에 안 들었지만 각 열차를 이어주는 부분이 계속 덜컹거렸기 때문입니다.


놀이동산 표지판에서 아쿠아리움을 발견하고 지난해 잠실 롯데 아쿠아리움에 가서 흰고래를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63 빌딩 아쿠아리움에서 외국 잠수부들이 연기하는 인어공주 쇼도 환상적이었는데... 그것보다는 못하겠지만 더운 날씨에 시원한 아쿠아리움에서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볼 생각에 기뻤습니다. 아이들은 흥분해서 소리 지르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곧 아이들은 조용해지고 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대로 괜찮았던 천장 위로 물고기가 지나가는 수족관이 끝나자 큰 횟집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습니다. 물고기는 모두 칙칙한 회색톤에 횟감으로 딱이다 싶게 생겼고 아쿠아리움에서만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바다생물은 없었습니다.

"엄마~ 해파리가 안 움직여~ 자고 있나 봐.” 해파리가 있다면 좋아라 뛰어간 첫째가 외쳤습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게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수족관 안에 있는건 모형 해파리였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안 보이지만 해파리 뒤쪽으로 물밖과 연결된 가느다란 낚싯줄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들이 볼만하다고 했던 동물원으로 향했습니다. 입구부터 도마뱀 같은 작은 동물들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원숭이, 사슴, 염소, 하마, 코끼리, 호랑이가 보였습니다. 기린 우리에서는 기린에게 직접 먹이도 줄 수 있었습니다. 1,000동 주고 산 말린 당근 같은 먹이를 기린에게 내미니 검고 긴 혀를 쑥 내밀어 순식간에 낚아채 갔습니다. 기린 먹이를 주는 게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evel 4


유명하다는 관광지와 대표 박물관들을 대충 둘러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발전 단계인 베트남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박물관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전시품이나 아이들을 위한 체험 활동이 어메이징한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그리워졌습니다. 동시에 도대체 베트남 사람들을 아이들과 어디서 노나 궁금해졌습니다.


민족학 박물관을 간 날, 길건너 반대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한인타운 가는 길에 있어 택시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보았던 공원이었습니다. 담 너머로 비행기 놀이기구가 보여 어떤 곳인가 늘 궁금했는데... 다행히 박물관에서 공원으로 이어진 육교가 있어 아이들과 구경갔습니다.


하노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놀이시설

공원 앞에는 80년대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싸구려 장난감과 풍선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니 전동차를 타는 곳이 나왔습니다. 자동차를 보고 흥분한 아이들을 위해 한 명당 20,000동(천원)을 내고 전동차를 빌렸습니다. 아이들을 전동차를 한대씩 타고 트랙 안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조잔디 같은 게 깔려있는 커다란 놀이터가 나왔습니다. 베트남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여기저기 앉아 뭔가를 먹고 있었습니다. 놀이터를 보고 더욱 흥분한 아이들은 시소와 미끄럼틀로 뛰어갔습니다. 아이들을 쫓아가서 보니 놀이터 바닥은 더럽고 놀이기구는 낡고 더러워서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개의치 않고 미끄럼틀을 타던 아이들은 방방이를 발견하고 뛰어가다 이내 비명을 질렀습니다. 놀라서 가보니 방방이 가운데에 누가 토를 잔뜩해 논 겁니다. 놀란 저희와 달리 베트남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토가 있는 방방이에서 신나게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나와 옆에 있는 다른 놀이 시설로 갔습니다. 80년대 서울의 한 놀이공원에서 봤을법한 플라스틱 물고기 잡는 낚시터, 회전목마, 볼풀, 어린이용 청룡열차 등이 있었습니다. 뭐든지 한 번 이용하는데 10,000동. 비록 좀 지저분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실컷 놀게 해 줬습니다. 하지만 그후에 그 공원에 다시 가지는 않았습니다. 놀이시설보다도 문짝도 없고 벌레 투성이인 화장실은 한 번 경험한 걸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주말마다 놀러 다니다 보니 어느새 5월 말.

국제학교 신입생 모집이 거의 끝나가는 터라 6월 중순에 있다는 한국 국제학교 추첨에 필요한 서류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쯤 한 모임에 나갔다가 저의 국제학교 인터뷰 낙방담을 들을 남자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영국계 국제학교에 한국인 코디를 아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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