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sylvia Oct 03. 2021

드디어 국제학교 즐기기


“아직 자리 있으니 빨리 인터뷰 날짜를 잡아보죠.”

 

5월이 거의 끝날 무렵.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습니다.

베트남에서 알게 된 지인이 영국계 국제학교 한국인 코디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 주셔서 바로 상담하러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하노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홍강을 건너 서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예전에 하노이 국제학교 리스트에서 봤지만 아이가 통학하기에 너무 멀다고 생각해서 지원할 생각조차 안 했던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신입생 입학 신청을 마감할 날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등하교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유럽풍의 고급 단독주택 단지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내려 정문을 지나 메인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로비에 앉아있으니 한 선생님이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커리큘럼이나 학교 시설 등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 한국 국적밖에 없는 우리 딸이 입학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한국인 티오가 남아있었고 일정이 촉박하니 바로 인터뷰 날짜를 잡기로 했습니다.

두어 달 전 세 국제학교 인터뷰에 모두 낙방했지만 이번엔 조금 기대가 됐습니다. 그동안 딸의 영어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첫 등원하고 2주 후쯤부터 등원 시간에 울지 않고 헤어지더니 한 달 후에는 유치원이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게 싫다던 아이가 체육시간은 재밌다고 하더니 이제는 주말에도 유치원을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시키지 않아도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동생과 영어 노래를 종일 부르고 영어로 인형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BBC의 어린이 방송 CBB를 즐겨보고, 넷플릭스에서도 영어로 말하는 만화를 봤습니다. 미용실에서 처음 보게 된 ‘초등학교 영어사전’을 사달라고 해서 심심할 때마다 그 책을 읽기도 했고요. 띄엄띄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가며 어느새 영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잘 다니는 동안 주재원 와이프들을 통해 하노이에는 여러 부류의 국제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가장 선호도가 높고 학비도 무진장 비싼 미국, 영국계 국제학교, 그리고 그보다는 선호도와 학비 모두 낮은 아시아계 국제학교, 베트남 고위층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베트남 사립 국제학교, 늘어나는 한국인들을 겨냥해서 설립된 신생 국제학교, 그리고 대사관에서 설립한 한국에서 파견된 교사들이 한국과 똑같은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한국 국제학교가 있습니다. 학비의 전체 혹은 대부분이 지원되는 주재원 자녀들은 주로 미국, 영국계 국제학교에 몰리고, 한국 대학의 해외 귀국자 대입 전형을 노리거나 학비 지원이 안 되는 회사나 자영업 가정의 아이들은 학비가 매우 저렴하지만 교육의 질은 높은 한국 국제학교를 선호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주재원 자녀들이 덜 몰리는 아시아계 국제학교에 원서를 넣고 인터뷰를 봤습니다. 그리고 추첨제지만 지원자에 비해 수용 가능한 인원이 적어서 들어가기 더 어렵다는 한국 국제학교도 일단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학교 모두 입학이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남편만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영국계 국제학교의 인터뷰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인터뷰 보기 전 날, 미리 봤던 아시아계 국제학교로부터 합격 메일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영국계 학교에 합격할 수도 있으니 연락 온 학교에 바로 등록은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인터뷰 당일.

아침에 둘째만 등원을 시키고 첫째와 국제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로 가는 내내 기분이 좋은 첫째를 보며 합격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터뷰는 총 3단계로 진행됐습니다. 처음에 입학 담당 선생님과 가벼운 대화를 하고, 다음으로 같은 나이의 반에 직접 들어가 수업에 참여합니다. 마지막으로 ESL 선생님과 영어 시험을 봅니다.

로비에서 저와 웃으며 인사하고 아이는 입학 담당 선생님과 사라졌습니다. 30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선생님은 “(영어로) 수업에 참여하려고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달래도 멈추지 않아 데리고 왔습니다. 진정이 되면 다시 들어가 볼게요.”


아… 망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꺽꺽거리며 우는 아이를 안아주며 합격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챙겨간 초콜릿과 주스를 먹이며 일단 아이를 달랬습니다. 조금 진정이 되자 왜 울었는지 물으니


아이들이… 날 쳐다봤어.”


어이가 없었습니다. 영어 때문도 아니고… 이런 이유로 그렇게 통곡하며 울다니… 하…


잠시 뒤, 선생님이 다가와 이번엔 엄마랑 같이 들어가 보자고 했습니다. 이미 포기했지만 어떤 상황이었길래 그렇게 울었는지 궁금해서 함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딸이 왜 울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Year 1 교실에서는 딸 또래의 아이들 20여 명 정도가 교실 앞에 모여 앉아 선생님과 함께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그 순간 많은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압도되었습니다. 어른인 저도 느꼈을 정도라면 딸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 한국 여자아이가 다가와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괜찮아. 나랑 같이 갈래?”라고 다정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다 싫은 딸은 얼굴을 홱 돌렸고 제가 대신 “고마워, 근데 지금은 앞으로 가기 싫은가 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실 뒤에서 아이들이 수업하는 걸 10분 정도 보다가 점심시간이 시작돼서 아이들이 줄지어 나가는 걸 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ESL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미 겁을 잔뜩 먹은 딸은 같이 가자며 고집을 부렸고, 결국 제가 인터뷰를 보는 교실 문 유리창 밖에 서있는 걸로 합의를 보고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아이가 저를 볼 수 있게 인터뷰 내내 문 앞에 등을 대고 서있습니다. 지나가던 한 한국 아이는 저를 보고 "아줌마는 여기 왜 서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밝아진 아이를 보며 조금 얄밉기까지 했습니다.

 



일주일 후.

볼 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가던 중, 한국인 코디 선생님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어머님… 합격했어요. 축하드려요.”

오 마이 갓!! 기대하지 않았던 반가운 소식에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해서 합격 소식을 알리고도 심장이 벌렁거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한편으론 대학도 아니고 고작 초등학교 입학 소식에 이렇게 기쁜 제 자신이 우습기도 했습니다.

 

어째튼… 이로써 우리의 베트남 라이프 2막이 시작됐습니다.



 

합격 후 입학을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회사를 통해 등록금을 납부하고 셔틀버스를 신청했습니다. 셔틀버스 비는 회사에서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자비로 계산했습니다. 8월 말~12월 초까지의 셔틀버스비는 70만원 정도였습니다. 학교에 가서 아이 사이즈에 맞는 교복을 수령하고 쇼핑몰에서 검은 정장 구두를 샀습니다. 딸은 학교 모자에 네임펜으로 자기 이름을 크게 썼습니다.


8월 중순 입학식 날.

늘 바쁜 남편이지만 이런 날에 쓰라고 반차가 있는 거겠죠? 막내만 등원시키고 세 식구가 학교로 향했습니다. 상담과 인터뷰 등 모든 과정은 참여하지 않은 남편은 딸의 학교가 처음이었습니다. 크고 세련된 학교를 둘러보는 남편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로비에서 안내물을 받고 강당으로 올라가니 남편이 아는 사람들도 꽤 보였습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아이들은 선생님과 교실에 간 사이에 강당 뒤쪽에 스탠딩 파티가 마련됐습니다. 대충 둘러봐도 한국인, 베트남인, 일본인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아주 소수의 서양인들이 있었습니다. 벽면에 걸려있는 지난 학년도 각  단체 사진을 보니 역시 이 세 나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국제학교이지만 그리 국제적이지 않았습니다.

 

입학식 바로 다음날이 정식 첫 등교날.

8시 2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했습니다. 예쁘게 교복을 입고 가방에는 모자와 개인 물통만 넣었습니다. 국제학교 아이들이 몰리는 시간이라 엘리베이터를 오래 기다려야했습니다. 어쩌다 문이 열려도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어 그냥 보내기도 했습니다.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내리니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보였습니다. 학교 로고가 붙은 셔틀버스에 태우고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실제로 일어날까 싶었던 국제학교 등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Star of the Week를 받은 학생이 쓸 수 있는 왕관을 쓰고 수업 중인 딸

오후 4시쯤.

둘째가 하원하고 로비에서 함께 첫째를 기다렸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많긴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들은 모두 영국인이라 학교 생활이 어땠을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또 학교 가기 싫다고 하지 않을지 내심 걱정됐습니다.

잠시 뒤, 셔틀버스가 롯데 앞에 섰고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으며 저에게 뛰어왔습니다.

엄마! 학교 너무 좋아~ 나 내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어!"

어땠냐고 묻기도 전에 딸은 흥분해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냈습니다.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에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딸은 첫날부터 학교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친구도 금방 사귀고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즐겼습니다. 입학한 지 몇 주 안돼서 그 주에 모범적인 학생에게 주는 ‘Star of the Week’에 선발되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받는 상이라는 건 알지만 스스로를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이 상보다도 저에겐 더 큰 상이었습니다.


몇 달 후 입학 후 처음 있었던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날.

선생님은 입학 첫날 딸이 썼던 글과 상담 전날 쓴 글을 비교하며 보여줬습니다. 단어 몇 개가 다였던 첫날과 달리 이젠 꽤 긴 문장들로 글다운 글이 적을 수 있었습니다. 사용한 동사나 형용사도 꽤 다양했고 문장 구성도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자기 이름도 영어로 못썼던 반년 전을 떠올리면 너무나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12월 요리교실... 프랑스 명절 체험 중

딸이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저의 로망도 하나둘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거리가 있어서 자주는 힘들었지만 웬만한 행사에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노이 중심지 투어나 환영파티, 그리고 매달 있었던 각 나라의 요리 교실에도 참여했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다가 말이 잘 통하고 맘에 맞는 사람이 있으며 페북으로 친구를 맺고 개인적으로 연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재학 중인 한국 학생이 엄청 많은데도 이런 행사에서는 제가 유일한 한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외국 엄마들도 저를 볼 때마다 그 많은 한국 엄마들은 왜 안 보이냐며 묻곤 했습니다.




10월. 중간 방학 직전에 첫 텀에 가장 큰 행사인 ‘International Week’가 열렸습니다. 학생들은 그 주 내내 학교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자기 나라의 고유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하기도 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학교에서 마련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학교 마당에 설치한  무대에서 학년마다 준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포토죤에서는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라를 소개하는 부스를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었습니다. 게임 존에서는 낚시, 방방이, 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한 게임을 즐겼습니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International Week 주말 박람회



International Week가 끝나고 첫 중간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휴가를 쓴 아빠와 함께 우리 가족은 베트남 남부의 새로운 보석, 푸꾸옥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제 베트남에서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 11화 아이들과 어디를 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