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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Oct 20. 2021

국제적인 국제유치원


Would Stella have a playdate after school today?”


과감하게 옮긴 새로운 유치원에서 등하원 때마다 듣게 되는 말입니다.


아침에 되면 첫째가 일찍 학교 셔틀을 타고 등교하고 저는 막내와 레지던스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을 타고 유치원에 갑니다. 버스 안에는 같은 레지던스에 사는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있습니다. 셔틀버스 안은 알아듣기도 하고 못 알아듣기도 하는 여러 가지 언어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유치원 앞은 유치원 셔틀버스, 각종 레지던스의 셔틀버스, 개인 차량, 오토바이, 자전거, 유모차 등으로 아침부터 복잡합니다. 심지어 자전거 앞에 붙인 개조된 리어카에 아이 둘을 싣고 오는 금발머리 엄마도 보입니다.

유치원 문으로 들어서면 베트남에 오기 전 꿈꿨던 '국제적인' 국제 학교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하노이 어느 학교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인종의 어른과 아이들이 이곳에 모두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뛰노는 유치원 마당

중앙 마당에는 매일매일 색다른 놀이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떤 날은 그림 그릴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또 다른 날은 꽃잎과 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있거나 구멍이 뚫려있는 커다란 종이 상자가 여러 개 놓여 있기도 합니다. 한 번은 어른 키보다도 큰 야자수 잎을 보고 아이보다 제가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대상을 만지기도 하고 끌기도 하고 안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가든 한쪽 편에 있는 놀이시설에는 아이들이 원숭이처럼 매달리고 점프하며 놀고 있고, 막 등원 미션을 마친 부모들은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호자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아이가 한두 명씩은 있지만, 대부분 굿바이 키스를 하고 뒤돌아 보지도 않고 친구들에게 뛰어갑니다.



새로운 유치원에는 ‘학습’이 거의 없습니다. 이 유치원에 한국 아이들이 별로 없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이들은 종일 그져 신나게 놉니다. 환경은 선생님이 조성해주지만 뭘 하고 어떻게 놀지는 매번 아이들이 정합니다. 꽃잎을 한 줌 뜯어 물속에 던져도 보고, 물감을 종이 위에 마구 뿌려도 봅니다. 블록으로 다 같이 마을을 만들고, 친구의 얼굴을 그리고,  호수로 가든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하던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 유치원을 다녔던 막내는 처음엔 손이나 옷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하원 시간이 되면 누구보다도 상거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뗏국물을 줄줄 흘리며 두 손 벌려 제게 뛰어노는 딸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뭔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온 것도 모른 채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고 있는 아이 이름을 부르다 마주친 담임 선생님과 잠깐씩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아이의 가방을 찾다 보면 거의 매일 아이 친구의 보호자가 다가와 플레이 데이트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물론 제가 플레이 데이트하자고 묻기도 하고요. 그렇게 급박하게 결성된 데이트 멤버끼리 한 집으로 향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하교 후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 친구와의 플레이 데이트가 가장 큰 일정입니다. 누구네 집으로 가든 놀이는 계속됩니다. 유치원에서 종일 놀았을 텐데도 뭐가 그렇게 놀게 많은지 아이들은 또 신나게 놉니다. 아이들이 잘 노는 동안 부모들끼리 대화를 나눕니다.


두 가정이 놀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러 친구들끼리 같이 놀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친구들을 레지던스 데리고 와 놀이터에서 다 같이 놉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부모들끼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이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들 부모 자신의 삶이나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부모들을 통해 소박하지만 새로운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노을이 지는 하노이의 하늘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나 와인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합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유치원에는 부모들도 신나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많습니다.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아이들 등원시키고 바로 열리는 ‘Coffee Morning’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멍석의 역할을 합니다. 유치원에서 행사니 대화의 시작은 ‘아이가 어느 반이에요?’이지만 대화가 무르익어 갈수록 점점 아이는 빠지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맘에 맡으면 플레이 데이트를 약속하고 서로 SNS를 교환합니다. 여기서 만난 엄마들과 같이 요가 센터를 다니기도 하고 점심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화가인 우크라이나 엄마와 인스타로 소통하고, 국제학교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프랑스 엄마와 동네 카페에서 국제학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국의 명절이 다가오면 집으로 초대해 명절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일을 하거나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기르고 있지만 '엄마'로서의 자아와 함께 자신만의 세계가 명확했습니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어디가 위냐며 내민 한글 이름표

하노이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International Day’가 다가옵니다. 한 달 동안은 각 교실에서 학부모가 준비한 자신의 나라를 소개하고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특별 수업이 계속됩니다. 유치원 수업 시간에 타코를 만들고, 사진으로 파리를 여행합니다. 일본 전통 놀이도 하고 다음날은 태국 전통 디저트도 만들어 봅니다. 각 반의 한국 엄마들은 한복 입어보게 하거나 윷놀이와 제기차기를 알려줍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안녕’, ‘사랑해’를 노래로 알려주고, 아이들 이름을 한글로 프린트해서 이름표를 만들고 직접 색칠하게 했습니다. 한국 문화 수업 다음날, 하교시간에 만난 독일 친구의 아빠는 어디가 위인지 몰라 물어보려고 가져왔다며 아이의 한글 이름표를 내밀었습니다.



12월의 한 토요일.

드디어 유치원에는 세계 박람회가 펼쳐졌습니다. 학부모들이 힘을 합해 각 나라를 대표하는 부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세계지도가 그려진 종이 한 장씩 주고 구경한 테이블에 있는 각 나라 도장을 찍게 합니다. 어디서나 단합이 잘되는 한국 부모들을 이 주일 전부터 이날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의상 디자이너인 엄마가 팀장인 디자인팀은 한국 부스를 태극기와 한복 천으로 아름다움을 꾸몄습니다. 체험학습팀은 아이들이 색칠하고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한국의 단청과 뽀로로 캐릭터 모양의 목걸이를 준비했습니다. 음식팀이 준비한 꿀떡과 닭강정에 구경 온 학부모들이 몰립니다. 바로 옆에 있는 베트남 부스에는 각 반의 베트남 보조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 음식으로 진수성찬을 차려놓았습니다. 벨기에 엄마는 감자튀김을 나눠주고 인도 엄마들은 아이들 손에 헤나를 그려줍니다. 이탈리아 아빠가 건네주는 피자를 먹으며 영국 부스 앞에 서있는 ‘Peppa Pig’를 만납니다.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세계 지도는 어느새 각 나라의 도장으로 가득합니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반나절만에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겨울 끝자락에 열린 ‘Parents’ Evening’. 아이들을 내니에게 맡긴 엄마, 아빠들이 해가 진 후 유치원 가든에 모였습니다. 가든에서 와인 한잔씩 받아 든 학부모들은 각자 아이의 반으로 올라갑니다. 반에는 아이들이 부탁한 미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반에서는 우주선을 만들어야 한답니다. 처음엔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와인 한잔씩 더 마시고 취기에 일단 시작합니다. 선생님이 준비해준 커다란 종이 상자를 잘라 이래저래 맞춰보며 서서히 우주선을 만들어 갑니다. 몸체가 완성되자 물감으로 우주선 이름을 크게 쓰고 외관까지 멋지게 칠합니다. 저는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붓으로 우주선 조정 테이블과 각 나라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우주선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합니다. 다음날 교실에 생긴 커다란 우주선을 본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원후 해질때까지 함께 노는 아이들

매일매일 자르고 그리고 쌓고

끊임없이 뛰고 구르고 올라가고


유치원에서... 매일같이 이어지는 플레이 테이트에서 아이는 점점 달라져갔습니다.


벌레 하나에도 기겁하며 도망가고 조금이라도 더러워질만한 놀이는 하지 않으려고 했었던 아이는 몇 달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벌레를 관찰하고 모래밭을 굴러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뛰고 말하고 웃었습니다. 이제는 데려다 주기만 하면 혼자서도 씩씩하게 친구 집에 놀러 갑니다. 자전거를 산지 한 달 만에 보조바퀴를 떼고 물속에서 숨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합니다.


이사 후에 학교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큰 아이 역시 새로운 환경에서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철봉에 원숭이처럼 매달리고 자전거로 스피드를 즐깁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테니스와 배드민턴을 배우고 친구들을 모아 티셔츠가 다 젖을 때까지 얼음땡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합니다. 고급 레지던스에서는 깔끔쟁이 집순이였던 아이들이 덥던 비가 오던 자연 속에서 뛰고 구르며 자라납니다.


영어보다… 수학보다… 더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쌓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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