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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Aug 16. 2021

해외 살이 준비 A~Z

 

"와~ 이게 뭐예요? 추석에 베트남 갔다 왔어요?"


학년부 회식에서 ‘다람쥐 커피’를 건네자 다들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편 없이 두 아이를 돌보며 담임 역할하느라 매일매일 정신없고 바쁜 저를 이해해주고 도와준 고마운 동료들입니다. 해외여행 기념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동료들에게 공식적으로 저의 베트남 행을 알렸습니다.


며칠 후, 교장 선생님과 이사장님에게 저의 상황을 설명하고 휴직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지금 맡고 있는 반 아이들의 마무리를 잘해달라고 말씀하시며 휴직을 허락하셨습니다.

휴... 지친 일상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휴직이었건만... 확정되고 나니 기쁘기보다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지난 15년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학교... 그곳을 떠나는 삶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베트남에 가려면 처리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은 제게 혼란함은 느낄 여력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출국 5개월 전.


우선, 가장 비싸고 덩치가 큰 '집'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퇴근길에 단골 부동산에 들러 집 시세와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했습니다. 몇 년간 집을 비워야 하는데 팔아야 할지… 전세로 돌려야 할지 결정해야 했으니까요.

주변에 해외생활을 했던 분들이 해외에서 머무는 시간차를 이용해 자산을 불리는 걸 종종 봤는데… 저도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평소에는 혼자 부동산을 돌고, 남편이 들어오면 같이 돌아다니며 재테크의 방향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해외 파견이 우리에게 자산 증식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면서요.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다닐 학교였습니다.

정보가 너무 없어서 일단 구글 지도상 우리가 살기로 한 롯데 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계 국제학교 세 곳을 골랐습니다. 학교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으로 필요는 것은 입학 신청서, 아이와 부모의 여권 사본, 사진, 예방 접종 증명서,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기관의 영문 추천서였습니다. 대부분의 서류는 바로 준비할 수 있었지만 동네 어린이집에 ‘영문 추천서’를 부탁하기가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원장님에게 한글로 추천서를 받아 직접 번역하고 나중에 서명만 받았습니다.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일은 짐 정리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집이 대부분 그렇듯… 방구석구석, 심지어 베란다 통째로 묵은 짐과 아이들 물건으로 가득했습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보행기, 점프루, 신생아용 유모차들을 급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아이들 물건뿐만 아니라 이제 필요 없는 임부복과 베트남에선 못 입는 겨울 옷들도 정리하구요.

어떤 가구를 가져갈지… 어떤 물건은 파는 게 좋을지… 어떤 건 버려야 할지… 큰 짐부터 자질 구래한 물건들까지 이사 전날까지 계속 정리하고 버렸습니다. 혼자서 한꺼번에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니... 오늘은 아이들 작아진 옷, 오늘은 겨울 신발, 오늘은 내 임부복... 이런 식으로 주말마다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갔습니다.



출국 4개월 전.


물건 정리는 매 주말마다 계속되고, 한 달 동안 국제학교 서류도 얼추 다 준비됐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결국 집을 전세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전세가 귀한 때라 세입자는 며칠 만에 결정됐고 바로 계약금도 받았습니다. 세입자가 이사 오기 전에 집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모든 짐을 1월 초에는 베트남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집 문제가 해결되자 바로 해외이사 업체에 연락해 견적을 뽑고 정확한 이사 날짜를 잡았습니다.





출국 3개월 전.


이사 날짜가 정해지자 남편은 이사 직후 저와 딸들이 바로 베트남으로 오기를 바랐습니다. 저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습니다. 12월 초부터 기말고사 출제, 채점, 성적처리… 그리고 학생부 작성이라는 가장 막중한 업무들이 남아있으니까요. 특히 제가 맡은 고 2 아이들에게 학생부는 입시와 직결된 가장 중요한 서류입니다. 그전에 아무리 좋은 담임이었어도 학년말에 학생부에 신경 쓰지 않으면 천하에 무능력한 교사가 됩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부 작성은 학기말부터 3월 초에 학년이 바뀌면서 작성 권한이 없어질 때까지 매달려야 하는 담임교사의 최대 고행입니다. 일 년 내내 멀쩡하던 선생님들이 12월부터 입술 부르트고 어깨가 뭉치고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제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했지만 일 년 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의 인생이 달린 일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모든 업무가 끝나는 3월 초쯤에나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두 달 전부터 시작된 물건 정리와 함께 물건 구입이라는 난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롯데 지하 대형 마트에 그 많은 쌀과 식용유가 있는지도 몰랐던 남편을 믿고 맨몸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속옷, 아이들 문구용품, 각종 상비약, 목욕제품, 장난감, 화장품, 미용세트… 심지어 생리대까지… 사야 할 것 같은 물건들이 매일 생각났습니다. 일하는 중간중간에 바디로션 한 박스, 화장품 한 박스, 아이들 속옷도 한가득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머리 묶는 고무줄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동네 다이소에서 천 개들이 고무줄 한 상자도 샀습니다. 이사 전날까지 매일같이 집 앞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정리를 마친 교무실 내 자리

12월 30일, 올해 마지막 근무 날.

어느 때보다 기다리던 방학이 시작됐지만 발걸음이 쉽게 떼지지 않았습니다. 업무는 2월까지 해야 했지만, 이미 다음 학년도 부서 및 자리가 발표돼서 다른 분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했습니다. 개인 짐을 다 빼고 책상을 닦으며 지난 15년이 머릿속으로 스쳐갔습니다. 제 이름이 없는 내년도 업무 분장표. 그제야 제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퇴사가 아닌 휴직이지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해가 바뀌자 중요한 날들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이사 날짜가 다가오자 정수기, 인터넷, 가스 등 끊어야 할 것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남편은 이사를 돕기 위해 이사 이틀 전 한국에 왔습니다. 이틀 내내 남편은 그동안 버리려고 쌓아둔 물건들을 분리수거장까지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며 날랐습니다. 여권이 짐 속에 들어가지 않게 꼭 챙기라는 이사 업체의 신신당부에 여권 및 귀중품들을 따로 챙기고, 오래된 가전들은 중고가전업체에 팔았습니다.

이사 전날 저녁. 아이들과 귀중품을 친정에 보내고 둘의 노력으로 마련한 우리의 첫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이사 당일. 


아침 7시 반부터 들이닥친 업체 직원들로 인해 정신없이 시작됐습니다. 출국 전 약 두 달 동안 우리 세 모녀는 같은 단지에 있는 친정에 머물기로 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들과 겨울 옷들, 몇 가지 큰 가전들은 그쪽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베트남으로 가져갈 것과 친정 집으로 옮길 것, 그리고 분리수거 장으로 보낼 것을 알려주며 이사를 진행했습니다. 바쁜 하루가 지나고 이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공항으로 갔습니다.


해외 이사와 전세 계약이라는 큰일들이 끝났습니다. 세입자가 이사 오고 얼마 후, 자다가 열이 오르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 혼자 응급실에 갔습니다. 열 내리는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온 후 방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며칠 후, 몸을 추스르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계속 학생부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틈틈이 입학 서류를 보냈던 국제학교들과 연락하며 인터뷰 날짜를 잡고, 아이들 영유아 검진 및 필요한 접종을 마무리했습니다.

설 연휴 날, 시댁에 가기 전 한국에 온 남편과 년 봄마다 찍었던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내년에는 베트남에서 족 사진을 찍겠지?"라고 남편과 이야기하면서요.


베트남에선 볼 수 없는 눈... 지금 만끽하렴~

출국 한 달 전.


이제 몇 가지 처리할 일들만 남았습니다.

자동차를 친척에서 이전시키고, 각종 행정 서류들을 준비하고, 친한 친구들과의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간간히 출근해서 아이들과 학생부를 같이 보며 글자 하나라도 틀린게 없는지 꼼꼼히 살폈습니다.

막바지 업무로 분주할 때 우리의 짐은 하노이 롯데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남편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 넓은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자잘한 정리는 가서 할 테니 큰 짐들만 정리하라고 남편에게 일러두었습니다.



출국 일주일 전.


학교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노트북을 반납했습니다. 이미 고 3 교실에 올라가 있는 반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며 대학 합격하면 베트남으로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이제 학교 업무는 정말 끝입니다.



출국 하루 전.


남편이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함께 두 달간 세 모녀가 지냈던 방을 치우고 트렁크 네 개 가득 쌌습니다. 가장 작은 트렁크의 반은 고추장, 된장, 마늘, 멸치가 차지했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3월 첫 토요일 새벽…

미리 예약한 리무진을 타고 우리 네 식구는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베트남에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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