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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Oct 14. 2021

배달과 짝퉁의 왕국


엄마~ 오토바이 위에 냉장고가 있어~”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입국 수속을 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도로에 오토바이 수십대가 보였습니다. 마중 나온 사람, 비행기를 타러 온 사람, 물건을 배달하러 온 사람. 역시 오토바이의 나라구나 했죠.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공항을 벗어나 하노이 시대로 들어서자 뜨문뜨문 보이던 오토바이들이 어디선가 하나둘 나타나더니 어느새 우리가 타고 있는 차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롯데 센터 앞에도 오토바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요정도는 많은 것도 아니였습니다. 저녁 퇴근 시간에 외식을 하러 나가니 6차선 도로에 오토바이들이 가득했습니다. 차도 많았지만 그 많은 차들 사이사이에 오토바이로 꽉 찼습니다. 도로는 수많은 차와 오토바이들이 한데 섞여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보다 몸집이 작고 저렴하며 이동이 간편한 오토바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발입니다.

처음엔 수많은 오토바이가 신기하기만 했지만 베트남에 살면 살수록 저 또한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노이 시내에 교통체증이 심하고, 시내버스가 있지만 노선이 많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호수가 많은 하노이에는 땅속으로 지하철을 짓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40도까지 올라가는 여름에는 강한 햇볕 때문에 5분만 걸어도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시내 한복판 대로 안쪽 골목들조차 사람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아서 차로 가기엔 힘듭니다.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길을 건너기도 어렵기 때문에 어딜 갈려고 하면 오토바이로 쑹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렴한 물가에 비해 자동차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비싸서 일반인들은 감히 구입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오토바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베트남 성인들은 다 한 대씩 가지고 있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아기띠에 들어있는 갓난아이 때부터 오토바이에 익숙한 베트남 사람들을 오토바이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해냅니다.

 

베트남 오토바이는 탑승 제한 인원이 없습니다. 일반 오토바이 한 대에 성인 세 명이나 아이들이 있는 일가족 4~5명이 타고 가는 장면은 이제 하도 많이 봐서 놀랍지도 않습니다. 운전자 앞에 아이 한 명, 엄마 아빠 사이에 두 명까지는 문제없습니다. 아이들을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목이 한쪽으로 꺾인 채 편안하게 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보기도 합니다.

때문에 베트남에는 '오토바이 택시'가 있습니다. 일반 택시보다 저렴하고 차 사이로 씽씽 달려서 시간도 엄청 절약돼서 외국인들도 자주 이용합니다. 다만 기사가 건네는 공용 헬멧에 배어 있는 땀 냄새를 건져야 한다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배달의 달인인 오토바이 배달원들

오토바이로 나르지 못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오토바이로 배달이 되기 때문에 더운 베트남에서 편하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커피 한 잔조차 어디로든 다 배달이 되기 때문에 카페에 힘들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앱으로 주문하는 음식 배달 전용 업체도 많이 있지만 일반 기사들도 웬만한 건 다 배달해줍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물품들도 오토바이로 배달해줍니다. 커다란 상자는 기본이고 웬만한 가구와 전자제품도 오토바이로 옵니다. 냉장고와 디지털 피아노도 차로 나르지 않습니다. 새해가 다가오면 사람 키만 한 귤나무나 벚꽃나무를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사들은 한 손에 배달할 물건을 들거나 휴대폰을 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운전을 하기도 합니다.

 

차나 오토바이가 없고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외국인 주재원 와이프들에게 물건을 받고 음식을 시켜먹기가 더없이 편리한 나라입니다. 이런 편리함 덕분에 베트남에 한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카톡에 수많은 물품 구입 방과 반찬 방이 생기고 있습니다. 간편하게 톡으로 한국인 사장에게 주문하면 베트남 직원이 집까지 배달해줍니다. 온갖 종류의 김치부터 한국 밑반찬, 국, 찌개… 심지어 한국에서도 시켜본 적 없는 회, 삼합도 오토바이로 배달됩니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해진 주재원 와이프들은 아이들이 없는 낮에 골프 연습을 하거나 쇼핑을 하러 다녔습니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저는 일단 그들을 따라다녔습니다.

3~4명의 와이프들은 함께 택시를 타고 한인 타운이나 한국 음식점들이 한두 개 보이는 골목에서 내렸습니다.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영어와 한국어로 쓰여있는 간판이 나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면세점 저리 가라 할 만큼 다양한 명품 가방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명품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가격은 진품의 1/10. 저 같은 사람은 봐도 모르니… 한두 개 살만해 보입니다. 일단 남편이 가지고 다닐만한 반지갑을 살펴봤습니다. 주인장은 어설프게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제가 유심히 보는 물건마다 가격을 말해줍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른 가게는 3층까지 매장이 있었습니다. 1층은 가방과 지갑이 가득했고, 2층으로 올라가니 골프가방과 용품들이 있습니다. 3층에는 유명 제품들의 액세서리도 진열되어 있습니다. 곧 한국에 들어갈 일이 있다는 한 분은 시댁 식구들 드릴 남성용 벨트를 여러 개 집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아이들 옷을 쇼핑하러 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 때문에 옷이 금방 작아져 버리고, 언니 옷만 사가면 세상 무너질 듯 우는 둘째 때문에 옷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디 괜찮은 아이들 옷 살 때 없냐는 물음에 끌려간 곳은 후미진 골목 안에 작은 옷가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유명 아동복 브랜드로 보이는 옷이 여기저기 쌓여있습니다. 실제 매장처럼 에쁘게 진열되어 있는 않기에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옷 더미를 뒤져서 맞는 사이즈를 찾아야 합니다. 한참 옷을 뒤지고 있는 우리에게 주인장은 이게 다 진품이라는데... 믿지는 않았습니다.

 


더운 베트남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신는 신발은 가볍고 구멍이 뚫려 시원한 크록스입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유명 캐릭터 없는 크록스라도 두 켤레면 10만원. 금방금방 크는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려면 신발값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니 쇼핑에 도가 튼 한 와이프가 절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옷가게가 즐비한 한 골목의 신발가게. 들어가니 백화점에서 본 크록스가 가득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더 비싼 겨울왕국 엘사와 디즈니 공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디자인마다 사이즈가 다 없긴 하지만 잘 뒤지면 맘에 드는 걸 고를 수 있습니다. 신나있는 저에게 같이 간 엄마가 ‘신발 두 짝이 높이가 다른 경우가 있으니 잘 골라요~.’라고 속삭입니다. 신중하게 아이들 신발 두 켤레에 제 샌들까지 골랐는데도 4만원. 크록스는 베트남에서 만큼은 부담 없이 신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이프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베트남에 없는 가품은 없었습니다. 이제야 왜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기사들도 명품 벨트에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 명품 짝퉁 사보겠다고 이태원을 돌아다녀봤던 저였지만 여기서는 너무나 대놓고 가품을 팔고 있는 건 좀 놀라웠습니다. 저렴이 신발들을 진열해놓고 구석에서 명품 카피를 꺼내 보여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베트남에서는 대로에 있는 매장에는 온통 다 카피한 물건들입니다.

  



배달의 왕국 베트남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은 거의 없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바로 한국 책이었습니다. 한인회에 도서관을 있지만, 이것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새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호찌민에 교보문고가 생겼다는 소식에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읽고 싶은 책을 다른 집에서 하나씩 빌려보거나 e-book으로 보던 중, 베트남에 오래 사신 분이 쿨하게 말합니다.


“복사해서 보세요.”


베트남에 흔한 복사 가게

'읽고 싶은 책은 대부분 300 페이지가 넘는데… 그걸 복사하라고?'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페이지를 복사하려면 책을 분해해서 기계에 넣어야 할 텐데... 빌린 책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속는 셈 치고 가본 동네 복사가게에 지인에게 빌린 책을 맡겼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한 권에 50,000동. 300페이지 넘는 책인데 통으로 복사하는데 2,500원 이랍니다. 그것도 기계로 돌리는 게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한 장 한 장 복사하는데도 말이죠.


며칠 후, 책을 찾으러 복사 가게로 갔습니다.

주문한 책 5권과 원본 책을 건넵니다. 원본 책은 손상된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책의 표지가 거꾸로 복사되어 있고, 읽다 보니 중간에 한 페이지가 없었지만... 용서가 됐습니다.



그 뒤로 읽고 싶은 책은 원본을 빌려 복사했습니다. 처음엔 너무나 양심에 찔렸지만 버젓이 비싼 영어 원서를 칼라로 복사해서 쓰는 학원이나 과외들을 보고 점점 더 뻔뻔해져 갔습니다. 20여년 전 학교 안 복사가게에서 전공 서적을 복사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최근에는 하노이에 한국 문제집을 통으로 복사해서 파는 가게가 개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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