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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Aug 23. 2021

베트남에서의 첫 주


"애들이랑 여기서 기다려. 비자 처리하고 올게."



2019년 3월 첫 토요일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여행객으로 왔던 지난 추석과는 달리 입국 전 한 가지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장기 체류 비자 확인이었죠.

남편이 우리를 한국까지 데리러 온건 바로 저와 딸들의 장기 체류 비자를 공항에서 처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주재원 발령으로 베트남에 거주하게 된 경우라 회사가 모든 서류들을 준비해 줬습니다.


비자를 접수하는 곳은 오래된 시장통처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국처럼 번호표나 전산 처리는 찾을 수 없었고, 다들 비자 서류를 들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참 후, 모든 처리가 끝나고 출국 심사를 마친 후 공항 밖으로 나왔습니다. 지난 초가을 꿉꿉했던 하노이의 공기와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감쌌습니다. 생각보다 덥지 않았지만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습니다. 롯데 센터로 향하는 회사차에서 비행기 안에서는 한숨도 안 자던 막내가 고개를 떨구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공항에서 출발한 지 30분 후.

우리 가족은 드디어 베트남에서의 보금자리인 하노이 롯데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직원들이 나와 트렁크를 안으로 나르고 있었습니다. 버튼으로 가득한 엘리베이터 안의 쾌적한 공기와 은은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36층에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이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이 베트남에 오기 한 달 전부터 남편은 넓은 새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영상통화로 이미 구경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호텔 같은 고급 레지던스에서 살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허걱… 방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가득 상자채 산처럼 쌓여있는 이삿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이들은 새집에 신이나 짐 사이사이를 뛰어다녔지만 저는 남편은 째려보았습니다. 대충 정리하라고 했는데… 어쩜 이렇게 하나도 손대지 않았는지...

한국에서는 포장 이사를 하면 어느 정도는 정리를 해주는데... 이삿짐 상자들이 그대로 거실, 부엌, 각 방에 켜켜이 쌓여있었습니다. 일을 이렇게 했냐며 업체 탓을 했더니 미리 정리해두면 제 맘에 안들 것 같아서 직원들에게 그대로 두고 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아수라장에서 거의 한 달을 남편은 먹고 자고 잘 지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곧 해질 시간이라 부랴부랴 침대부터 정리를 하고 부엌의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기본 식기와 주방용품, 그리고 쿠쿠밥솥, 삼성 전자렌지와 양문형 냉장고, 파나소닉 커피포트와 토스트기가 있었습니다. 수저에 젓가락까지 기본 식기가 다 있어서 일단 짐을 정리하지 않고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오는데 3주 이상 걸리는 해외이사라 상할 수 있는 음식들은 가져올 수 없어서 집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밥을 해먹으려면 당장 사야 할 것을 적다가 엄마가 챙겨주신 고추장, 된장, 멸치, 얼린 다진 마늘이 생각나 얼른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그제야 36층의 시티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넓은 통창으로 밖을 바라보니 새벽도 아니고 비가 오지도 않는데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방에서 나와 같은 건물에 있는 백화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1층에 있는 '엔젤 인 어스'에 갔습니다. 남편은 베트남에 왔으니 먹어보라며 ‘코코넛 커피’를 시켰습니다. 음료를 기다리며 메뉴를 보니 한국에서 한 번도 못 봤던 음료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처음 먹어본 코코넛 커피는 얼음을 갈아 만든 프라푸치노와 비슷했지만 더 진하고 달았습니다. 입안 가득 퍼진 코코넛 향기를 음미하다가 남편을 보니 양쪽에 딸들을 하나씩 끼고 종알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입이 귀에 걸릴 듯 웃고 있었습니다. 일 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저 역시 가족이 함께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며 머릿속에 가득한 걱정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우리 넷… 함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베트남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 아이들과 신생아 마냥 하루에 12시간씩 잤습니다. 아직 학교가 정해지지 않아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들과 지하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조금씩 사고 레지던스 놀이방이나 롯데 백화점에 있는 키즈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낮에 마트나 백화점에서 본 사람들은 제가 생각했던 베트남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최신 아이폰을 들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깔끔하고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화려했습니다. 특히 베트남 젊은 여성들은 진한 화장에 라인이 드러나는 화려한 옷들을 입고 있었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작고 날씬했지만 볼륨감도 역시 대단했습니다.

 

"오빠~ 베트남 여자들 날씬하고 예쁘더라. 베트남에선 김태희가 밭 갈고 전지현이 지게 지고 간다던데… 진짜 예쁜 여자들이 많아?"

"…… 여기도 예쁜 애들만 예뻐."


차와 오토바이, 사람들로 영켜있는 흔한 베트남 거리


남편이 퇴근한 후, 그리고 주말에는 주로 다함께 외출을 했습니다. 레지던스 안을 평온했지만 하노이 거리로 나오면 어디를 가든 무법천지 그 자체였습니다.

도로에는 라인이 있고 머리 위에는 신호등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 많은 차들과 오토바이들이 교통 규칙에 따르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들이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끼어들고 차들도 아무데서나 좌회전이나 유턴을 했습니다. 심지어 역주행을 하기도 해서 안전벨트도 못한 아이들을 안고 기겁한 적인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오토바이와 차가 부딪치면 운전자들끼리 서로 소리를 지르며 욕하더니 그냥 쿨하게 헤어졌습니다. 다른 오토바이와 부딪친 한 베트남 여성은 상대방 오토바이를 발로 뻥 차더니 이내 자기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탈 때마다 늘 긴장이 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아무데서나 담담하게 대로를 건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차들이 쌩쌩 달려오는 왕복 4차선 도로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유유히 무단 횡단을 습니다. 하지만 운전자도 보행자도 서로에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들 제 갈길을 갔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교통체증과 무법천지 속에서 제일 신기한 건 생각보다 사고 난 장면을 거의 못 봤다는 것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얼음을 먹으려는데 남편이 말렸습니다.

“여기선 밖에서 주는 얼음은 먹지 마. 그리고 생야채로 웬만하면 먹지 말고.”

한국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남편의 깔끔쟁이 멘트에 새삼 놀랐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있는 식당은 꽤 깔끔하고 좋은 곳이었거든요.

"물도 생수병 채 주는 것만 마시고 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사 먹지 마. 특히 애들은 현지 음식 먹이지 말고."

처음엔 왜 이리 예민하게 구나... 생각했는데... 곧 남편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 시내에는 유독 노점 음식점들이 많은데요. 낮 기온이 40도이든, 비가 오든, 유독 춥든... 거리 식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삼삼오오 작은 목욕탕 의자 같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국수를 먹거나 정체불명의 알록달록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멀리 서는 정겨운 모습이었지만 가까이서 팔고 있는 음식들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음식 재료들은 폭염 속에서도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고요. 그 위로 벌레들이 날아다녔습니다. 다 쓴 식기들은 뿌연 물속에 몇 번 들어갔다 나온 뒤 새 음식이 담겼습니다. 음료에 들어가는 얼음은 더러운 스티로폼 상자 안에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노점상뿐만 아니라 높은 건물들이 있는 큰길 여기저기 쓰레기와 오물이 굴러다녔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똥 덩어리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낮에 취한 것 같아 보이지 않은 남자들이 노상 방뇨하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고요. 아이들과 길을 걷다가 지나가던 쥐와 눈이 마주쳐 기겁하며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하노이에는 호수가 참 많습니다. 선선한 오후에 가까운 호수가를 산책하면서 보니  위로 죽은 쥐가 떠있고 그 옆으로 신발 한 짝이 같이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아저씨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엄마… 베트남은 왜 이렇게 더러워. 똥이 너무 많아.” 아이들은 몇 달 동안 매일 이 말을 했습니다.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돼서 남편 회사 베트남 직원들과 다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하노이에 온 우리 가족을 환영하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토요일 저녁, 우리는 하노이의 명동, 호안끼엠에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30명 정도 되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노천 테이블에 앉아 우리들을 맞이했습니다. 직원들 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함께였습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영어를 절해서 어렵지 않게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말을 한국사람처럼 잘하는 직원도 2명 있어서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커다란 케이크가 들어오더니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생일 파티가 시작됐습니다. 한 직원의 아들이 마침 이번 주에 생일이라 회식자리에서 파티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직원들과 가족들과 이미 모두 친해 보였습니다. 베트남어를 못하는 제 딸들을 빼고는 아이들끼리도 다 같이 잘 놀았습니다. 사람들은 밝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즐거운 식사 속에 8시가 넘어가자 점점 으슬으슬해졌습니다. 기온이 18도 정도였는데 긴팔 남방을 입고도 몹시 추웠습니다. 아이들도 춥다고 해서 식당에 있는 이불을 빌려 덮었습니다. 우리 셋이 너무 추워하니깐 한 직원이 자신의 목도리를 빌려주었습니다.

“한국사람인데 이 날씨가 그렇게 추워?’ 남편의 볼멘소리에 직원들을 보니 다들 겨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노이의 3월 날씨는 평균 20도 정도였지만 기온에 비해 너무 추웠습니다. 집에 가서 혹시나 해서 가져 온 겨울 옷들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삿짐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베트남의 일상에 신기해하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 이메일로 잡아놓고 세 개의 국제학교 인터뷰 중

첫 번째 인터뷰 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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