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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Dec 11. 2022

시금치의 찐 맛!

일상으로 돌아온 어반스케쳐 (2)


2022년 1월

하늘길이 끊겨 2년 만에 돌아온 고향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매서운 한반도의 바람이 어느새 남쪽 나라에 적응된 우리를 감쌉니다. 짧은 통로를 지나 입국 심사로 가는 길에 건치를 뽐내며 웃고 있는 이병헌의 대문짝만 한 얼굴이 반갑습니다. 출국 전 허술한 베트남의 CPR 검사에 통과하고 별거 없는 출국 심사를 통과했던 터라 얼른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엄마...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해요?'

벌써 10번째 물어오는 아이의 대답에 우리도 할 말이 없습니다. 새벽 5시에 도착했지만 7시가 다 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입국 심사 줄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마스크와 비닐장갑, 심지어 방역복을 입은 채 계속 서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줄 옆에 암묵적으로 인정된 또 하나의 줄이 있습니다. 바로 지친 아이들이 바닥이나 창틀에 널브러져 있는 줄입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는 검문소가 또 하나... 또 하나...

바이러스도 지쳐서 가버릴 정도로 꼼꼼한 심사가 이어집니다. 긴장된 상태로 아이들을 끌고 밤 비행기를 타고 온 우리는 이 긴 여정에 지쳐갔습니다. 피로와 짜증이 몰려오다가 어느 시점이 되니 해탈하게 되고... 막바지에 가서는 심사하는 방역 담당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번의 경험이 아닌... 일이고 일상이 돼버린 사람들.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샘솟습니다.


와.... 이제 진짜 끝이다...

짐을 찾아 카트를 밀고 입국장을 나가며 환호하던 마음은 금세 걱정으로 바뀝니다. 리무진 버스도 없다는데... 집에 어떻게 가지?? 하지만 자동으로 열리는 문 너머로 '방역 택시' 입간판이 여러 개 보입니다.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떠오르는 해와 함께 펼쳐졌지만 우리는 볼 수 없었습니다. 따뜻한 택시 안에서 이젠 진짜 도착했다는 안도감으로 우리 네 식구는 모두 꿀잠에 빠졌으니까요.










1년 동안 비워뒀던 전셋집

우리가 없는 동안 친정에서 대신 계약하고 정리하고 격리기간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구비를 해둔 우리의 보금자리입니다. 식탁 위에는 삼계탕과 익숙한 반찬들이 놓여있습니다. 외투를 벗고 손을 씻고 나오니 '백미가 완성되었습니다. 쿠쿠'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립니다. 우리의 도착 시간에 맞춰 예약 설정을 해놓으신 모양입니다. 자느라 기내식도 못 먹고 긴 시간 동안 입국 과정을 겪어낸 아이들은 따뜻한 쌀밥과 할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반찬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매일 먹는 쌀밥인데 찰지고 달콤하기까지 한 밥맛은 고생 끝에 느끼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배가 부른 아이들이 삼촌이 미리 배달시켜놓은 '레고 해리포터'를 정신없이 조립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밥 달라는 아이들이 소리에 일어나 찬찬히 먹을 것을 찾아봅니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 냉장고 안에는 김치, 된장, 고추장, 각종 밑반찬들이 쌓여있습니다. 친정엄마표 엘에이 갈비와 불고기도 김치통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야채칸을 살펴보다 시금치와 고추 꺼내어 씻었습니다. 싱싱하고 찬 듯 튼실한 초록빛의 시금치를 보니 길쭉하고 매가리 없던 베트남에서의 시금치가 생각납니다. 된장을 풀어 끓인 시금칫국은 달큼하기까지 합니다. 오이 고추도 설탕을 넣은 듯 입에 쩍쩍 붙습니다. 먹고 잔 것 밖에 한 게 없지만 한 번 한 공기를 뚝딱 해지 웁니다.



'저녁은 뭐야?'

짐을 정리하고 구청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오니 또다시 식사시간. 하지만 하노이에서부터 이미 격리 기간 중 배달시켜 먹을 음식 리스트를 만들어 놓은 상태. 그중 아이들이 무척 먹고 싶어 한 짜장면과 탕수육이 저녁 메뉴로 정해졌습니다.

전에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던 배달 어플을 핸드폰에 깔고 중국집을 검색합니다.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까지 골라 주문을 해봅니다. 말 한마디 없이 주문하고 음식을 받을 수 있다니... 편리함과 앱의 퀄리티가 그저 신기합니다.


30분 뒤, 현관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시 뒤 문을 열고 보니 바로 앞에 주문한 음식이 놓여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 방에서 배운 배달음식 비닐 벗기기 스킬을 구사하며 음식은 차립니다. 한국식 중국 음식은 베트남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는데... 맛이 다릅니다. 아이들은 짜장면 가닥이 끊기면 바로 탕수육을 입에 넣으며 왼손 엄지를 척합니다. 순식간에 음식이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묵직한 뭔가가 현관 앞에 놓이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익숙한 우체국 택배가 놓여있습니다. 스티로폼 상자를 열자 바닷가 내음이 확 느껴집니다. 손질해서 얼린 커다란 조기, 곱창김, 고춧가루, 깨소금, 동네 방앗간 감성이 느껴지는 참기름병, 직접 담근 간장... 그리웠던 맛이 가득합니다. 


잠시 뒤, 집안을 짭조름한 냄새로 가득합니다. 춥지만 창문을 조금 열어 환기를 시킵니다. 식탁 위엔 윤기 가득 쌀밥과 반찬들... 그리고 택배 안에 있었던 대하 50마리가 주홍빛으로 열기를 내뿜으로 누워있습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에 철마다 보내주신 대하는 2년 만에 영접하니 한국에 온 게 다시 한번 실감 납니다. 아이들에게 새우를 까주며 틈틈이 내 입에도 넣습니다. 대하 소금구이를 다 먹을쯤 끓는 물에 라면 2 봉지와 대하 6마리를 넣습니다. 베트남 야시장에서 먹었던 새우구이는 비할바가 못됩니다.


시댁에서 보내준 식재료와 친정에서 준비해준 음식들로 매끼 푸짐한 식사를 하면서 한 번씩 배달 음식 위시리스트를 지워갔습니다. 하노이에도 있는 한국 분식, 한국 치킨 이건만... 어디서 시켜도 맛이 300%는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습니다. 


마당도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만 지내야 하는데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들이 잠든 밤. 한국 방송을 일부러 설치하지 않아 유튜브 짤로만 보던 예능 본방송을 보며 다시 배달앱을 엽니다. 10시가 넘은 시각. 어김없이 제시간에 도착한 먹태와 쥐포 튀김. 술은 배달이 안되기에 친정엄마 찬스로 받은 맥주와 함께 우리만의 만찬이 시작됩니다. 마요네즈에 간장과 쏭쏭 썬 청양고추를 섞어 만든 이 소스의 맛은 베트남에서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 상황도... 어지러운 상황 속에 준비했던 입국 과정도... 한국에서의 기억이 거의 없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3년 만에 다시 돌아갈 나의 본업도... 입안을 온통 축제로 만드는 엄청난 맛의 향연에 어느새 작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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