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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Jul 23. 2021

하루살이 워킹맘


"쌤~ 차 키를 차 위에 두고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아침 8시.

그날도 지각을 겨우 면하고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며 노트북을 켜고 있는데

교무실 문이 열리더니 미술 선생님이 들어와 제게 말했습니다.

"네? 제 차 키요?"

"아니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차를 주차하고 키를 챙겨가야지~ 차 위에 올려두었다가 누가 차 몰고 가면 어쩌려고!"

아… 차 키를 받아 들고 신발을 보니 오늘도 짝짝이…

뭐… 이건 흔한 일이라 얼른 실내화로 갈아 신고 아직 다 못한 화장을 마무리하면서 메신저에서 확인 못한 공지사항을 체크해봅니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쉬는 시간.

급한 업무가 없는 틈을 타서 기저귀랑 물티슈를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합니다.

아… 냉장고에 먹을 게 없구나… 이따가 장도 봐야겠습니다.

그때, 이모님에게 톡이 왔습니다. ‘첫째가 열이 좀 있다고 해서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려고요. 해열제 먹이고 심하면 병원에 갔다 올게요.’

아… 또 아프답니다.

5살 아이는 왜 이리 자주 아픈 건가요?

아무래도 며칠째 중이염을 앓고 있는 2살 동생에게 옮은 거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집에 일찍 갈 수 없습니다. 10시까지 야자 감독이 있거든요.

큰 아이가 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저녁에 아이들을 맡아야 하는 엄마와 남편에게 톡을 합니다.

‘나 오늘 야자 감독. 첫째가 열이 있다고 이모님이 어린이 집에서 데리고 온다네. 이따 잘 봐줘요…’






첫째를 낳은 지 만으로 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 사이 둘째 출산… 그렇게 5살, 2살 두 아이가 있는 워킹맘이 되었습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한번 세운 목표는 거의 다 이루며 살아왔던 제가

실수 연발에 주어진 일도 허덕이며 하는 둥 마는 중 하는 바보가 된지도 5년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저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겠지만 가장 놀란 건 제 자신이었습니다.


첫째를 낳고 100일도 안돼서 복직하고 거의 일 년간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수업 하나를 3~4시간 준비하고, 행사 하나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똑 부러지게 해내고, 아이들 상담에 국제반 업무에… 거기에다 결혼 직전까지 퇴근 후 대학원까지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말이면 하루에 약속이 2~3개… 힐 신고도 사방팔방 잘만 돌아다녔더랬죠.


그런 저에게 아이가 추가되고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수업 직전에서야 수업 준비가 겨우 끝나 헐레벌떡 교실에 들어가고, 행사 하나 기획하기도 너무 벅찼습니다. 아이들 상담이 버겁고 추가된 업무는 슬슬 피하고요. 출산 전 제가 제일 싫어했던 조직에 도움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임신 때 얻은 25kg의 몸무게는 아직 정리가 덜 돼서 여전히 고무줄 바지에 헐렁한 상의만 입고 다녔습니다. 체력은 늘 바닥에 틈만 나면 앉아서 졸고, 원래부터 있었던 목과 어깨 통증은 더 심해져서 심한 날은 울면서 정형외과에 가서 근육 주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임신성 비염으로 시작했던 비염이 제 몸에 정착해서 갑자기 콧물을 줄줄 흘리며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을 해댔고요.



매일매일이 정신없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제발 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일 년에 2번 정도 있는 주말 당직날.


저에게는 하루 종일 혼자 학교에 있을 수 있는 최고의 날이지만 남편에게는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힘들게 뻔한 남편을 위해… 주말 당직날이면 점심때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고 오게 했습니다. 다 함께 점심을 먹고 운동장과 복도에서 뛰어다니며 놀게 하다가 집으로 먼저 보냅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들은 차 안에서 잠이 들고, 남편은 ‘드라이브 스루’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홀짝이며 드라이브를 즐기다 아이들이 깰 때쯤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조금만 놀아주면 제가 퇴근하는 시간이 되는 거죠. 아이들이 차에서 푹 잔 덕분에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남편은 집에 온 저에게 종일 근무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저녁 먹기 전에 한숨 자라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가장 힘든 시기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최대한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미약한 기간이라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자칫 잘 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데… 그나마 든든한 남편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정규 수업 후,

청소를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빈 교실을 멍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이 공간에서 학생으로서 보다 더 긴 기간을 교사로서 보냈습니다. 좋은 추억과 나쁜 기억들이 이곳에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난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수업의 질도 떨어지고, 학생들 관리도 예전만큼 못하고, 동료 선생님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난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체력은 점점 더 나빠지고 월급은 주유값 빼곤 모두 이모님에게 바로 이체되어 남는 것도 없는데…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 하늘이 주신 보석 같은 아이들인데… 귀하고 예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저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업무 같았습니다. 제발 밤에 잘 자주기를, 제발 아프지 않기를, 제발 빨리 모유 수유가 끝나기를, 제발 기저귀 안 하고 변기에 쉬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교사로서 생기를 잃은 저… 엄마로서 죄책감이 커져가는 저… 다르지 않은 어제, 오늘, 내일… 긴 터널에 갇혀 하염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 베트남 갈까?"



갑작스러운 남편의 한 마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긴 터널 안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샛길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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