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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Aug 08. 2021

하노이와의 강렬한 첫만남



“지금 우리 비행기가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통로를 지나 출국 심사대까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빠를 만날 생각에 신이 난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Foreigner’ 쪽에 줄을 섰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길게 늘어선 줄이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출국 심사할때 혹시 줄이 길면 제일 왼쪽 줄에 서!’


비행기를 타기 전 남편이 해준 말이 떠올라 서둘러 'Foreigner' 심사대 중에서 가장 왼쪽 줄에 섰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바로 왼쪽에 있는 아주 한가한 ‘Crew’ 심사대 직원이 저희에게 손짓했습니다.



수월하게 출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출구로 갔습니다.

자동문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 틈에서 거북이 마냥 목을 길게 빼고 우리를 찾고 있는 남편이 보였습니다. "아빠아~~~~~!"

몇 달 만에 만나는 것처럼 아빠에게 달려가는 아이들과 같이 저도 뛰어가고 싶었습니다.

차를 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오자 덥고 습한 공기가 훅~ 하고 불어왔습니다. 9월 말이었지만 한국의 폭염 때와 같은 후끈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습니다. 공항 앞에는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서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니 노이바이 공항은 제주공항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공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회사차를 타고 ‘롯데센터’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를 지나 높은 건물들과 알파벳으로 쓰여있지만 읽을 수 없는 베트남어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노이 시내로 들어온 것입니다. 어느새 많은 오토바이들이 같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출발해 30분 뒤쯤, 한국의 신축 건물처럼 깨끗하고 세련된 외관의 롯데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내리며 살펴보니 건물에 백화점과 호텔도 함께 있었습니다. 레지던스 직원들이 나와 짐을 옮겨주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는 63층까지의 층마다 버튼이 빼곡히 있었습니다.

롯데 센터에서 바라보는 하노이 시내


레지던스 안으로 들어오니 기분 좋게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밖에서 맛본 꿉꿉하고 더운 기운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우리가 머무는 동안 쓸 카드키를 받아야 한다며 38층에 있는 리셉션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의자들.. 그리고 작은 놀이방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통창으로 하노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 여러 높은 건물들도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고 거리에 차들은 개미처럼 작았습니다.


키를 받고 남편의 방이 있는 58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방은 여느 고급 호텔처럼 깔끔하고 안락했습니다. 창문은 크고 깨끗했지만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방에는 퀸 사이즈 침대에 하얀 침대보가 있었고, 거실에는 커다란 LG 티브이가, 부엌에는 커다란 삼성 양문형 냉장고, 전자레인지, 쿠쿠 밥솥까지 있었습니다. 부엌 서랍을 여니 웬만한 식기와 조리도구들은 다 있었습니다.

근무 중에 우리를 데리러 잠깐 나온 남편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퇴근 시간까지 소파에 널브러져 아이들과의 첫 해외여행으로 인한 여독을 풀었습니다. 해질 무렵 남편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택시를 탔습니다. 아이들에게 안전벨트를 해주려고 뒷좌석을 살펴보니 안전벨트의 흔적만 있을 뿐 벨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말하니 여기는 원래 그렇다며 뒷좌석이니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앞을 보니 택시 기사조차 안전벨트를 안 하고 있었습니다.

 

하노이 시내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하노이의 밤은 낮보다 훨씬 붐볐습니다.

그 많은 오토바이가 차들 사이사이에 끼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달리다가 멈추고 또 조금 달리다 멈추고… 한국의 교통체증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탄 차 바로 옆에 한 오토바이에는 5인 가족이 타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사이에 있는 아이들은 심지어 헬멧도 안 쓰고 앞사람 등에 기대 자고 있었습니다. 어떤 운전자는 달리면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 뒤에 앉은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화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베트남 사람들의 진기한 모습을 한참 구경하고 있을 때쯤, 익숙한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여기가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로 거리에 온통 한글이 즐비했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은 한국말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하노이에서 가장 큰 코리아 타운이었습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맥주 캔을 앞에 두고 남편과 마주 앉았습니다. 처음으로 가족이 방문해서 너무 행복한 남편과 달리 저는 걱정 투성이었습니다.

"오빠… 쌀은 어디서 사야 해요? 한국 쌀이 있나? 식용유는?"

"글쎄… 잘 모르겠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보고 준비할 것 투성이었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학교였습니다.

곧 7살이 되는 첫째가 생일이 빨라 내년 여름에 Primary에 들어가야 했거든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해도 학교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노이에 있는 국제학교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는 두 개 정도의 블로그를 찾았지만 그 조차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학교가 있는지, 지원은 어떻게 하는 건지,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동료 주재원들에게 물어봐 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 와이프가 다 알아서 해서… 난 합격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었습니다.

아… 정말…

아빠들은 왜 이리 아는 게 없는지…

여기서도 결국 모든 건 엄마의 몫이란 말인가…



이번 방문에서 가장 큰 일정은 그나마 인터넷으로 겨우 찾아낸 두 학교에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메일로 담당자와 방문 일정을 조율했거든요. 추석 휴일이 없는 베트남이기에 남편은 반차를 쓰고 첫 학교에 같이 갔습니다.






다음날 오후, 다 같이 첫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롯데에서 택시로 40분 정도 걸렸는데, 가는 내내 이렇게 멀어서 어린아이가 매일 등하교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가는 길에 공항에서 올 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하노이의 거리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행자 도로는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좁고 거리 여기저기에 쓰레기가 쌓여있었습니다.

"엄마, 여기는 왜 이렇게 더러워?" 어린아이의 눈에도 다 보였나 봅니다.


학교로 도착해서 담당자와 학교 투어를 했습니다. 학교는 비싼 등록금만큼이나 크고 깨끗했습니다. 투어 후 지원 절차와 필요한 서류에 대해 들어보니, 내년 8월에 입학하려면 내년 3월에는 인터뷰를 봐야 했습니다. 서류는 인터뷰 전에 다 제출해야 하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준비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남편은 반 차를 쓴 김에 우리가 살 집을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학교 방문 일정에 맞춰 예약을 해두었다고요. 학교에서 30분쯤 차를 타고 높은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역시 한글과 익숙한 브랜드들이 보였습니다. 로비에서 담당자를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중 80%는 한국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이곳은 하노이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모여사는 레지던스 겸 아파트였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레지던스를 둘러보았습니다. 30평대 정도의 넓이에 방이 두 개, 화장실 두 개. 근데 부엌이 생각보다 작고 냉장고는 한국에서 80년대에나 쓰던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같이 집 구경을 간 친정 엄마가 바닥이 대리석이라 어린아이들을 키우기에는 위험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건물을 구경했습니다.


1층에 커다란 한국 마트가 보였습니다. 마트에는 눈에 익은 과자, 음료수, 라면, 소스들이 꽉 차있었습니다. 건물 층마다 한국 식당에 한국 학원, 심지어 키즈카페도 있었습니다. 돌아다니는 동안 한국어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살면 베트남에 있는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주말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길 건너 동물원 겸 놀이동산에 가자고 했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이 오면 꼭  같이 가야지하고 생각했답니다. 온갖 걱정을 일단 접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커다란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롯데센터 앞 4차선 도로에 신호등이 없는 겁니다. 남편은 당황해하지 않고 한 손으론 작은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론 첫째 손을 잡더니 저보고 친정엄마와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큰 도로를 무작정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할 여력도 없이 저도 그 많은 차와 오토바이 틈을 정신없이 건넜습니다. 방금 건너온 도로를 보니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50미터쯤 걸으니 동물원처럼 보이는 간판과 캐릭터 풍선과 장난감을 파는 오토바이들이 보였습니다. 흥분한 아이들과 문쪽으로 걸어가는데 저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저와 아이들 앞을 쑹~하고 지나 앞으로 뛰어간 친정엄마와 살짝 부딪쳤습니다. 표를 사러 앞으로 걸어가던 남편이 놀라 달려와서

"여기선 오토바이 온다고 급하게 뛰어가면 안 돼. 원래 속도대로 걸으면 알아서 다 피해가."라고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다리가 살짝 긁히기만 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동물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물원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앨범 속에서 본 80년대의 그 동물원… 제가 그 사진 속 한복판에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물을 한참 좋아할 나이의 딸들은 철장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안에는 비쩍 마르고 힘이 없는 동물들이 축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동물원 바닥은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많았고 놀이기구들은 낡고 녹슬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몇 개만 타고 다시 무단 횡단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길 건너 동물원 한번 갔다 왔는데도 온몸은 땀으로 범벅, 엄청 지쳤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아이들이 다칠까 봐 온 신경을 다 써서 인지… 무척 피곤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마지막 일정으로 학교 하나를 더 방문했습니다. 한국인 코디가 있는 곳이라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곳은 영어와 베트남어를 이중언어로 하는 국제학교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베트남인이었습니다.

이 학교에 유일한 외국인은 바로 한국인. 한국인 코디가 따로 있는 걸 보면 그 수도 상당해 보였습니다. 국제학교에 다니면 영어뿐만 아니라 베트남어도 같이 배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관심이 생긴 학교인데… 베트남 책과 과제를 보니 머리가 아팠습니다. 한국인 코디는 입학할 경우 베트남 과외 선생님을 붙여수업을 따라갈 수 있고, 5년 미만으로 거주한다면 입학을 크게 권하지 않다고 습니다.

학교 구경 후, 더 생각이 많아지고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베트남 다람쥐(콘삭) 커피

저녁에 퇴근한 남편과 지하에 있는 롯데마트에 갔습니다. 다음날 출국이라 지인들에게 선물할 물건들은 사야 했거든요.

한 선생님이 특별히 부탁하신 ‘노니 비누’를 우선 담고 커피 코너로 갔습니다. 처음 보는 다양한 커피들이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베트남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걸 마트에 와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중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고 남편이 알려준 ‘다람쥐 커피’를 2학년 담임 선생님들 수만큼 카트에 담았습니다.

계산대로 걸어가는데 한쪽에 각종 쌀과 식용유 코너가 보였습니다.






그렇게 추석 연휴를 베트남에서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만에 돌아서울의 거리는 왜 이리 한산하며 조용하고 깨끗한지…

첫 방문 후, 이제부터 준비하고 처리할 수만 가지 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To Do List'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아…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 일단… 휴직부터 말하자.’

본격적인 준비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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