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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Oct 11. 2021

화려하고 강인한 베트남 여성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색은 회색이잖아.”


요가원에서 만난 필라테스 강사인 베트남인 Ha가 말했습니다. 뼈 때리는 평가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부터도 옷장 안에는 온통 무채색 옷이었으니까요. 주로 다른 옷과 매치하기 쉽고 튀지 않는 차분한 색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인들의 눈에는 회색빛으로 보였나 봅니다.

 

 

큰 아이가 국제학교에 무사히 입성하고 장을 보고, 택시 타고, 이제는 무단횡단까지 익숙해지면서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베트남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이전에 생각했던 베트남은 전쟁의 잔재가 남아있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베트남 인들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밝은 표정과 순순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외국인들에게도 친절했습니다. 톤이 높고 강한 베트남어로 종일 웃고 떠들었습니다. 강하고 당당하지 위축되거나 한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약삭빠르고 사람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외국인들이 주로 가는 호텔이나 레지던스 말고 일반 베트남 사람들이 가는 곳들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빨갛고 노란 국기 색을 테마로 한 화려한 장식 속에 꼭 빠지지 않는 건 바로 꽃. 생화였습니다. 시장이나 거리에 꽃을 싣고 가는 오토바이, 자전거에서 아주 쉽게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꽃집도 유독 많고요. 다만 꽃집에는 마치 상갓집이나 칠순잔치에 어울릴 배열의 꽃바구니뿐이라 딱히 사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지만요. 


하노이 꽝안 꽃시장

한국에선 바쁘기도 했고, 장미 한 송이만 해도 3천원은 되기 때문에 기분 내키는대로 꽃을 사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린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행여나 아이들이 꽃을 입에 대거나 화병이 깨져 다칠까봐 꽃과 더 멀어졌고요. 근데 베트남에선 낮에 혼자 한가롭게 보낼 시간이 있고 꽃을 살 곳도 많아 자연스럽게 주기적으로 꽃을 사러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마트와 시장에서 파는 꽃다발을 사다가 서호 쪽에 하노이에서 제일 큰 꽃 도매시장이 있다는 걸 알고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선 양재 꽃시장이나 일산 화훼단지도 거의 못 가봤는데… 베트남에 오니 제 일상의 한 부분을 꽃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50미터 정도 쭉 들어선 꽃가게에서 눈에 익은 꽃부터 처음 보는 꽃까지 다양한 꽃들을 있었습니다. 한참 구경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면 여기저기서 오토바이가 쓍쓍~ 지나갑니다. 베트남 손님이 오토바이를 탄 채 가게 앞에서 꽃을 고르면 가게 주인은 나무껍질 끈으로 오토바이 뒷좌석에 꽃을 묶어줬습니다. 가격은 한국과 비교하면 저렴했지만 꽃의 종류마다 비슷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꽃도 예쁘지만 꽃을 사는 제 자신이 좋아 웬만하면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드는 걸로 샀습니다.


집에 와서 사온 꽃을 다듬고 화병에 꽂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일과 육아로 한국에서 지쳤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저에게 행복을 준 꽃들이 생각보다 빨리 누래지고 꺾여서 며칠을 못 간가는 건 아쉬웠지만요.

 


 


베트남에서는 일상 속에서 꽃 이외에 가랜드나 등불, 수술과 같은 화려한 장식품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작고 낡은 가게라도 들어가는 입구 바닥에 작은 사당 같은 게 있는데,  이 사당 앞에는 꽃과 음식이 놓여있고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기념하는 날이 언제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화려한 장식품으로 치장되어 있으니까요. 공식 연휴가 아닌 추석에도 도시는 온통 붉은 색 장식품으로 탈바꿈하고 기독교 국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는 서양식 트리와 산타 할아버지로 번쩍번쩍 합니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 음력설이 다가오면 온 도시는 열매가 어마어마하게 큰 과일나무와 분홍빛을 자랑하는 벚꽃으로 세상 화려해졌습니다.  




화려하고 장식을 좋아하는 베트남의 문화는 고스란히 여성들의 삶에도 배어 있었습니다. 베트남 여성들은 몸에 붙고 장식이 많은 화려한 옷을 좋아합니다. 부자거나 패션 쪽 일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실크 패턴이나 커다란 브랜드 로고, 요란한 그래픽, 글리터가 한가득인 옷도 잘 입고 다니고요. 옷가게에서 살짝 패턴이 들어간 옷을 집었다가 막상 사더라도 몇 번이나 입을까 싶어 다시 내려놓는 한국인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많은 오토바이 무리 속에 예쁘게 꾸미고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옷도 화려하지만 가방이나 구두, 장신구 같은 액세서리도 지지 않았습니다. 청소하러 온 아주머니들도 볼드한 귀걸이에 예쁜 샌들을 신고 오니까요.




흔히 ‘베트남에는 김태희가 농사 지고 있고, 전지현이 지게 지고 간다.’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하지만 실제 베트남에는 그런 미인들을 만나기 힘듭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베트남 아가씨들은 체구가 작지만 볼륨감을 동양인 치고는 꽤 있는 편이라 여성미가 강조되긴 합니다. 취향이 남다른 소수를 제외하고는 머리 염색도 진하게 하지 않고 원래 검은색을 유지하는 편입니다. 길게 기르거나 볼륨감 있게 컬을 넣어 검은 머리의 매력을 뽐냅니다. 화장은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햇빛이 뜨거운 더운 나라의 여성들은 대게 그러하듯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하게 생겼지만 상대적으로 피부가 하얀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부러워하고, 최근 들어서는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중저가인 화장품 브랜드들이 베트남에선 백화점에 입점해 한국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흔한 베트남 엄마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발라도 여름엔 40도가 넘는 베트남에서 하얀 피부를 갖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베트남의 여성들은 오토바이를 탈 때 아랍 여성들이 입는 차도르와 같은 긴팔에 종아리나 발목까지 오는 겉옷을 입습니다. 물론 이 겉옷은 비옷의 기능도 하고요. 아랍 여자 같은 복장 안에는 화려하고 섹시한 옷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노이 시내에서 눈에 자주 띄는 여자 광고 모델들이 있습니다. 자주 눈에 띈다는 건 유명 연예인이거나 현재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마스크라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동남 아시인의 얼굴이 아닙니다. 즉, 그을리고 턱이 각진 얼굴에 쌍꺼풀이 진한 큰 눈, 콧볼이 넒지만 콧대는 높지는 않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 말입니다. 그래도 30대 이상으로 보이는 모델들은 얼굴을 하얗고 화려하지만 베트남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20대 이하의 어린 모델들은 전혀 베트남 사람 같지 않습니다. 딱 보면 예쁜 한국 사람 같은데 전혀 본 적이 없는 마스크라 처음엔 일본이나 싱가포르 연예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꼭 모델이나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지나치는 많은 젊은 베트남 여성들은 나이 든 여성들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북아시아계 얼굴입니다.

 



 

이렇게 외모와 패션에 관심이 많고 선명하고 환한 색감을 좋아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제가 가본 어떤 나라 사람들 보다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멋진 건물이나 장신품 앞에는 어김없이 베트남 여성들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아니… 찍히고 있습니다. 처음엔 쇼핑몰 모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냥 일반인들입니다. 친구들이 서로 찍어주기도 하고 애인이 찍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찍히는 일반 여성들의 표정이나 포즈가 모델 뺨친다는 겁니다. 한쪽으로 떨어트린 시선, 에지 있는 손끝, 턱선을 강조하는 각도… 학교에서 사진 잘 찍히는 방법이라도 배우는 건지… 하나같이 전문 모델입니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찍어주는 사람도 전문 포토그래퍼 빰칩니다. 최고의 한 장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눕기도 합니다. 이런 능력 탓에 하노이 시내 어디서든 아무에게나 부탁해도 보통 몸매의 저를 모델 비율로 나오게 찍어줍니다.

 

전문 모델 빰치는 베트남 여성들

특별한 행사가 있는 곳에선 그들의 찍고 찍히는 능력은 더 빛이 납니다. 연휴를 맞이해 만들어 놓은 장식물이나 행사장, 그리고 꽃밭에선 누구나 모델이고 포토그래퍼입니다.

하노이 서호에는 봄이면 한가득 연꽃밭이 펼쳐지는데요. 연꽃 사이사이 일반인들이 전통의상이나 섹시한 옷을 입고 요염한 표정과 자태로 맘껏 기량을 펼칩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는 사진사가 엄청 큰 대포폰으로 열과 성을 다해 찍고 있습니다. 만연한 연꽃을 보러 온 우리 가족은 바로 옆에서 나란히 서서 한 손으론 브이를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다고 외모에만 신경 쓰는 허영심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베트남 여성들은 생활력 만렙의 현실판 전사들입니다.

아직까지 베트남 여성들은 결혼을 꽤 일찍 하고 아이도 두 명 이상 낳는 편입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대부분 경제활동까지 합니다. 길에서 국수를 팔던, 마트에서 물건을 진열하든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합니다. 반면 남성들은 한낮에 오토바이 위에서 낮잠을 자거나 노점 카페에서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때우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의 여성만 생활력이 강한 건 아닙니다. 고급 주택에 살거나 국제학교에서 만나는 베트남 엄마들 중에 일을 안 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베트남 여성들은 더욱이 선진국 여성들 못지않게 똑똑하고 당당하며 진취적입니다.

이렇게 생활력이 강한 베트남 여성들도 최근엔 우리나라처럼 점점 결혼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여성이 그러하듯이 살림과 육아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기보다는 스스로가 중심인 삶을 살고 싶은 당연한 욕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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